애달픈 사랑 전설의 꽃 능소화
애달픈 사랑 전설의 꽃 능소화
  • 여관구 기자
  • 승인 2021.07.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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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능소화의 꽃말 - 명예, 여성금, 이름을 날림 등. 여관구 기자
능소화의 꽃말로 명예, 여성금, 이름을 날림 등이 있으며, 임금님이 벌이 되어 소화를 찾아왔다는 전설도 있다. 여관구 기자

능소화의 꽃말은 ‘여성금’‘명예’‘이름을 날림’‘구중궁궐의 꽃’이라고 하며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다. 옛날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지에 흡착근이 있어 벽에 붙어서 올라가고 길이가 10m에 달한다. 잎은 마주 나고 홀수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7∼9개로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의 바소꼴이고 길이가 3∼6cm이며 끝이 점차 뾰족해지고 가장자리에는 톱니와 더불어 털이 있다.

능소화의 집단 서식지. 여관구 기자

꽃은 8~9월경에 피고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5∼15개가 달린다. 꽃의 지름은 6∼8cm이고 색은 귤색인데 안쪽은 주황색이다. 꽃받침은 길이가 3cm이고 5개로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바소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다. 화관은 깔때기와 비슷한 종 모양이다.

아파트단지에 심어져 있는 능소화. 여관구 기자

수술은 4개 중 2개가 길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이고 네모지며 2개로 갈라지고 10월에 익는다. 중부 지방 이남의 절에서 심어 왔으며 관상용으로도 심는다.

숲속에 자생하는 능소화. 여관구 기자

<전설 속의 능소화>

옛날에는 양반집에만 심는 귀한 꽃 요즈음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꽃 궁녀를 묻은 자리에서 피어난 이 꽃 귀를 활짝 열어 임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는 듯 나팔처럼 활짝 피었다는 슬픈 전설의 꽃 구중궁궐의 꽃 능소화의 슬픈 전설이 꽃을 ‘구중궁궐의 꽃’이라 칭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택가에 심겨져 있는 능소화

옛날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답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에 빈의 자리에 앉아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빈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빈이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였건만 아마 그녀는 그렇지 못했나 봅니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한 둘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떠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기거하게 되었는데, 빈은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을 너머 너머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답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으로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거창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러지지 않은 채 담장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 한 그녀의 유언을 시녀들은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입니다.

가지에 흡착 뿌리가 있어 덩굴로 크는 아름다운 꽃이지요. 아무튼 능소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 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합니다. 한이 많은 탓일까요 아니면 한 명의 지아비 외에는 만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꽃모습에 반해 꽃을 따다 가지고 놀면 꽃의 충이 눈에 들어가 실명을 한다하여 학교 주변에는 심지 않으며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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