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근대골목] 남산 100년 향수 길... 문우관과 상덕비각
[대구근대골목] 남산 100년 향수 길... 문우관과 상덕비각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1.07.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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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골목투어 5코스 남산 100년 향수 길 다섯째 구간은 '문우관'과 '상덕비각'인데, 문우관은 1918년 채헌식, 구달서 등이 건립한 강회소이다. 을사늑약 이후 일제가 공교육을 실시하자, 민족의 전통을 회복하고 강학과 후진양성을 위해 선비들이 모여 지은 공부방으로 사립교육기관이다. 

굳게 잠겨진 문우관의 정문. 안영선 기자

문우관은 동부교육청 네거리에서 서쪽으로 문우관 길13에 있는데,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담장 넘어 상덕비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쉽다. 문을 열어서 찾아 오는 시민들에게 하루 빨리 개방해야 한다.

돌담 가운데 맞배지붕의 협문의 가운데 진덕문 편액이 걸려 있는데, 석재 서병오의 스승이었던 서석지의 아들 중산 서경순의 글씨로 문우관이 건립될 때 쓴 것이라고 한다. 담장이 높지 않아 밖에서도 마당과 건물은 얼추 다 보이지만 마당의 장독대 우물 등을 가까이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문우관 방 안에는 '이문회우 이우보인'이라 쓴 액자가 걸려 있다고 안내판에 쓰여있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로 '문으로써 친구를 사귀고 친구와 더불어 인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문우관의 이름은 증자의 문장에서 따 왔으며, 글씨는 서병오의 제자 주병환이 1976년 설날에 쓴 것이라고 하는데 볼수 없어 안타깝다.

담장으로 보이는 문우관. 안영선 기자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문우관은 쇠락의 길을 걷고 빈터에 월세방이 들어서기도 했다고 한다. 쇠락을 애석하게 여긴 관계자와 대구시가 문우관 살리기에 나서 1988년에 담장과 진덕문, 화장실 등을 보수했다고 한다.

문우관의 왼쪽에 있는 상덕비각. 안영선 기자

1682년에 세워진 상덕사는 사찰이 아니라 조선 현종 때의 경상도관찰사 이숙과 영조 때의 경상도관찰사 유척기의 선정을 기리는 사당으로 원래 현 대구시청 주차장 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덕사란 이름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고 편액은 죽천 김진규가 썼다.

1826년 경상감사 조인영이 상덕사 뜰에 이숙과 유척기의 사적을 새긴 상덕사 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9월 9일 비 앞에서 제를 지냈다.

상덕사는 1910년 일본인들이 대구시청의 전신인 이사청을 지으면서 사라지고 비와 비각만이 그 전해인 1909년 보존되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상덕비각 안에는 상덕사 비와 이숙의 선정비, 유척기의 영세불망비 2기, 고종 때의 도순찰사 이호준의 영세불망비 등 5기의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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