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윤동주의 '길'
[시를 느끼다] 윤동주의 '길'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07.30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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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잃어버린 나라를 찾을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절망감에 몸부림치면서 자아를 찾아 나서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진 픽사베이

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출처: 윤동주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청개구리

 

                 사진 픽사베이

윤동주 시인의 길이란 시는 1941년 9월경에 쓰였다. 그가 가장 힘든 시기에 쓴 시지만 맑고 깨끗한 시인의 마음이 잘 표현된 시다. 우리는 때로는 뭔가 잃어버린 듯 허전하고 막막할 때가 있다. 그것은 시간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뭔지 모를 때도 있다. 무엇보다 자아를 잃은 듯 할 때 그 허전함과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어제의 나는 간 곳도 없고 내일의 나는 그림자조차 잡을 수 없으니 전전긍긍하게 된다. 오로지 보이는 건 힘들어 지치고 초라한 오늘의 나를 만나게 되어 잃어버린 참 나를 찾아 나서고 싶어진다.

시인도 잃어버린 나라를 찾을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절망감에 몸부림치면서 자아를 찾아 나서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또 다른 시 자화상에서도 나타났듯이 우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미워하는 마음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교차하고 있음을 본다. 미워함은 과감히 행동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우유부단함 때문일 것이요. 측은히 여김은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자신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더 소중한 것을 잃고도 눈앞의 작은 일에 연연해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돌담과 길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나란히 평행선을 걷는 듯하다. 그것이 미워함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닐까. 길 위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의 외로움에서 시인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아를 찾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을 쳐다보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짐은 그 하늘에는 추호의 거짓도 없어 보이기 때문일 거다. 하늘은 높이 있고 모든 걸 다 보고 있기에 우리는 하늘을 두려워하면서도 또한 의지하려 한다. 우리는 겁 없이 큰 죄를 짓는 사람을 보면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고 묻기도 한다. 하늘은 우리를 정죄하기도 하지만 한없이 넓은 품으로 보듬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건 시인만이 아닌 것 같다. 왠지 뭔가 모를 잘못을 한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험한 세상이 힘들지만 피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나의 자아는 살아있기 때문이며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고자 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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