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팀 하포드의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
[장서 산책] 팀 하포드의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7.19 1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제학 최고의 스토리텔러가 엄선한 현대 경제를 만든 51가지 이야기

저자 팀 하포드(Tim Harford)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런던정치경제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등에서 경제학을 강의했다.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가장 인기 있는 수석 칼럼니스트이자 30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150만 부 넘게 팔린 밀리언셀러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다.

팀 하포드가 선택한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은 다음과 같다.

1) 언뜻 보기엔 단순한 물건들: 연필, 벽돌, 공장, 우표, 자전거, 안경, 캔 식품, 경매

2) 꿈을 팔다: 튤립, 퀸스 웨어, 담배말이 기계, 재봉틀, 통신판매 카탈로그,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기부금 모금, 산타클로스

3) 돈을 옮기다: 스위프트, 신용 카드, 스톡옵션, 회전식 개찰구, 블록체인,

4) 보이지 않는 시스템: 대체 가능 부품, RFID, 인터페이스 메시지 프로세서, GPS

5) 비밀과 거짓말: 가동 활자 인쇄기, 생리대, CCTV, 포르노, 금주법, '좋아요' 버튼

6) 힘을 모으다: 카사바 처리법, 연금, 쿼티, 랭스트로스 벌통, 댐

7) 하나 뿐인 지구: 불, 석유, 고무경화법, 워디언 케이스, 셀로판, 재활용, 난쟁이 밀, 태양광발전

8) 로봇 군주들: 홀러리스 천공 카드 기계, 자이로스코프, 스프레드시트, 챗봇, 큐브샛, 슬롯머신, 체스 알고리즘.

51가지 물건 중에서 신용카드, GPS, 연금이 세계 경제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정리해본다.

1. 신용 카드

단서는 '크레디트(credit)’라는 이름에 있다. 크레디트는 믿음, 곧 신뢰를 뜻한다. 현대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를 신뢰하고, 어떻게 신뢰하게 되는지 다루는 챕터 없이는 말할 수 없다.

과거에는 이 질문에 답하기가 쉬웠다. 신뢰는 개인적인 것으로 서로 잘 알고 빚을 갚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유대였다. 그러나 요즘의 신뢰는 다른 형태를 지닌다. 바로 길이 8.6센티미터, 넓이 5.4센티미터, 두께 0.8밀리미터 크기에 모서리가 둥글고 딱딱한 사각형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신용 카드다.

이전에는 신용 카드를 쓰는 일이 번거로웠다. 손님이 신용 카드를 건네면 매장 직원은 은행에 전화를 걸어 거래 승인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신기술은 돈 쓰는 일을 훨씬 간편하게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마그네틱 띠(magnetic stripe)였다. 마그네틱 띠는 원래 1960년대 포러스트 패리(Forrest Parry)와 도러시아 패리(Dorthea Parry)가 CIA 신분증에 쓰기 위해 개발한 것이었다. IBM 엔지니어이던 포레스트는 어느 날 저녁 플라스틱 카드와 마그네틱테이프를 들고 집에 와서 둘을 접합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때마침 다림질을 하고 있던 그의 아내 도러시아가 남편에게 다리미를 건네며 한번 써보라고 말했다. 다리미로 열과 압력을 가하는 방법은 완벽하게 통했다. 그렇게 해서 마그네틱 띠가 탄생했다.

이제 신용 카드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신용 카드를 쓰는 사람은 한때 좁은 지역사회의 정직한 구성원에게만 허용되던 신뢰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누구나 신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카드는 현명하게 사용하면 돈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위험한 점은 돈을 쓰기가 너무 쉬워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돈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근래에 국제통화기금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카드로 인해 쉽게 쌓이는 가계부채는 경제적 측면의 혈당치 상승과 같다. 즉, 단기적으로는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3년에서 5년 이후를 감안하면 오히려 해로울 뿐 아니라 은행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높인다.(123~130쪽)

2. GPS

GPS는 위치 안내 서비스지만 동시에 시간 안내 서비스이기도 하다. GPS, 즉 위성항법시스템(Grobal Positioning System)은 최소 24개의 위성으로 구성된다. 이 위성들은 모두 극도로 정밀한 수준까지 동조화된 시계를 갖고 있다. 당신의 스마트폰은 이 위성들로부터 신호를 받아 현재 위치를 검색한다. 이때 해당 위성이 신호를 보낸 시간과 그 위치를 토대로 계산한다. 이 위성들의 시계가 1,000분의 1초라도 어긋나면 수백 킬로미터의 오차가 발생한다. 따라서 엄청나게 정확한 시간 정보를 원한다면 GPS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GPS는 '보이지 않는 공공서비스'라고 불린다. GPS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졌다. 저술가인 그래그 밀너(Greg Milner)가 말한 대로 차라리 "인간의 호흡계에서 산소가 지니는 가치는 얼마인지" 묻는 편이 낫다. 이는 원래 폭격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미군으로부터 처음 지원받은 발명품으로서는 놀라운 이야기다. 처음에는 미군초자 정말로 필요한지 확신을 갖지 못했다. 한 초기 지지자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동료들이 보인 전형적인 반응은 "내가 어디 있는지 뻔히 아는데 위성이 그걸 알려줄 필요가 뭐 있어?"였다.

최초의 GPS 위성은 1978년에 발사되었다. 그러나 1990년에 1차 걸프 전쟁이 일어난 뒤에야 회의론자들은 제정신을 차렸다. 사막 폭풍 작전에서 모래가 휘몰아치는 바람에 가시거리가 5미터로 줄어들었다. GPS는 병사들이 지뢰의 위치를 표시하고, 수원지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며, 서로 충돌하는 길을 피하도록 해주었다.

군사적 장점을 감안할 때, GPS가 민간에 널리 보급되는 것을 미군이 좋아한 이유가 궁금할 수 있다. 그 답은 그들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위성이 두 가지 신호를 보내게 만들었다. 하나는 군사용으로 정확한 신호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용으로 급이 낮고 흐릿한 신호였다. 그러나 기업들은 흐릿한 신호를 토대로 초점을 맞추는 영리한 방법을 찾아냈다. 또한 GPS의 경기 부양 효과가 갈수록 명확해졌다. 2000년에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불가피한 변화를 수용해 모두에게 고급 신호가 제공되게 만들었다.

미국의 납세자들은 GPS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연 1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댄다. 대단히 관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계속 그들의 인심에 기대는 것이 현명할까? 사실 GPS가 유일한 위성항법시스템은 아니다. GPS만큼 뛰어나지는 않지만 글로나스(GLONASS)라는 러시아의 시스템도 있다. 중국과 유럽연합은 베이더우(Beidou)와 갈릴레오(Galileo)라는 상당히 진전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중이다. 일본과 인도도 독자적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172~176쪽)

3. 연금

군인 연금의 기원은 적어도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금(pension)'이라는 단어는 '보수(payment)'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그러나 연금은 19세기가 되어서야 군대를 넘어 일반 사회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국민연금은 1890년 독일에서 생겨났다.

노년에 사회적 보조를 받을 권리는 아직 세계화되지 않았다. 여전히 전세계 노년층 중 3분의 1은 연금을 받지 못한다. 또한 연금을 받는다고 해도 생활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많은 나라에서는 여러 세대에 걸친 사람들이 노년이 되면 좋은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런 기대를 충족하는 일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오랫동안 경제정책 전문가들은 연금 체계가 서서히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문제는 인구 구성에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부자 나라들의 모임인 OECD의 경우 65세 여성은 평균적으로 약 15년 더 살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20년을 더 살 수 있다. 한편 가족당 자녀 수는 2.7명에서 1.7명으로 줄었다. 미래 노동자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이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많은 함의를 지닌다. 그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하지만 연금의 경우 상황이 암울하다. 미래에는 부양해야 할 은퇴자가 크게 늘어나는 반면 부양에 필요한 세금을 낼 노동자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1960년대에는 전 세계 기준으로 노인 1명당 노동자의 비율이 거의 12명이었으나 지금은 8명 미만이며, 2050년에는 겨우 4명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닥칠 문제를 예견한다. 상당수 노동자가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들이 직장 연금에서 받는 급여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 전세계 정부들이 노년을 앞두고 예금을 늘리도록 국민을 설득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노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퇴 자체를 '은퇴'시켜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어쩌면 우리는 선조들처럼 기운이 남아 있는 한 노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사회는 과거보다 풍요롭고 정착되어 있다. 그래서 의지만 있다면 늘어나는 연금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차이점도 있다. 과거 우리는 노인들에게 의존해 지식을 저장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은 지식이 빠르게 낡는다. 게다가 학교와 위키피디아가 있는데 굳이 할머니가 필요할까?

노인을 존중하는 수준이 비용과 편익 사이의 어떤 균형에 무의식적으로 좌우되던 시대가 오래전에 지나갔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여전히 품위 있는 만년을 보내는 것이 권리라고 믿는다면, 아마도 이를 최대한 분명하게 그리고 자주 말해야 할 것이다.(226~231쪽)

생활 속 경제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온 팀 하포드는 언뜻 보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단순한 것들에 관심을 둔다. 그의 관심 대상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 그리고 사소한 것 같지만 우리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것들이다. 벽돌부터 ‘좋아요’ 버튼, 재봉틀부터 생리대까지, 이 책에 나오는 발명품은 종종 당연시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그것들이 지닌 교훈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팀 하포드는 증기 엔진이나 컴퓨터처럼 새로운 돌파구를 연 더 확실한 물건을 다루는 이야기보다 이 책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과학을 만나 마침내 물건으로 탄생한 뒷이야기, 뛰어난 기술자와 비즈니스맨이 만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 책에 나오는 51가지 물건은 흥미로운 결과를 가져온 아이디어로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경제학 최고의 스토리텔러가 엄선한 51가지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물건에 얽힌 사소하고도 위대한 발견,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