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근대골목] 남산 100년 향수 길... 남산교회
[대구근대골목] 남산 100년 향수 길... 남산교회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1.07.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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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골목투어 5코스 남산 100년 향수 길 넷째 구간은 '남산교회'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경북지역 최초의 교회인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에서 분리되어 창립 되었는데 남산교회를 창립한 이는 미국인 선교사 헨리 먼로 브루엔(한국이름, 부해리)다. 1899년 대구로 온 그는 1940년까지 40여 년간 대구와 경북 지역의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처음에는 경북의 서부지방 김천, 선산, 군위, 고령, 성주, 상주, 칠곡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03년에 대구제일교회를 담임하고 그후 나환자 선교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지역교회의 단체인 '경상노회' 조직에 크게 기여했다. 

제일교회의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범어교회, 침산교회가 분립되었고 남산교회는 1914년 말에 분립되어 이듬해에 예배당을 지었다. 부해리 목사가 지은 최초의 남산교회는 4개의 나무 기둥을 세우고 골함석을 덮은 양철집이었으며 1928년 최종철 장로에 의해 성경야학회를 열었다. 초기에 200여 명이었던 교인이 점차 늘어나 1930년에는 새 교회당을 크게 지었다. 붉은 벽돌로 쌓은 2층 규모의 고딕풍의 건물로 설계는 당시 벽돌공장을 운영한 백남채가 맡았으며, 벽돌도 그 공장에서 생산한 것으로 지었다. 지금도 볼 수 있는 정면의 삼각 지붕선과 둥근 창, 중세의 성곽을 흉내 낸 외벽 상부 측면의 아치형 창 등은 그때의 모습 그대로다.

교회 입구 왼쪽벽에는 창립 1914년, 개축1930년, 증축 1972년 이라고 새겨진 판석이 부착되어 남산교회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남산교회 지금의 모습. 안영선 기자

남산교회의 외벽에는 부조 하나가 걸려 있다. 2014년 3월 교회 설립 100주년에 맞춰 제작한 이만집 목사, 김태련, 김용해 부자, 백남채 장로의 인물 부조로 이들은 1919년 대구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다.

이만집 목사는 남산교회 3대 목사로 민족대표 33인중 한사람인 이갑성과 밀접하게 교류하며 대구의 만세운동을 지휘했으며 김태련은 서문시장(당시는 새장이라 함)에서 열린 집회 때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로 인해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고 출옥 후에도 신간회에 가입 활동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교회를 짓고 한글과 성경을 가르치며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고 한다. 아들 김용해는 만세운동 때 일경에 붙잡혀 고문을 못 이기고 3월에 순국했다. 백남채는 만세운동당시에 계성학교 교사였으며 만세운동 주동으로 2년간 복역하고 베이징으로 건너가 벽돌공장을 하면서 임시정부의 자금을 조달했다. 그 외에도 남산교회 출신 독립운동가는 20여 명에 이른다.

이만집 목사, 김태련, 김용해 부자, 백남채 장로의 부조.
안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