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 스님 차(茶) 공간,
동진 스님 차(茶) 공간,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1.07.13 17: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상은 거지도 황제를 만들 수 있다

 

다정원 누각에서 茶를 음미하는 동진 스님  유무근 기자

차(茶)를 그냥 맛으로 마시면 음료가 된다. 그러나 차에 의미를 부여하면 다도(茶道)가 된다. 차는 나무 목(木), 풀 초 변(-), 사람인(人) 이렇게 세글자로 되어 있다. 해석하면 ‘차를 마시는 사람의 인품은 나무처럼 너무 강하지도 말고, 또 강할 때는 강하고, 부드러울 때는 중정(中正)을 유지하면서 마음을 돌아보고 인격을 수양하라’라는 뜻이다.

차를 다관에 넣고 물을 부어 너무 오래 우리면 맛이 떫고, 일찍 따르면 맛이 싱겁다. 거문고의 최상을 얻기 위해서는 현을 알맞게 조율했을 때 좋은 음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중정의 진리가 생활화되고 사회화될 때 우리의 마음과 사회는 안정되고 평화롭다.

다도 정신을 현실에 적응해 보면 정치를 너무 강하게 하면 위기를 맞고 너무 약하게 하면 혼란스러워진다. 경제도 너무 고금리로 가면 성장이 둔화하고 너무 환율이 낮아도 수출이 어렵다. 돈도 너무 많이 쓰면 빚을 지고, 너무 인색하면 고독해진다. 운동도 강하면 몸에 해롭고, 약하면 건강을 잃는다.

사업 투자를 너무 많이 해도 부도가 나고, 너무 적게 해도 미래 성장이 둔해진다.

한 잔의 차를 우려 마시면서 그 마음이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사업과 돈과 건강과 인간관계가 너무 강한지 너무 나약한지 생각하다 보면 지혜를 얻고 좋은 결과를 얻는다. 차(茶)에는 양면이 기울지 않고 그 양면을 모두 수용하는 진리가 담겨 있다.

이 진리에는 평화의 행복, 자유의 깊은 뜻이 있다. 정치인이, 경제인이, 문화인이, 일반인들이 한 잔의 차를 우려 마시며 그 뜻을 알고 사회화할 때 가정과 나라가 발전한다. 21 세기를 살아가면서 정치, 경제, 사회, 가정이 어려울 때 차의 정신은 단순한 음료의 차원을 넘어 기계 문명의 어둠을 풀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누군가가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차를 마시지 않은 민족은 쇠한다”라고 했다. 이 말은 차의 정신을 인격화하는 사람은 발전하고, 차를 마시지 않은 사람은 퇴보한다는 뜻이다.

외지에서 온 불자에게 연잎 茶 대접을 준비하는 동진스님(가운데) 유무근 기자

조선 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서 20여 년 동안 언제 사약이 내려올지 모르는 불안하고 두려운 긴긴 유배 생활에서 차로 고독과 울분을 위로했다. 중정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호를 다산(茶山)이라고 했고, 사는 집을 ‘다산초당(茶山草堂)이라는 현판을 걸고 저술 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차로 생활의 균형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산과 동시대를 살았던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 선사는 “고래성현구애다(古來聖賢俱愛茶)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차를 사랑했으니, 다여군자성무사(茶如君子性無邪) 차는 군자와 같아서 그 성품에 사악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사사로움이 없는 차는 사람의 정신을 인격화시키는 따뜻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차를 마시는 동안 차를 통한 명상 속에 놓이게 되고, 차를 통해 자연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영혼을 담아낼 수 있다.

“명상은 거지를 황제로 만들 수 있다. 명상이 없으면 황제도 거지로 추락할 수 있다”라는 말처럼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각성할 때 ’제3의 눈’을 얻는다. 각성을 통해 인간은 더 진화된 의식을 가진다. 이런 사유의 방법과 열린 시각이 차와의 만남이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문화는 한 국가의 의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문화의 수출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와 효율성이 있다. 차를 통해 환경과 문화가 살아 있는 나라의 이미지를 높이고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경쟁력 있는 문화교역의 역할을 다하는 기쁨을 얻어야 한다. 한 잔의 차를 격조 있게, 의미 있게, 행복하게 마시자.

칠곡군 지천면 망월사 풍경  유무근 기자

동진(童眞) 스님은,

1968년 밀양 표충사로 출가해 1972년 원명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76년 해인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1978년 해인 승가대학과 중앙 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1997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에서 안거하고 ‘불교 대구교육원’에서 10여 년간 행정, 기획,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대구 사원 주지연합회’ 총무부장을 수행하며 ‘불교 대구회관’을 이전 완성했다. 그 후 선학원과 조계종과의 묵은 분쟁 해결을 위해 조계종 선학원 대책위원회 간사를 맡아 2002년 재단종단 합의에 이르게 하여 이사회와 종회에 인준을 받았다.

2003년 뉴질랜드 ‘남국정사’ 주지로 취임하여 10여 년 넘게 해외 포교와 문화를 전하고 2016년에 귀국했다.

그 외 주요 직책으로 대구 불교승가회장, 맑고 향기롭게 지도 법사, 백련차문화원장, 불교 환경연대 지도위원, 조계종 총무원 재무부장, 뉴질랜드 민주평통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칠곡 망월사 주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