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허필현 '옹기 속의 보물'
[장서 산책] 허필현 '옹기 속의 보물'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7.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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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사 에세이選(선)' 1060번째 책이다. 저자 허필현은 경북 청도에서 출생하여 영남대학교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16년 대구수필문예대학을 수료했다. 2018년 <수필과 비평> 신인상으로 등단하였고, 2019년 김수환추기경선종10주년 기념 '생명 존중·사랑나눔 작품 공모전'에서 대상(추기경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대구반야월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목차를 보면 ‘1/ 아름다운 인연’에 ‘새 출발’ 외 9편, ‘2/ 그립다’에 ‘그때 우리는’, ‘그립다’, ‘가슴에 묻은 아픔’ 외 7편, ‘3/ 하늘이 준 선물’에 ‘눈물 처방전’ 외 9편, ‘4/ 주인을 잘 만나야’에 ‘옹기 속의 보물’, ‘주인을 잘 만나야’, ‘부치지 못한 편지’ 외 7편, ‘5/ 잠에서 깨어나다’에 ‘느긋하게 살리라’ 외 9편의 글이 실려 있다. 1장~4장의 간지에 실린 사진 4점은 저자가 이번에 펴낸 고 조송환(저자의 남편) 유작집 <情談(정담)>에 실린 사진이다.

 

오늘은 코로나로 인하여 어린 시절 놀이가 더 그리워진다. 누가 같이 공기놀이할 사람 없을까. 상대가 있으면 한 판 할 수도 있는데…. 책방 찾듯이 같이 놀 친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즐기던 놀이가 그립듯이 내가 자주 가던 만화방도, 서점도 그립다. 오랜만에 우아하게 책 좀 보면서 폼 좀 잡으려다 김샌 날이지만 옛 시절을 더듬을 수 있어 오늘도 좋은 날이었다. (그립다, 70~71쪽)

 

인생의 필름을 수십 년 전으로 돌리니 나의 지나온 과거들이 스쳐 지나간다. 옛날로 돌아갈 수 없을까 궁리해 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저 세월의 흐름에 따라야지. 경주에 벚꽃이 만발할 때 전에 만났던 동료들을 다시 보기로 했다. 길거리에 흐드러진 벚꽃이 사랑스럽다. 나름대로 아름다운 자기 생을 꾸미고 있는 우리도 예쁘지 않은가. 이번에 만나면 또 많은 이야기를 펼쳐 놓겠지. 얼른 만나서 추억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다. 어느새 늙어 버린 나에게도 아, 처녀 시절은 있었지. 꿈 많고 아리따운 처녀 선생님이었었어. 그때 우리는…. (그때 우리는, 87~88쪽)

 

(…) 옹기 속의 어머니 비밀 노트에는 무엇이 씌어 있었을까?

우리 일행은 김 추기경 생가의 옹기들 속에서 보물을 하나씩 뽑아 들었다. 손을 쑥 넣어 각자 꺼낸 귀한 보물은 성경 말씀이었다. 내가 찾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구절이었다. 문득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며 어머니, 낳고 길러 주시고 또 대학 공부를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 같은 중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노트의 내용은 읽지 못했으나 추기경의 생가에서 보물을 꺼내 들고 엄마께 감사하게 되었으니 이 성경 구절이 바로 그 노트에 써놓았을 말을 대신하는 게 아닐까 싶어 생각에 잠긴다. (옹기 속의 보물, 142쪽)

 

남편은 교직에 있으면서도 사진에 심취했다. 그러다가 작가가 되었다. 그의 손때가 묻은 사진기가 작은 장롱 속에 수북이 들어있다. (…)

나는 그 사진기들을 미워한 적도 있다. 때로는 그 물건하고 결혼하지 왜 나하고 결혼했느냐고 남편을 닦달하기도 했다. 그는 사진 찍기에는 해 뜰 무렵이나 석양 무렵의 광선이 좋다고 늘 이야기했다. 아침, 저녁 식사 시간에 홀린 듯 촬영하러 가버리고, 갑자기 눈이 오는 날은 밥 먹다가도 가방과 삼각대를 챙겨들고 나가버렸다. 이런 모습이 얄밉고 서운해 싸우기도 여러 번 했다. 심지어 토요일은 내가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일박이일 촬영 여행을 가버리는 때도 종종 있었다. 일요일에 성당가는 일, 아이 돌보는 일, 마트 장보러 가는 일도 혼자 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인을 잘 만나야, 152~153쪽)

 

장례미사 예식을 치렀다. 깨끗하고 깔끔한 수의 한 벌을 입고 남편은 편도 열차에 올랐다. 학생 때 가난으로 고생을 많이 해서 늘 아끼는 데만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손에 쥐고 간 것은 오직 묵주 하나뿐이다. 평소 고인은 무덤도 만들지 말라 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 경산 천주교회 갑제 묘원을 분양받아 누울 자리를 마련하였다. 내 자리는 그의 옆자리로 정했다.

서예원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고 사이좋게 오순도순 살다 보니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이제 마트도, 부부 모임도, 산책도, 영화 구경도 혼자 간다. 지금은 부부간에 싸우는 모습, 손잡고 가는 모습조차도 부럽기만 하다. 부부가 나누는 사소한 대화에서조차도 눈물이 난다.

“당신 교장 취임할 때 현수막 걸고 가까운 친척들 불러 잔치하자. 당신은 여행을 좋아하니 퇴직금 가지고 세계여행 마음껏 다녀라.”

그가 한 말들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너무나 고마운 당신, 조 스테파노. 나는 그를 소중하게 가슴에 묻어 두고 하늘나라로 가면 만날 수 있다는 기대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가슴에 묻은 아픔, 93~94쪽)

 

항상 친구같이 다정하던 당신.

아직도 문이 열리면 당신이 금방이라도 들어올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 있어요. 집에 들어올 때는 ‘혹시 두 아들이 나쁜 행동을 하다가도 얼른 감출 기회를 주어야지.’ 하면서 항상 벨을 먼저 누르고 열쇠로 문을 열던 자상하던 당신, 항상 마누라 애먹는다고 격려해주던 당신, 삼십 년 세월 동안 고마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일일이 간섭하고 제가 운전면허 딸 때 가르쳐준다고 해놓고 윽박지르고, 자기 자신처럼 식구들이 모든 일을 다 잘하기를 바라던 일 등 자신의 깔끔한 성격 때문에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하는 일도 많았어요. 그런 사실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지요?

사랑하는 당신!

저도 머지않아 당신 따라갈 거예요.

“천국에 가거든 제 자리 꼭 맡아 놓으세요.” 했던 말 잊지는 않았겠지요? 제가 가거든 서먹서먹하지 않게 반갑게 맞아 주셔요. 낯선 곳에서 당신 덕 좀 보게요. 울컥하는 마음에 고였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네요.

다음에 또 편지 오려나 기다리지는 마세요. 괜히 기다리다가 목 빠져요. 언제 또 펜을 잡을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반드시 당신 곁으로 간다는 사실이에요. 늦은 밤 잠시 당신을 생각하며 보낼 수도 없는 글을 적어보았어요.

당신이 항상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축복받으소서. (부치지 못한 편지, 179~180쪽)

 

이 책은 저자가 40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열기 위해 그동안 써온 글들을 묶어서 낸 수필집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고향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 과거 재직했거나 현재 재직하고 있는 학교와 교육에 대한 생각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자는 수필 쓰기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고 삶의 옷깃을 늘 새롭게 여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칠순에 발간하기로 한 두 번째 수필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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