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⑰ 늦모내기와 밀수제비
[꽃 피어날 추억] ⑰ 늦모내기와 밀수제비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7.13 17: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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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빗물만으로 모를 심었던 시절. 계속되는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으면 모 대신에 조를 심었다. 7월 중순 이후에 비가 내렸을 때 모가 살아있는 농가는 삿갓을 쓰고, 도룡이를 어깨에 걸치고 비를 맞아 추위에 떨며 모를 심었다. 그때 밀수제비 한 그릇을 서서 먹었는데 맛이 있었던 추억이 뇌리를 스친다.
벌모를 심었을 때의 사진입니다. 유병길 기자
벌모를 심었을 때의 사진입니다. 유병길 기자

195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의 모내기는 6월 상순에 시작하여 하순이면 끝이 났다. 천수답이 많은 ‘새마’ 봄부터 계속된 가뭄으로 7월 중순까지 모를 심지 못하였다. 겨우 20%도 정도 심었으나, 심은 논의 벼도 물이 말라서 죽어가고 있었다. 못자리의 모를 지키려고 물지게로 물을 운반하여 바가지로 물을 뿌리며 모를 살리려고 노력하였다. 내리쬐는 땡볕에 모는 말라 죽어갔다. 새보 들, 못 밑들에 논이 많은 부잣집은 모내기를 하였으나, 앞 뒷들, 각골, 백갈, 기말기 들에 논이 있는 대부분의 농가는 모내기를 못 하였다.

모가 말라 죽은 농가는 먼지가 나는 마른 논에 소로 쓰레질하고, 골을 타고 조를 파종하고 흙을 덮었다. 모내는 시기에 제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2~3년에 한 해는 가뭄으로 모를 못 심어 먹고 살아가기가 힘들었다.

갑이네 집의 농사일은 회갑이 지나신 할아버지가 모든 일을 하셨다. 갑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갔다 오면 소 풀 뜯고, 소먹이는 일은 도맡아 하였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땐 모내기, 벼 베기, 탈곡, 보리 파종 등 일요일이면 시험 기간이라도 농사일을 도와 드렸다. 가뭄이 심한 늦모내기 할 때의 일인가 싶다.

갑이네 각골 논은 둑 밑에 조그마한 샘이 있어서 양은 적지만 계속 물이 솟아났다. 찰흙 논이라 이른 봄에 논둑을 바르고 논물을 가두면, 일모작으로 일찍 모내기를 할 수 있는 논이다. 그해는 봄부터 계속된 가뭄으로 논물을 가두지 못하고 샘 앞에 겨우 못자리만 넉넉하게 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샘물을 퍼서 모판에 뿌려 모를 살렸다. 나오는 샘물의 양도 줄어 아침에 한 번 밖에 물을 줄 수가 없어 걱정이었다.

7월 중순에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온 식구가 나와서 모를 찌고 논물이 고인 물길 따라 쓰레질을 하는데, 천둥 번개가 치면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린 모가 다 말라 죽어서 아버지와 같이 갑이네 모 심어주고 모가 남으면 얻어오기로 하였다. 1모작으로 일찍 모내기할 때 같으면 내일로 미루겠지만, 지금은 모내기 시기가 너무 늦어 한시라도 빨리 모를 심어야 했다. 갑이네 집뿐만 아니라 모가 있는 집은 억수 같이 쏟아지는 그 비를 맞으며 모내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수리 시설이 없는 그때 오직 하늘의 빗물만이 유일한 농업용수였다.

도룡이(도리) 짚으로 엮어 만들어 비오는 날 등에 걸쳤다. 유병길 기자
도룡이(도리) 짚으로 엮어 만들어 비오는 날 어깨에 걸쳤다. 유병길 기자

그땐 비옷이나 비닐 우위가 없었고 비를 가리는 것이라곤, 짚으로 엮어 만든 도롱이(도리)와 삿갓뿐 이였다. 도롱이(도리)를 어깨에 걸치고 머리에 삿갓을 쓰면 걸어 다녀도 비를 피할 수 있고, 엎드려서 모를 심어도 엉덩이까지 덮어 주어 비 맞지 않았다.

삿갓을 쓰고 짚 도룡이를 등에 걸치고 비 올때 입었던 사진입니다. 유병길 기자
삿갓을 쓰고 짚 도룡이를 어깨에 걸친 비 올 때의 사진입니다. 유병길 기자

도롱이(도리)가 비를 맞으면 물기를 흡수하여 무거워져 무게 때문에 등이 따뜻해 추위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너무나 많은 비가 내려서 삿갓이 새어, 빗물이 머리에서 얼굴로 흘러내리고, 어깨, 팔에 떨어져 너무 추웠다. 오들오들 떨면서 아픈 허리를 펴며 모를 심었다. 갑이 어머니가 새참으로 감자, 호박을 넣어 얼큰하게 밀수제비를 끓여 오셨다. 한 숟가락 떠서 고시네(고수레) 소리를 치며 먼저 논에 던졌다.

둑이 젖어 앉을 장소가 없어 따끈한 수제비가 가득한 사발을 들고 서서 먹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맛이 있었는지. 갑이와 눈길을 맞추고 서로 웃으며 먹었다. 삿갓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수제비 그릇에 떨어져 국물을 보탰지만, 뜨거운 수제비를 먹으니 추위도 풀리고 맛이 있었다. 그때 비를 맞으며 서서 먹은 그 수제비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모를 절반 정도 심었을 때 점심 광주리가 나왔다. 점심도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서서 먹었다. 네 마지기 모를 심어주고 남은 모춤 두 지게를 지고 와서 앞 논 한 마지기에 모를 심은 기억이 있다. 앞 논은 비만 오면 동네 물이 들어가 조를 심을 수 없는 논이다.

조 이삭의 사진입니다. 유병길 기자
조 이삭의 사진입니다. 유병길 기자

 

가을이 되면 아래 윗마을 앞에는 벼 이삭이 고개를 숙여 황금 들판이지만 ‘새마’ 마을 앞에는 조 이삭이 바람에 흔들리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공검저수지가 조성되고 이천리 뒷산에 터널을 뚫어 상주들로 가는 수로가 새보들 기말기 들을 지나면서 앞뒷들 각골들에도 2단, 3단 양수로 제때 모내기를 할 수있어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우리는 밀가루를 사다가 가끔 밀수제비를 끓여 먹어 보지만, 배고플 그때 그 맛은 아닌 것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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