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의 두리반, 작지만 건강한 정동교회 권오진 목사
지역사회의 두리반, 작지만 건강한 정동교회 권오진 목사
  • 강효금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7.02 15: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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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성원과 함께하며 나누고 섬기는 공동체
해외에도 작은 예배당을 지어 봉헌
희년(50주년) 을 맞아 ‘거꾸로 헌금’ 등 의미 있는 행사로 기쁨 나눠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을 조각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희년을 맞아 제작된 것으로 석공예 명장인 윤만걸 장로의 작품이다. 이원선 기자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을 조각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성전 건축 기념으로 제작한 것으로 석공예 명장인 윤만걸 장로의 작품이다. 이원선 기자

 

50이라는 숫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공자는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해서 ‘지천명’이라 했고, 교회에서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나 오십 년 되는 해를 ‘희년’이라 하여 ‘기쁨의 해’로 선포한다. 희년을 맞아 땅과 집은 주인에게 돌려주고, 노예는 해방시키는 이야기가 구약에 실려 있다. 예수 또한 사람이 모인 회당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공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누가 복음 4:18-19)

 

권오진 목사의 방은 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책을 읽는 독서 마니아다. 가톨릭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을 통해 늘 깨어있는 목회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원선 기자
권오진 목사의 방은 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책을 읽는 독서 마니아다. 가톨릭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을 통해 늘 깨어있는 목회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원선 기자

 

작은 교회지만 나눔과 섬김을 바탕으로 ‘성경적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대구 정동교회 권오진 목사를 찾았다.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정동교회. 큰길에서 골목을 따라 들어서면 입구에 실핏줄이 드러난 투박한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도하는 ‘기도손’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성전 건축 기념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거꾸로 헌금'으로 지역민과 사랑을 나누는 교회

- 희년을 맞아 오래전부터 평신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과정을 거쳐, 다른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일을 실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우리 교회 공동체는 여러 신도가 모여 팀별로 의견을 나누고 또 거기서 실천할 사항을 결정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준비위원회'를 꾸려, 희년인 올해 어떻게 하면 가난한 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억눌린 이에게 기쁨을 주는 사역을 할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전부터 실천하는 것이 ‘거꾸로 헌금’입니다. ‘헌금’하면 신도들이 교회에 와서 스스로 정성껏 마련한 예물을 바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동교회는 오히려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돈을 드리며, 이웃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거꾸로 헌금은 2013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올해 총 세 차례 실시할 예정인데요. 이번 부활절에 신도들에게 2만 원씩 총 600만 원을 나누었습니다. 이 ‘거꾸로 헌금’의 목적은 하느님께 받은 것으로 이웃을 돕고 나누는 데 있습니다. 저는 신도들에게 배가 고프면 하나님이 주신 이 돈으로 밥을 사 먹어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신도들이 낸 보고서에는 가슴 뭉클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구두 수선하는 분과 작은 식당을 하는 분께 맛있는 커피를 대접했다고 했고, 또 다른 분은 우유 21개를 사서 장에 나온 분들에게 드렸다고 했습니다. 물티슈를 사서 독거 어르신들에게 나누기도 하고, 옆집 사는 이웃이 갑자기 아파 병원에 가는 데 도왔다는 분도 있습니다. 100세를 맞은 친구 모친을 위해 옷과 양말을 보냈다는 이야기, 가난한 이웃에게 교통비에 보태라며 건넸다는 얘기 등등. 2만 원, 적다면 적은 돈인데도 너무나 크게 쓰이고 있다는 데 대해 오히려 목사인 제가 감동을 합니다.

 

'기쁨의 섬김과 나눔'으로 모든 억눌린 이가 행복한 세상으로

- 지역민과 함께하는 활기찬 교회라는 인상입니다. 희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또 다른 일들도 소개해 주시지요.

▶ 지난 4월 11일에 기쁨의 해를 기념하는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의 마음이 소나무처럼 변함없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기도손’은 석공예 명장의 작품으로 기꺼이 우리 교회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신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촬영해서 그 사진을 전시하기로 한 행사도 준비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모일 수가 없어 부득이하게 증명사진을 복사해서 걸어놓았습니다. ‘기쁨의 섬김과 나눔’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어린 학생과 어려운 교회, 다자녀 가정, 새터민과 이주민에게도 교인들의 정성을 전달했습니다. 700개의 ‘사랑의 떡’을 마련해서 이웃에 사는 분들과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피로사회, 피로 회복!’이라는 슬로건으로 ‘기쁨의 헌혈’ 활동도 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택시 데이’입니다. 신도들에게 5월 23일 주일에는 택시를 이용해서 교회에 오라고 하며, 1만 원 씩을 지원했습니다. 당일 교회에 도착한 기사님들을 위해서도 선물과 중식비 1만 원도 전했습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더 커지고, 그 반향은 멀리 퍼져갑니다. 저는 그 사랑의 힘을 믿습니다. 작은 마음이 모여 더 나은 세상, 보시니 좋았던 세상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 ‘정동관현악단’을 비롯해 ‘인문학 콘서트’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 '정동관혁악단'은 어린 학생들이 모여 연주합니다. 무엇보다 팬데믹으로 인해 ‘인문학 콘서트’가 중단된 것이 아쉽습니다.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문을 열 생각입니다. 연탄길의 저자인 이철환 작가, 공병호 박사, 김형석 박사, 서울대 명예교수인 박동규 교수, 조서환 회장 등 쟁쟁한 강사들이 참여해서 지역민에게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작은 교회에 강사료도 얼마 드리지 않는데, 기꺼이 강의해 주신 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목사인 제가 설교하는 것보다, 그분들의 삶이 묻어난 이야기를 통해 신자들도 감동하고 즐거워합니다. 특히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와주신 이철환 작가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벽돌을 옮기던 아버지의 모습 통해 목회자의 길을 소명으로

- ‘작은 교회’여서 더 많은 일을 알차게 해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목사님의 성장환경도 궁금해집니다.

▶ 선친께서 1950년대부터 28년 동안 경안노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셨습니다. 안동 인근에 시골 마을을 돌며 전도하고, 교인이 모이면 벽돌을 만들어 직접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개척한 교회가 안동 두산교회를 비롯해 3곳입니다. 제 마음에 새겨진 아버지의 모습은 땀 흘리며 봉사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지금도 정동교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선교의 열매인 ‘ 작은 교회 봉헌’입니다. 누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교인 가정의 자발적인 참여로, 가난한 나라에 교회를 짓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인도, 중국, 네팔, 캄보디아 등지에 55곳의 아름다운 교회를 봉헌했습니다. 또 지금도 예배당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저는 외국에 세워지는 작지만 아름다운 교회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세우셨던 벽돌로 된 예배당을 떠올립니다. 아버지의 헌신과 섬김의 모습이, 저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합니다.

디모테 후서 2, 15의 말씀을 새긴 이 돌 성경은 안수 기념으로 받은 선물이다. 말씀처럼 부끄러울 것 없이 온전한 하느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한다.  이원선 기자
디모테 후서 2, 15의 말씀을 새긴 이 돌 성경은 안수 기념으로 받은 선물이다. 말씀처럼 부끄러울 것 없이 온전한 하느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한다. 이원선 기자

 

'보시니 좋았던' 세상을 향해

- 이웃과 기쁨을 나누고 섬기는 모습이 성경에 묘사된 초대 교회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희년을 넘어 앞으로 교회공동체가 나아갈 방향도 들려주세요.

▶ 저는 ‘목회와 상담’ 전공으로 목회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논문 주제도 ‘성경적 가정 세우기’입니다. 가정은 가장 작은 단위이지만 그 역할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를 찾아오는 분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저의 소명과 교회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합니다. 상담 중에 그분의 병을 발견하고 자식들에게 연락해서 수술을 받게 한 적도 있을 만큼, 함께 얼굴을 맞대는 일은 중요합니다. 저는 교회는 평신도들이 세워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아픔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끊임없이 개혁을 통해 스스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담아낼 수 있는 공동체, 하나 되는 교회공동체가 제가 꿈꾸는 모습입니다. 저는 정동교회에 부임하며 이미 은퇴 시기도 정해 놓았습니다. 끝을 알기에 지금 시간이 더 애틋하고 소중합니다.

작지만 아름답다는 말로도 모자라는 깊고 너른 공동체는 지역사회의 못자리이자 두리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힘든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동체, ‘보시니 좋았던’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정동교회는 권오진 목사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유쾌한 모습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