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묻힌 이방인] ② 6.25참전 인도 군인 ‘우니 나야’ 대령
[대구에 묻힌 이방인] ② 6.25참전 인도 군인 ‘우니 나야’ 대령
  • 이배현 기자
  • 승인 2021.06.24 1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5전쟁 낙동강 전투현장에서 지뢰 사고로 전사
범어공원 주일골에서 화장 후 묘지·기념비 조성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 안보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
6.25참전 인도 군인 '우니 나야' 대령이 범어공원에 잠들어 있다. 수성구청
6.25참전 인도 군인 '우니 나야' 대령이 범어공원에 잠들어 있다. 수성구청

대구 수성구 도심에 6.25참전 외국 군인의 묘지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드물 것이다. 바로 인도 출신의 고(故) ‘우니 나야’ 대령의 묘지이다.

범어네거리에서 수성구청을 지나 조금만 가다 보면 KBS대구방송총국 표지판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돌아 300여 미터를 들어가면 KBS방송국이 있고 거기서 200여 미터 더 가면 범어공원이 나온다. 범어공원은 도심에 있지만 제법 큰 산이다. 범어공원 입구 안내판에 나야 대령 기념비 위치가 소개되어 있다. 공원 입구에서 100여 미터만 올라가면 단아하게 단장된 나야 대령의 묘지가 나온다.

우니 나야(Unni Naya)대령은 한국전쟁당시 국제연합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한국에 들어왔다.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1950년 8월 12일 경북 칠곡군 왜관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지뢰 폭발로 39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전쟁 중이라 고국으로의 송환이 어려웠던 나야 대령은 1950년 8월 13일 수성구 범어동 산 156번지 속칭 주일골에서 화장하였고, 같은 장소에 1950년 12월 7일 당시 조재천 경상북도지사가 각계의 성금을 모아 나야 대령 기념비를 건립했다.

남편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비말라 나야' 여사의 영현이 함께 안장되어 있다. 수성구청
남편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비말라 나야' 여사의 영현이 함께 안장되어 있다. 수성구청

당시 고국 인도에는 결혼한 지 3년 된 미망인 ‘비말라 나야’ 여사와 2살 된 딸 ‘파바시 모한’이 있었다. 나야 대령이 순직한 후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한 비말라 나야 여사는 ‘남편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2011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딸 파바시 모한이 어머니의 뜻을 수성구청에 전해 왔고, 2012년 8월 24일 비말라 나야 여사의 영현 안장식을 거행하여 영혼이나마 남편 곁에 묻히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2013년 1월 4일자 매일신문에 소개되어 대구시민에게 감동을 안긴 적이 있다. 사연은 나야 대령의 딸 파바시 모한이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파바시 모한 씨는 2013년 ‘아버지 기념비를 잘 보살펴 달라’며 미화 1천 달러를 우편 채권으로 대구 수성구청장 앞으로 보내면서 '인도에서 대구로' 국경을 넘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전해왔다. 파바시 모한 씨는 돈과 함께 동봉한 편지에 "이제 한국과 대구는 저의 제2의 고향이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국에 잠들어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대구에 대한 신뢰를 표시하고 "신이 허락하신다면 다시 멋진 한국을 방문하고 싶고 한국과 인도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적었다.

故 우니 나야 대령의 유가족들이 범어공원에 있는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수성구청
故 우니 나야 대령의 유가족들이 범어공원에 있는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수성구청

파바시 모한 씨는 어머니의 영현 안장식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았다. "유골을 아버지 기념비 옆에 묻게 해 달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실제 이렇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아버지에게 마지막 안식처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기념비까지 설치해 존경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명 받았다"고 했다.

당시 파바시 모한의 사연이 매일신문에 알려진 뒤 많은 시민들이 기념비를 관리하는 데 써달라며 십시일반 보낸 성금이 500만원을 넘었다고 한다. 수성구청은 비말라 나야 여사 영현 안장식을 계기로 1천300만 원을 들여 헌화대 설치 등 나야 대령 기념비 보수와 주변 정비 공사를 하여 지금까지 관리해오고 있다.

수성구청에서는 이국인으로서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숨진 故 나야 대령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2003년 9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나야 대령 기념비를 국가현충시설로 지정 받았다. 매년 현충일을 비롯해 주한 인도대사 이·취임 등이 있으면 대령의 기념비는 인도 정부와 우리 시민, 학생 등 참배객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올해 6월 6일 현충일에도 김대권 수성구청장, 주한인도대사관 국방무관인 ‘라케쉬 쿠마르 미쉬라’ 대령, 주민, 학생, 참전용사, 50사단 군인 등이 참석하여 기념식을 거행했다.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김대권 수성구청장이 묘역을 찾아 참배, 헌화하고 있다. 수성구청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김대권 수성구청장이 묘역을 찾아 참배, 헌화하고 있다. 수성구청

참배 후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장렬히 순직한 나야 대령의 기념비가 수성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이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용사들의 거룩한 희생을 추모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그 정신을 기리는 사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수성구는 故나야 대령으로 맺게 된 인연을 계기로 2013년 나야 대령의 고향이자 인도의 교육도시인 푸네시와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교류‧협력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방호복 등 코로나19 방역물품을 푸네시에 지원한 바 있다.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국제교류도시인 인도 푸네시와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특히 학생 교류단 방문, 상호 문화교류, 경제협력 등을 통해 故 나야 대령으로 맺게 된 한국과 인도의 인연을 아름답게 이어 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북괴의 남침을 저지하다 숨진 고(故) 나야 대령에게 신의 가호가 있으라’ 39세의 젊은 나이에 이국땅에 묻혀야 했던 인도군 대령 우니 나야(Unni Nayar)를 기리는 비문의 한 구절이다. 제71주년 6.25전쟁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주한 인도대사 스리프리야 랑가나탄(오른쪽에서 세번째)이 김대권 수성구청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기념비를 참배하고 있다. 수성구청
주한 인도대사 스리프리야 랑가나탄(오른쪽에서 세번째)이 김대권 수성구청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기념비를 참배하고 있다. 수성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