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정인진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장서 산책] 정인진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6.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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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법의 우울한 풍경

저자 정인진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7기로 수료했다. 1980년 판사로 임관하여 일하다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2004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의 목차는 '1장 변호사가 된 판사, 2장 법을 채우는 상상력, 3장 누구를 위한 법인가?, 4장 사법 과잉과 사법 불신, 5장 우리 사법의 풍경'으로 되어 있다.

1. 판결이라는 글쓰기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판결은 법관이 지닌 유일한 단어다. 법관은 사법권이라는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판결이라는 기호 체계만을 부여받은 셈이다. 즉 법관의 글쓰기는 기이하게도 그 행위를 권력의 행사 방식으로 삼는 특징이 있다.

시사만화에서는 종종 법관을 머리에 문양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법대(法臺) 뒤에 앉아 방망이를 내리치는 사람으로 그린다. 그러나 법관에게는 그런 모자도 방망이도 없다. 법정에 앉아있기도 하나, 그건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뿐이다. 법관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 앉아 판결을 쓰는 사람이다. 법관은 '판결 써야 하는데' 왜 회의를 이렇게 오래 하느냐고 동료들에게 투덜대고, '판결 쓸' 시간도 없는데 무슨 여행이냐고 가족들을 나무라고, '판결 쓰다가' 다 보내버린 세월이 억울하다며 친구에게 하소연한다. '판결은 잘 쓰지만' 인간성이 글러 먹었다고 욕을 먹는 법관이 있는가 하면, 사람은 좋은데 '판결이 좀 시원치 않은' 법관도 있다. 법관에게 판결은 그의 직업적 모습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법관의 일과는 법정에 나가는 것을 빼면 대부분 기록을 보고, 판결문을 작성하고, 작성된 판결문을 검토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법관은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일을 하고, 매일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거나 퇴근하더라도 집에서 일을 하는데, 그 일의 내용이 판결문 작성이거나 기록 검토다. 법관 재직 중에 나는 소속 법원의 판사들 전원에게 보자기를 나누어주는 법원장을 본 일이 있다. 기록을 싸가지고 가서 집에서도 일을 하라는 뜻으로 준 보자기였다. 그래서 법관 생활은 '보따리 장사'다.

법관들은 과중하다 못해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린다. 이 과중한 업무량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원인이다. 법관의 경력 중에서도 가장 고생스러운 때는 고등법원의 배석판사 노릇을 할 때인데, 대부분의 고등법원 판사들은 고등법원 재직 기간 중 한 번이나 두 번쯤 몸에 심각한 고장이 난다. 그래서 서울고등법원의 별명은 서울고생법원 또는 서울고등학교다.(25~27쪽)

2. 판사의 막말

판사가 법정에서 막말을 했다고 야단들이다. 대법원이 대책을 세운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136쪽)

언론에 보도된 막말은 다양하다.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은 노인에게 했을 듯 싶다. 실제로 노인들이 당사자로 법정에 나와 하는 말이 요령부득인 때가 많기는 한데, 그래도 판사는 일단 참아야 한다. "터진 입이라고......", "여자가 돼 가지고......", "왜 이렇게 더러운 사건들이 오지?", "부인한테 마약 먹여 결혼한 것 아니에요?", "이의 좋아하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같은 말이 나왔을 때의 법정 상황도 대강 짐작이 간다.(137쪽)

막말이 담당 판사의 품성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나 판사의 막말은 품성 여하를 넘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막말뿐이 아니라 막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이를 도외시하면 문제의 해법이 없다. 막말은 단순한 말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건과 당사자에 대한 판사의 잠재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피곤, 짜증, 초조함, 분노의 표출이다.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격무가 낳은 결과이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요령부득의 변론을 할 수밖에 없는 소송 현실의 문제이며, 법정에서 필요한 의사소통 방법에 대한 무지나 훈련 부족이 빚는 현상이기도 하다.(138쪽)

한편 상당수 판사의 의식 속에는 내가 사건을 다 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도 밉살스럽고 이악스러운 당사자가 '뻔한' 이야기, 사실과는 거리가 먼 듯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그것을 오래 듣고 싶지 않기도 하다. 판사는 감정 노동에 익숙하지 않고 시간에 쫓긴다는 것, 그런데 당사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다는 것, 여기에 법정의 딜레마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인심은 곳간에서 나는 법, 근본적 해결책은 판사의 수를 늘리는 데 있다. 이 당연한 해답에 대하여는 이상스럽게도 여러 반론이 제기되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거니와 상황은 시급하다.

다음은 재교육이다. 대다수의 판사는 고분고분한 당사자와 변호사에 익숙해져 있을 뿐, 실상 법정에서 필요한 소통 방법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학습한 일이 없다. 판사 자신이 재판하는 모습을 녹화하여 듣고 보는 것이 방책의 첫 걸음일 것이다. 나아가 법정에서 소통이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관해 제대로 된 학술적 연구가 있어야 하고, 그에 기초한 교육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139~140쪽)

3. 검찰 개혁은 왜 어려운가

사법 개혁과 검찰 개혁은 과거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과제다. 그중 피부로 느껴질 만한 변화는 로스쿨 제도의 도입 정도 아니었나 싶다.

검찰 개혁에 한정해서 보면, 개혁 좌절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치권력 자체에 있다. 검찰에 대한 편향적 인사나 검찰권행사를 정권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쪽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개혁을 어렵게 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법조라는 직역의 체질이 개혁과 친하지 않다는 사정이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의 세 직역을 통틀어 법조삼륜(法曹三輪)이라고 이른다. 그 구성원들은 학생 시절 우등생과 모범생의 체험을 거쳐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사법시험을 통과한다. 그중 판사나 검사가 된 이들은 다시 도제식 훈련을 받고 조직의 논리와 코드를 몸으로 익힌다. 그러고는 동기생들 간의 경쟁에 부딪히고 인정 욕구에 시달리면서 조직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형성되어 간다.

조직은 이들을 보호한다. 늘 비난받는 '제 식구 감싸기'가 그 보호의 예다. 변호사가 된 이른바 전관(前官)까지 아울러 학력과 경력으로 끈끈한 인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 규모는 작아도 강한 세력은 외부 세계가 건드리기 어려운 결속력과 응집력을 지니고 있다.

법조인들은 대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 또 대부분의 판사와 검사들은 태생적으로 부지런하고 일에 지쳐 있다.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을 일단 논외로 친다면,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체로 공정하고 양심적이며 업무 처리도 법에 기속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내가 이렇게 뼈 빠지게 그리고 양심적으로 일하는데 무슨 개혁이 필요하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마 자신이 정치권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상당수 판사들이나 검사들은 정치권에서 들고 나오는 개혁에 부정적일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법조인들에게 개혁을 주문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법조 직역이 지닌 전문성이다. 비전문가가 뭐라고 하다가는 자칫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과 반발에 부딪힌다. 물론 이런 전문성은 내부적으로 독선을 낳을 위험이 있고, 법조인들의 자의식을 키운다. 법학자 김두식은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이 세 직역을 '신성(神聖)가족'이라고 불렀다. 이들을 손보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다.(271~273쪽)

이 책은 왜 오늘날 사법이 불신받는지, 시민 위에 군림하는 법원을 시민을 위해 일하는 법원으로 바꾸기가 왜 이토록 어려운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저자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난 솔직한 고백을 통해 속속들이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는 민주주의를 법정의 원칙으로 세우는 사법 개혁이야말로 더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임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판사들의 내면에 박힌 법관제일주의라는 반시대적 오만을 민주주의 원칙으로 바로 세우지 않는 한 우리의 국민주권은 언제까지나 반쪽짜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임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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