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를 독립한 의료계 스승 박영춘 박사
‘신경과’를 독립한 의료계 스승 박영춘 박사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1.06.08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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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신경과'에서 '신경과' 독립운동 앞장
1983년 불모지였던 ‘대한신경과 학회’ 창립

 

한국 의료계 신경과를 독립, 대한신경과 학회를 창설한 박영춘 박사   유무근 기자

 

40년 전 한국 의료계는 정신과에서 ‘신경과’ 진료가 합병되어 있어 신경계 진료 전문의 의사가 없었다. 박영춘 박사는 1970년 동산기독병원에 입사하여 1973년 미국으로 신경학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동산기독병원’과 ‘계명대학교’가 합병할 때인 1977년 귀국했다.

불모지였던 신경과를 창설하고 신경과 초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100여명의 제자를 양성하고 배출시켰다. 한사코 거부하는 인터뷰를 몇계절 동안 권유로 어렵게 자리한 박영춘 박사의 의료계 경험담과 덕담을 들었다.

 

- 한국 의료계 신경과 독립에 획기적 일을 하셨는데, 그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 미국에서 신경과 3년, 내과 1년, 4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당시에 신경과가 정신과에 속해 있어 ‘정신신경과’였지요. 정신과 전유물이라 안 떼주려 해서 애를 먹었지요. 신경계에 아는 의사도 별로 없으면서 시간만 끌고 하여, 신경과 독립을 위한 운동에 돌입했지요.

신경학을 연구하는 서울에 대학병원 교수 등 10명 정도를 영입하여, 정부, 청와대, 보사부, 문교부 등에 탄원서와 편지를 넣고 노력한 결과 1983년에 '신경과'를 독립하였습니다. 그해 바로 ‘대한신경과 학회’를 창설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어서 학회를 만들고, 신경과 전문의 제도를 만들어 3년 수료 후 시험 성적이 우수하면 전문의를 주고 그렇게 양성했지요.1984년부터 점차 각 대학에서 신경과가 생기고, 초창기에 정신과 의사는 100명 정도였지만. 신경과가 분리되어 지금은 개원의 포함 2,500여 명 됩니다.

- 교수 재직 때 제자 양성이 많았으리라 봅니다.

◆ 1978년부터 교수했지요. 내과 초대 교수, 주임 과장하다가 1984년도 신경과 창설하여 초대 주임 교수했지요. 내가 2001년도 정년 퇴임했으니, 40년 동안 1년에 두 명 정도 100명 가까이 제자를 양성했다고 봅니다. 지금도 병원에 근무하는 제자들 많습니다. 계대, 경대는 물론이고, 영대, 가톨릭대, 파티마서도 교수로 진료합니다.

- 박사님께서 신경과는 어떤 의미입니까?

◆ 의사의 본분은 환자를 보는 거 아닙니까? 내과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인체의 내에도 순환기 내과, 호흡기 내과, 내분비내과, 정신신경과가 있듯이 더 세분된 내과가 절실하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고 있다. 환자가 있기에 내가 있다. 환자 치유는 나의 사명감이다.

- 박사님의 근황과 지금 계시는 성심 요양병원을 말씀해주세요.

◆ 동산병원에서 30년 근무하고 2001년 정년 퇴임하였습니다. 동산병원 인근에서 2017년까지 ‘박영춘 내과 신경과 의원’ 개원했습니다. 눈도 침침해지고, 아내의 건강도 고려하여, 만 17년 만에 평소 훌륭하다고 생각하던 임정근 제자 교수에게 병원을 양도했습니다. 동시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醫) 개원하던 아내도 연로하여 병원을 접고, 인생 후반전에 아내와 함께 여행도 가고 여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했던 여가는 그리 길지 않았다. 평소 아끼고 유대 깊은, 대구 달서구 송현동 성심병원 (병원장 곽용철) 후배의 간곡한 권유로, 요양병원 동 신경과를 증설하여, 2019년 11월부터 다시 가운을 입게 되었다.

- 의료계 진료 50년 동안 진료하면서 기억나는 보람된 점을 듣고 싶습니다.

◆ 보람이라 하는 것은 당시 불모지였던 신경과를 독립시키고, 명의(名醫) 제자들을 양성하고 배출하여 국민 건강증진 기여에 보람을 느낍니다. 환자가 갑자기 쓰러져 골든타임 내에 수술하게 된 사례들은 보람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의무겠지요.

- 환자를 진료하면서 의사로서의 보람이 있었던 점을 알고 싶습니다.

◆ 교수 수십 년 했으니 안다는 지인은 다 왔다고 보면 됩니다. 한두 건도 아니고, 환자들 거의 기억 못 해요. 기억 나는 몇 건은, 학창 시절 친구들도 무수히 중풍으로 실려 와서 혼수상태에 빠진 것을 겨우 살려준 사례들도 많다. 아마 친구들 생명 연장해준 것만 백 명은 훨씬 넘을 것이오. 내가 87세인데 주변에 지인들도 이제는 소식도 별로 없고 고인이 된 벗들도 많다. 그래도 다급하게 찾아온 친구를 진료할 수 있어 의사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 의사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실질적인 주권자이며 구세주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수익성과 연계하여 편향된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어느 시기나 마찬가지지만 돈을 많이 밝히는 사람이 있지만, 의사 중에도 다 그렇게 매도할 수는 없다. 돈과 관계없이 청백한 사람도 있고, 제각기 다른 사람인지라, 환자의 치유가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의사는 돈을 추구하면 안 돼요. 간혹 양심 없는 일부 의사들 때문에 훌륭한 의사들이 묻히기도 합니다.

- 생활해 오면서 생활신조라 할까? 좌우명과 애창곡 있으면 알고 싶습니다.

◆ 환자 성실히 보는 것과 하루하루 성실히 사는 것이오. 뭐 딴 거 있겠소? 대(代)로 내려오는 좌우명은 따로 없고, 있다 해 봐야 헛구호에 그쳐요. 애창곡은 클래식부터 해서 다양한 장르를 유튜브로 자주 들어요. 가곡도 좋고 트로트도 좋고, 듣는 것은 즐기는 편이지요.

- 마지막으로, 장수 시대에 건강에 관심이 많은, 시니어들에게 덕목이 될 만한 한 말씀 해주십시오.

◆ 건강 정보는, TV 등 각종 프로그램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 나이가 들수록 소일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생활에 목표를 세우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사는 것, 그게 건강의 원천입니다.

* 틈만 나면 부지런히 걷고, 육체와 두뇌의 활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 그게 건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 웰빙에 관한 것은 술 담배 절제하고, 과식(過食)하지 말고 고기 과일 채소 해물도 골고루 먹되 소식을 해야 합니다.

* 그리고 가족력입니다.

가족 병력 이력에 대해 특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 동산병원 병원장도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요. 선친과 조부께서도 위암으로 사망했는데 본인은 등한시하고 있었어요. 의학박사 병원장도, 가족 병력 등한시 하여 한 생명을 놓쳐 버린 것입니다.

박영춘 박사는 시니어들의 건강에 조언한다. 틈만 나면 걷자. 식사를 거르지 말자. 건강검진 자주 받고 가족력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지금 당신이 주무시고 있는 한밤에도, 전국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박영춘 박사 제자 진료실은 불이 켜져 있을 것이다.

 

박영춘 박사는

◆ 1935년(87세)생, 1961년 경북 의대에서 전문의 취득, 1966년 졸업 군의관으로 입대, 1970년 의학박사 취득, 1970년 동산기독병원 내과 전문의 입사, 1973년 미국 유학 4년 다녀와서 1977년 신설된 신경과 초대 교수로 재직하였다. 30년 근무 후 2001년 65세로 정년 퇴임하고, 2017년까지 대신동 ‘박영춘 내과 신경과 의원'을 개원(開院)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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