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와 명리 이야기] 일상생활과 음양(陰陽)
[사주와 명리 이야기] 일상생활과 음양(陰陽)
  • 김종기 기자
  • 승인 2021.05.31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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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도. 픽사베이
음양도. 픽사베이

우리 일상에는 음양오행 사상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의식주를 비롯한 문화와 풍습은 물론 개인의 정신과 육체 활동에도 음양오행 사상이 스며들어 있다.

명절에 세배를 드리거나 사람들과 인사를 할 때 절은 한번 한다. 그러나 문상을 하거나 제사를 지낼 때는 두 번 즉 재배(再拜) 한다. 여자는 사배(四(拜)를 한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보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코 살아왔다.

음양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살아있는 세상은 양(陽)의 세계이고 죽음이나 사후 세계는 음(陰)의 세계다. 양의 숫자는 홀수이므로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한번을 하고, 음의 숫자는 짝수로 돌아가신 분에게는 두 번 하는 것이다.

여자는 왜 사배를 하는가? 남자는 양이라 홀수이고 여자는 음이라 짝수다. 여자는 음의 세계에 있는 분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 음의 배수인 네 번을 하는 것이다.

절을 할 때 두 손을 맞잡아 공경의 뜻을 표하는 것을 공수(拱手)라 한다. 이때도 남녀의 손 위치가 다르다. 자신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남자는 양으로 해 뜨는 쪽 동쪽이 되고, 여자는 음이므로 해지는 쪽 서쪽이 되는데 이를 '남동여서'(男東女西)라고 한다. 그러므로 남자의 경우는 동쪽이 왼손이므로 왼손을 위로 가게 잡고 여자는 서쪽이 오른손이므로 오른손을 위로 가게 잡는 것이다. 이를 남좌여우(男左女右)라 한다. 그러나 제사나 문상 때는 평상시와는 반대로 남우여좌(南右女左)를 한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남자와 여자는 상하 주종의 개념이 아니었다. 낮과 밤처럼 자연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조화를 꾀하려는 질서이자 합리적 규정이었다.

불교 신자는 부처님께 절을 할 때 삼배(三拜)를 한다.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에 귀의한다는 뜻도 있지만, 음양학에서 보면 부처님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신 분이고 또 3이란 숫자가 음양이 조화를 이루며 생긴 완성수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이나 행사에 참석할 때 우리는 가끔 자신의 자리를 알지 못해 당황하기도 한다.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의 위치가 바뀌는 실수도 한다. 웃어른이나 상사를 모시고 진행하는 행사나 회식 석상에서 자리 배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런 문제는 음양의 법칙만 이해한다면 간단하고 쉬운 일이다. 음양론에서는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다. 동쪽은 양, 서쪽은 음이다. 윗사람은 양이고, 아랫사람은 음이다. 좌측은 양이고, 우측은 음이다.

의식이나 예절의 절차에서 방향은 전후좌우(前後左右)로 하지 않고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구분한다. 전후좌우로 구분하면 어떤 사람의 전후좌우인지 혼란이 일어난다. 이럴 때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행사장의 방위는 자연적인 방위와는 상관없다. 언제나 제일 상석은 북쪽이라 생각하고 배치한다.

예식장에서는 주례가 서 있는 곳이 북쪽이다. 제사를 지낼 때는 신위를 모신 곳이 북쪽이다. 행사장은 단상이 있는 곳, 강의실에서는 강사가 서 있는 곳이 북쪽이다. 사무실이나 회식 자리는 상급자가 앉은 곳을 북쪽이라 생각하고 동서남북을 정하면 된다.

상석 앞을 남쪽으로 생각하고 왼쪽을 동쪽 오른쪽을 서쪽으로 정한다. 상석은 왕을 비롯한 웃어른이 언제나 북에서 남을 향해 앉아 있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웃어른이나 상사를 모시고 뒤따라갈 때는 윗사람의 우측 반보 뒤에서 따르는 것이 예의다. 윗사람은 왼쪽, 아랫사람은 오른쪽에 선다. 앉는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와 여자가 자리를 정할 때 남자의 우측에 여자가 앉는다. 편한 곳과 불편한 곳이 있으면 편한 곳을 상석으로 한다.

자동차 운전을 할 때도 신호가 없는 곳에서는 직진이 우선이고 좌회전이나 우회전은 나중에 진행한다. 직선은 양에 해당되고 좌회전이나 우회전은 곡선이라 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음양과 오행의 법칙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전통 예절이나 생활 주변에 널리 퍼져있다. ‘21세기에 무슨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냐 그러니까 꼰대 소리를 듣지’라고 할 수도 있다. 반듯이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음양오행 사상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 웃어른보다 앞서 걸어가게 되면 왠지 불편하다. 모두 다 한번 해 보시기 바란다. 불편한지 불편하지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