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⑫ '밀 서리'의 향수
[꽃 피어날 추억] ⑫ '밀 서리'의 향수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6.02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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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이 누렇게 익어 갈때 밀을 베어 밀이삭을 불속에 넣거나,
채반위에 쪄서 이삭을 손으로 비벼 껍질을 불어내고 밀알을 먹었다
밀 이삭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유병길 기자
초여름에 밀 이삭이 하루가 다르게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유병길 기자

1950년~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는 집집마다 밀농사를 지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가루 배급을 받기 전까지는 밀은 재배하여 정미소에서 밀가루를 빻아 먹었다. 제분기에서 나오는 흰 밀가루는 받아 국수를 해 먹었다. 껍질까지 들어가 누른 밀가루는 따로 받아 빵을 만들거나 전을 부쳐 먹었다. 조금 나오는 밀기울(밀껍질)은 반죽하여 누룩을 만들었다. 발효되고 마르면 절구에 빻아 가루를 만들어 두고 농주를 만들 때 넣었다. 밀은 보리보다 생육기간이 길어 수확시기가 늦다. 물을 조금이나마 대기 좋은 논에 밀을 심었다. 높기도 하고 길기도 길었던 보릿고개! 요즘 그때 배고픔의 참상을 어찌 이해할까?. 배고픈 아이들은 밀 이삭에 누른빛이 나는 해 질 무렵이면 밀 서리를 하였다. 공터나 도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 아이들이 밀밭에서 익어 가는 밀을 조금 베어 왔다. 마른 솔가지 등 나무를 구하여 불을 붙여 불이 활활 탈 때 밀대를 잡고 밀 이삭을 불에 넣어 이리저리 돌렸다. 먼저 수염에 빨간 불이 붙어 타고 이삭이 검게 그을리면서 이삭목에 불이 붙어 빨갛게 타면서 이삭이 끊어져 불 속으로 떨어졌다. 이삭이 거의 다 떨어졌을 때 밀대는 버렸다. 불을 헤쳐 타는 나뭇가지와 연기 나는 가지를 밖으로 버리고 윗옷을 벗어 양손에 잡고 벌려서 “확" "확” 세게 흔들어 바람을 일으켰다. 불티와 나뭇재는 날아가고 까맣게 타든 밀이삭만 남았다. 둘러앉아서 서로 먼저 먹으려고 뜨거운 밀 이삭을 주워 손바닥에 놓으면 뜨거워 이 손 저 손 옮기며 손바닥으로 비벼서 입으로 후후 불어 껍질을 날려 보냈다. 날려가지 않는 이삭 줄기는 버리고 새파랗게 익은 밀알만 입에 넣고 먹었다. 일찍 떨어진 밀알은 까맣게 탄 알도 있었다.  빨리 많이 먹으려고 대충대충 씹어서 삼켰다. 한창 먹을 때는 손바닥 비비는 소리와 후후 부는 소리만 날 뿐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먹고 난 후 고개를 들고 앞 친구를 보면 입 주위와 얼굴이 새까맣고 손바닥도 까맣게 되어 반들반들 윤기가 났다. 서로 쳐다보며 손가락질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다가 상대방의 얼굴에 까맣게 더 칠하려고 장난을 쳤다.밀밭 주인이 소리치며 쫓아오면 아이들은 도망갔다. 다음부터는 밀을 베어서 밀밭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에서 밀 서리를 하기도 하였다.

친구의 고모가 결혼하기 전에는 저녁에 고모 친구들이 모여 십자수를 놓았다. 밀 서리를 하려고 두세 명이 동네 앞이나 뒤편 밀밭에 가서 주인 모르게 밀이삭만 끊어 왔다. 솥에 물을 붓고 채반위에 밀 이삭을 펴놓고 소금물을 뿌렸다. 솥뚜껑을 덮고 불을 때어 김이 나도록 쪘다. 조금 있다가 뚜껑을 열고 소쿠리에 담아서 한두 이삭을 손바닥에 놓고 비비고 후후 불어서 새파란 밀알만을 입에 넣어 맛있게 먹었다. 고모 친구들이 밀이삭 끊어 올 때 무섭다고 친구가 불러서 몇 번 따라갔었다. 굶주린 배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밀 서리를 해서 먹는다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

밀 서리를 할 때쯤 익은 밀 이삭을 끊어서 손으로 비벼서 껍질을 후후 불어내고 밀알을 입에 넣고 삼키지 않고 계속 씹으면 매끈매끈한 껌이 입 안에 생겼다. 소리 내어 씹기도 하고 작은 풍선을 만들어 터트리면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어쩌다가 껌이 하나 생기면 한입에 넣지 않고 조금씩 떼어서 입에 넣고 단물을 빨아 먹으며 씹었다. 하루 종일 씹고 저녁에 잠을 잘 때는 벽에 붙여놓고 아침에 일어나면 굳어 있는 껌을 때어 다시 씹었다.

재래종 우리 밀은 연질밀이라 단백질 함량이 적어 쫄깃한 식감이 적었다. 미국산 밀가루는 경질밀이라 쫄깃한 식감이 강하여 빵이 잘 부풀어 오르고 맛이 있었다. 미국산 밀가루에 맛이 들면서 우리 밀을 재배하지 않아 사라졌다.

빨갛게 익어가는 앵두. 유병길 기자
빨갛게 익어가는 앵두. 유병길 기자

보리와 밀이 익어 갈 때면 뽕나무에는 오디가 검붉게 익어 뽕밭 주인 모르게 나무에 올라 오디를 따 먹었다. 장독대 옆 앵두도 익어갔다. 뒷산에 산딸기가 익어가면 주전자를 들고 산에 올라 배부르게 먹으면서 가득 따오면 온 가족이 같이 먹었다. 이때가 조금은 행복한 시기였다.

붉게 익어가는 산딸기. 유병길 기자
붉게 익어가는 산딸기. 유병길 기자

그때 같이 자란 서너 살 차이가 나는 형 친구들이 십여 명 되었다. 절반 이상은 하늘나라로 먼저 갔지만 ‘밀 서리’를 생각하면 그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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