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이선영 '지문'
[장서 산책] 이선영 '지문'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5.2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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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아동학대, 대학 내 성폭력…
우리는 폭력의 한가운데를 살았으나 끝내 함께 살아남지는 못했다

작가 이선영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양여자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 <천년의 침묵>으로 1억원 고료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문단을 배경으로 음모와 배신을 그린 <그 남자의 소설>, '신'의 존재에 의문을 던진 <신의 마지막 아이>,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를 돌아보는 <못찾겠다 꾀꼬리> 등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선 굵은 작품 세계를 선보여왔다. 현재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로 있다가 가평경찰서로 전근되어 온 백규민 형사는 청우산에서 여자 변사자가 발견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출동조사를 나간다. 변사자의 이름은 오기현, 실종신고를 한 사람은 오기현의 언니인 시간강사 윤의현이었다. 규민은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시신을 조사하면서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수사를 시작한다.

규민은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오기현의 친부 오창기가 경영하는 꽃새미 화원을 찾아가고, 그 화원을 관리하는 신명호를 만난다. 신명호는 어렸을 때부터 오창기에 의해 학대를 당해왔고, 오기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오창기의 의해 장님이 되었다.

그즈음 윤의현은 소속된 Y여대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 피해자인 김예나를 도와 이민흠 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게 하고, '글로벌 픽처스' 영화사 감독 임성재와 함께 자신의 쓴 소설 <비밀의 시대> 영화화를 진행한다.

규민이 다시 화원을 방문하던 날 신명호가 오창기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규민은 신명호를 체포하고 공범이 누구인지 수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오창기와 윤의현, 오기현, 신명호의 관계를 조사한다. 수사를 진행하던 규민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이 실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여 있음을 직감한다. 진실을 은폐한 화원, 성폭력 사실을 덮으려 하는 대학교, 비밀을 품은 자매의 삶. 별개의 사건들이 하나로 귀결되는 순간 규민은 경악하고 만다. 과연 변사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작가는 이 소설에서 세상에 완전한 악도 완전한 선도 없으며, 단지 각자 처한 상황에 의해 악인이 되기도 하고 선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악인에게도 일말의 여지를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여지를 소설 속 인물들에게 부여했다고 한다.(326쪽)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의 치열한 욕망이다. 각자 직면한 불합리한 운명과 폭력에 순응하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가열찬 분투기를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작가의 말' 일부를 소개한다. "지금도 음지에서 오기현과 김예나, 혹은 신명호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폭력에 시달리며 숨죽이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용기가 되길 바란다. 세상과 사회가,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차츰 당신들 편에 서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다."(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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