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엔딩 노트
[영화 이야기] 엔딩 노트
  • 김동남 기자
  • 승인 2021.05.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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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아버지의 임종과정을 다큐멘타리로 제작한 영화
손녀들과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나다 도모야키
손녀들과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나다 도모야키

이 영화의 구성은 독특하다. 스토리의 전개로 보면 마지막에 와야 할 장례식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장례식의 주인공이 딸의 목소리를 빌려 하객들에게 전하는 나레이션은 영화를 보는 사람을 적잖이 당황하게 한다. 이미 죽은 사람이 산 자들에게 전하는 인사말이라니...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와중에 절 위해 오늘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스나다 도모야키 향년 69세입니다. 이렇게 궂은 날씨에 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비록 먼저 다른 곳으로 가지만 사는 내내 아름다운 동행이었습니다.’

(장례식날 궂은 날씨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생전에 날씨를 감안해서 여러 개의 영상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스나다 도모야키는 정기 건강검진에서 수술도 불가한 암 선고를 받고 나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한다. 40여 년 이상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아 온 스나다 도모야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그는 은퇴 후의 인생을 계획하려다 졸지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인다.

암 선고를 받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엔딩 노트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아직 94세의 어머니도 살아 있고 그가 죽은 후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노트에 담담히 앞으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적어나간다.

결과적으로 그 노트는 자신의 죽음을 맞아들일 준비단계가 된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막내딸이 임종까지의 전 과정을 다큐멘타리로 제작한 것이 바로 영화 ‘엔딩 노트’이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쪽보다는 잘 죽는 쪽으로 삶의 방향키를 돌린 주인공이 엔딩 노트에 적은 10가지 리스트이다.

 

1.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한번 믿어보기

2.손녀들 머슴 노릇 실컷 해 주기

3.한번도 찍어 주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하기

4.꼼꼼하게 장례식 초청자 명단 작성하기

5.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과 여행 떠나기

6.빈틈이 없는지 장례식장 사전 답사하기

7.손녀들과 한번 더 힘껏 놀기

8.나를 닮아 꼼꼼한 아들에게 인수인계

9.이왕 믿은 신에게 세례받기

10.쑥스럽지만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그의 리스트를 보면 긍정적이고 솔직하며 심지어 유모어까지 겸비한 삶에 대한 그의 자세가 느껴진다. 한 인간이 죽어가는 과정을 사실 그대로 찍은 기록영화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이 카메라를 들고 죽는 순간까지 촬영할 수 있는지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이웃, 내 자신의 이야기처럼 감정이입이 되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나도 이 주인공처럼 죽음을 준비하고 싶다는...

엔딩 노트가 채워질수록 가족들과의 추억은 쌓여 가지만 이별의 시간도 점점 다가온다. 병의 진행으로 주인공의 모습이 변해가는 것도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관객들에게 조차 안타까움과 충격을 동시에 안긴다.

이제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을 간병하던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하자

남편의 두 손을 잡은 아내는 ‘당신이 '이렇게 좋은 사람인 줄 너무 늦게 알았어. 더 많이 사랑했어야 했는데 미안해...살면서 당신이 많은 걸 이끌어 줘서 정말 고맙고 미안해’ 하며 아내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는 떠났다. 슬픔은 최소화하고 가슴뛰는 시간, 행복했던 시간들로만 기억할 수 있도록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할아버지로서 그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한 스나다 도모야키.

망자가 된 후에도 그는 유머러스한 감각을 잊지않았다.

‘이제 슬슬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군요. 세일즈맨은 물러나는 시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럼 여기부터는 가족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제 행세를 하면서 주절주절 떠들어 대던 딸이 죽은 저에게 이렇게 묻는군요.

‘그래서, 지금 어디 계세요? ’ 하지만 그건 좀...가르쳐 줄 수가 없네요.‘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그저 건강할 때 많이 사랑하고 많이 함께 하라는 메시지를 전해 준 영화 엔딩 노트, 지금 내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와 죽음 또한 삶의 일부임을 깨닫게 한 엔딩 노트는 오래 오래 여운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