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묻힌 이방인] ① 수성못 축조자 ‘미즈사키 린타로’
[대구에 묻힌 이방인] ① 수성못 축조자 ‘미즈사키 린타로’
  • 이배현 기자
  • 승인 2021.05.20 17: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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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개척농민 자격으로 일본에서 건너와 대구에 정착
1927년 조선인 4명과 함께 수립조합 결성, 수성못 축조
1939년 사망, 유언에 따라 수성못 맞은편 야산에 안장
호수공원으로 거듭난 수성못 전경. 이배현 기자
                          호수공원으로 거듭난 수성못 전경. 이배현 기자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구절이다. 그의 시심에 영감을 준 ‘빼앗긴 들’은 대구 수성구 수성들(옛 경북 달성군 수성면)이라고 한다. 이 빼앗긴 들에 물을 대던 저수지가 수성못이다.

대구의 명물 수성못. 옛 대구 시민들에겐 유원지와 뱃놀이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지금은 역사와 문화가 생동하는 대구의 대표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주말이면 하루 2~3만명의 나들이객이 북적대고 평일에도 레포츠와 문화행사를 즐기는 시민들로 활기가 넘친다.

수성구청에서는 수성못 북동쪽에 상화동산을 만들고 수성못길에 시문학 거리를 조성하였다. 상화동산과 시문학 거리는 이상화의 시 세계를 기리고 수성못 둘레길을 찾는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수성못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호수공원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일제에 항거한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수성못 맞은편 야트막한 산 입구에는 대구사람들이 잘 모르는 장소가 숨어 있다. 수염이 덥수룩했던 한 일본인의 묘다. 수성못을 굽어볼 수 있는 언덕배기 야산에 자리 잡고 있다. 묘의 주인공은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 바로 수성못을 축조한 인물이다.

수성못이 내려다보이는 법이산 입구 미즈사키 린타료 묘지. 이배현 기자
           수성못이 내려다보이는 법이산 입구 미즈사키 린타료 묘지. 이배현 기자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수성못을 사이에 두고 상화동산과 미즈사키 린타로의 묘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미즈사키 린타로는 일본 기후현 출신으로 1915년 개척농민 자격으로 대구로 건너왔다. 그는 대구 수성들에서 미즈사키농원이라는 대규모 화훼농장을 운영하고 만주까지 꽃을 수출하는 등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당시 수성들엔 관개시설이 없어 농사에 애로가 많았다고 한다. 미즈사키 린타로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서는 저수지 축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진희규 등 조선인 4명과 함께 수리조합을 만들어 수성못 축조에 나섰다. 자신의 사재(私財)와 총독부의 지원금으로 고생 끝에 착공 10년만인 1927년 현대적 시설을 갖춘 수성못을 완공했다.

척박한 수성들에 현대식 관개시설을 완공하여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한 그는 1939년 세상을 떠났다. 미즈사키 린타로는 생전 그의 유언에 따라 수성못이 내려다보이는 현재의 장소에 안장됐다. 그의 묘는 현재 한일친선교류회가 관리하고 매년 4월 13일 기일(忌日)에 맞춰 추도식도 거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즈사키 린타로를 둘러싼 '친일 미화' 논란도 제기되어 왔다. 소작농이 대부분이었던 조선 농민을 상대로 물세 등을 받았던 일본인 지주를 추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성구의회 일부 의원들은 "조선총독부 기관지가 미즈사키를 미화해서 보도한 것을 근거로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라며 "민족 수탈의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2017년까지는 한일 양 국민은 물론, 수성구청과 일본 기후현 관계자들까지 참석하여 추도식을 거행하고 두 도시 간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수성못이 한일 양국 우호의 다리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매년 행사에 참석하던 수성구청에서는 친일논란 때문인지 2018년부터 선거법 등을 이유로 행사에 불참하고 있다.

미즈사키 린타로가 심은 왕버들 50여그루 중 두 그루가 살아 있다. 이배현 기자
      미즈사키 린타로가 심은 왕버들 50여그루 중 두 그루가 살아 있다. 이배현 기자

봄비가 내리고 난 지난 18일 수성못 둘레길, 비온 뒤의 상쾌한 날씨 속에서 너비 5~6m의 둘레길에는 많은 시민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일부 시민은 맨발로 산책로를 걸었다. 오후 햇살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둘레길을 따라 선 벚나무와 왕버들 그늘 덕분에 시원한 공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산책하는 시민 대부분은 가벼운 운동복 차림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엔 활기가 넘쳤다. 수성구에 사는 주부 이경착 씨(40)는 “고운 마사토 길이라 주로 맨발로 걷는다. 밤에 걸으면 더 시원하고 낭만적이다”고 밝게 웃으며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을 자극하는 게 온몸이 다 시원해진다. 건강을 안겨주는 복길이다”며 수성못 둘레길 예찬론을 펼쳤다.

수성못 남쪽 미즈사키 린타로 묘지 주변에는 나이든 남성 서너 분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중구 동인동에서 온 김창규 씨(63, 자영업)는 “수성못을 축조한 일본인 묘가 있다길래 오늘 처음 와 봤다”며 “수성못의 축조 동기야 어쨌든 전국 최고 수준의 호수공원이 있으니 시민들로서는 좋은 일이 아니냐”며 미즈사키 린타로를 둘러싼 '친일 미화' 논란에는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민족시인 이상화 시인의 시비와 동상이 있는 상화동산. 수성구청
           민족시인 이상화 시인의 시비와 동상이 있는 상화동산. 수성구청

묘지에서 내려와 상화동산에 와 보니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자전거 타는 학생, 포토존에서 인증샷 남기기에 여념이 없는 젊은 여성들, 시비(詩碑)를 감상하는 사람들도 눈에 뜨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옆에 상화 선생의 동상(銅像)이 자리잡고 있다. 이마에 부딪히는 햇살을 따라 선생의 시선은 수성못 건너 미즈사키 린타로의 묘지를 향하고 있었다. 시인의 얼굴은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