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사명자로 살아가기
시대에 사명자로 살아가기
  • 이한청 기자
  • 승인 2021.05.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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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삶을 사는 분들
주일 예배드리는 모습. 서울은혜교회 제공
주일 예배드리는 모습. 서울은혜교회 제공

시대에 사명자로 살아가기

험난한 시대에 양심을 지키며 받은 사명대로 살아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묵묵히 그 길을 가는 분들도 많이 있다.

옛날에 지혜로운 원님이 마을을 다스리고 있던 어느날 마을에 작은 다툼이 있어 시비를 가려달라는 송사가 있었다. 내용인즉 한사람이 구구단을 암송하는데 4X7=28이라고 하니 옆에 있던 한 사람이 4X7=27이라고 고쳐 주었다. 그러자 암송하던 사람은 여전히 28 이라하고 옆에 있던 사람은 27이라 고집한다. 서로 제 주장이 맞다고 고집하다가 주먹다짐까지 이르게 되고 결국 관에 판단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고을 원님은 형방에게 명령을 내리기를 4X8=28이라고 다툰 사람을 매우 쳐서 내 보내라고 했다. 그는 억울하게 곤장을 맞고 제가 왜 맞았는지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고을 원은 그를 불러 아직도 왜 맞았는지 정녕 모르겠느냐? 예, 모르겠습니다. 고을 원님이 정색을 하며 말을 했다. 야, 이놈아 4 X 7= 27이라고 우기는 정신 나간 놈과 다투었으니 제 정신을 가진 네놈이 더 잘못이니 네가 맞아야 한단다. 정신이 외출한 모지리하고 제 정신인 사람이 서로 다투면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이다. 다툴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어떤가?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도 않 되는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다. 상식과 도덕, 양심도 염치도 없이 몽니를 부리는 것을 보면 숨이 막힌다.

그래도 옳은 소리를 내는 교회들 향해 이 사회는 개독이니 수구 꼴통이니 막말을 서슴치 않고 무차별 공격을 한다. 물론 교회도 잘 못이 있을수 있다. 그런데 벌떼처럼 달려들어 던지는 돌을 맞을 만큼 잘못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전가하기 위래 또는 볼 것을 보지 못하고 들을 것을 듣지 못하는 자신들의 시청각과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옳고 그름도 구별 못하고 보도 듣도 못하는 귀와 세상이 온통 검게 보는 눈을 가졌으니 무엇을 보고 느끼고 판단을 하겠는가? 4x7= 27이라고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과 다를바가 없다. 그들과 변론하지 말자. 개독이라 불러도 수구 꼴통이라 부르면 어떠하랴? 당신들의 가치관 보다는 고상하다고 무시하면 좋을듯 하다. 성서에 보면 자신의 영달이 아닌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을 여기지 않는다는 사도의 고백이 있다.(행20:24) 지금도 이웃과 함께하는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사시는 분들이 있다. 교회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매일 떡을 만들어 뜻있는 성도들과 함께 주민들에게 떡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거리를 누비는 분이다. 작년 10월 중순에 강남구 역삼동에서 하남시 신장동으로 교회를 이전한 서울 은혜교회(담임 김태규목사)와 성도들 이야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제약이 많아 활발하게 움직일 수는 없지만 하남을 사랑하고 섬기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움직인다. 하남주민을 향한 진심이 통했는지 매주일 예배때 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찾아온다. 그들의 모습에는 개독이라고 하던지 수구꼴통이라 하든지 개의치 않고 오늘도 받은 사명대로 이웃을 향해 육신의 떡과 영혼의 생명의 떡을 전한다.

우리가 살아기는 세상에서 귀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보통은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고상하고 귀하다고 생각할수 있다. 그렇지만 그 평가는 먼 훗날에 역사가 평가하게 마련이다. 각자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기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 우리는 역사에서 성자리고 불리는 분들을 많이 보아 알고 있다. 그 분들의 삶은 자신을 위하 삶이 아닌 온전히 이타적 삶을 사셨던 것을 본다. 자신의 몸이나 가족을 돎봄 대신 철저한 이웃을 향한 섬김의 삶을 사셨음을 본다. 우리도 할수 있는 만큼 이웃을 향한 섬김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보자. 이웃을 물어뜯기 위해 험한 말을 하는 대신 자신의 눈을 똑바로 떠서 사물을 제대로 분별하고 세밀한 세간의 소리도 듣기 위해 귀를 세워보자. 남의 눈에 티를 지적하기 전에 내 눈에 들보를 먼저 뺀다음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그들은 중단없이 거리로 향한다.

서울은혜교회(www.seoulgrac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