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장서운동 100주년! 독립운동사적지 탐방으로 새로움을 배우자
파리장서운동 100주년! 독립운동사적지 탐방으로 새로움을 배우자
  • 백남명 기자
  • 승인 2019.03.18 17: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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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지역 3.1운동과 파리장서 유공자 64명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다. 또한 3.1운동 파리장서운동 100주년이기도 하다. 독립정신을 기리고 선현들의 얼을 되살리기 위한 행동과 정신이 필요하다. 이에 발맞춰 전국적으로 다양한 학술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성주군에서도  15일 '전 세계에 대한의 독립을 부르짖은 성주군민! 독립을 고한 성주유림!' 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학술대회는 성주 독립운동사 총론을 시작으로 3.1운동과 참여자 연구, 파리장서운동과 참여자 연구 순으로 진행되었다.  

성주에서는 유림이 중심이 되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 서명과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성주에는 파리장서운동의 중심 인물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다. 파리장서운동을 기획하고 시종일관 주도한 김창숙,  곽종석의 의뢰를 받아 초안을 집필한 장석영, 야성 송씨 충숙공파 문중의 집단적 참여를 지도한 송준필이 모두 성주 출신이며 유림이다. 4월 2일  성주 읍내 시장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송우선, 송회근, 김희규, 이봉희 등도 유림이다. 따라서 학술대회에는 문중 종손 유림단체가  함께하였다.

먼저 성주지역 3.1운동을 살펴보면, 23일 가천면 창천동에서 첫 시도가 있었다. 27일부터 4월 6일까지 11일 동안 10차례가 있었다. 4월 2일 성주면내 시장 독립만세운동은 최대였다. 2일은 성주장날이라 참여자가 많았다. 경찰 기록에 의하면 시장에서 50~ 60여 명, 시장 등 일대에서 2천명~ 3천 여명, 오후 10시 10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날 독립만세를 오후 1시부터 11시까지 10시간 동안 외쳤다. 

파리장서운동(독립청원운동)은 유림의 독립운동이다. 유림들은 33인의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시기에 전국적인 파리장서운동을 추진하였다. 파리장서운동은 3.1운동의 거대한 흐름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족적 독립운동이었음을 보여준다.

성주는 파리장서운동의 중심지이다. 추진세력 2명  서명자 15명 협력자 16명 등이다. 초전면에 있는 백세각에서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의 서명을 논의하였다 .백세각은 국가보훈처의 현충시설이며 경북유형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세각 항일의적비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성주의 독립유공자는 현재 85명이다. 그 중에서도 3.1운동과 파리장서 참여자의 포상자는 64명이다. 전체의 75%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1운동 40명, 독립청원16명, 3.1운동 및 독립청원 8명이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포상자와 함께 미 포상자에 대해서도 조명되었다. 독립운동가 열전자료에 따르면 미 포상자가 14명이다.  발표자는 미포상자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성주에는 심산기념관 백세각 월회당  이대희지사 기념비, 독립지사 백성흠공적비 등 9개의 현충시설과 사건발생지 비석 등 사적지가 성주읍을 비롯한 9개 읍면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하여 주변에 있는 현충시설 사적지 탐방등을  권한다. 역사탐방이 새로움을 안겨주리라 믿는다.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관장 김희곤 특별강연 모습
김희곤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장이 학술대회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