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영화 '더 파더(The Father)'를 보고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영화 '더 파더(The Father)'를 보고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1.05.04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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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이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영화

영화 감상 뒤에는 그 잔영으로 흐뭇하거나 즐거움에 콧노래 흥얼거릴 때가 있다. 불의에 맞서 싸운 내용에 대리만족으로 박수를 치거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막을 내릴 때는 감동의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지기도 한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영화, ‘더 파더(The Father)’를 감상했다. 시놉시스(synopsis)를 읽고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있었지만 개성파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것이 마치 현실인 듯 영화가 끝나고도 선뜻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80대 노인 안소니(안소니 홉킨스 분)가 혼자 사는 영국 런던의 한 저택. 딸 앤(올리비아 콜맨 분)이 아버지를 만나러 오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앤은 단순히 아버지를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벌써 세 번째, 아버지가 간병인을 의심하고 다툼으로써 간병인을 다시 구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안소니는 ‘간병인은 필요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나 앤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안소니는 아끼는 손목시계를 으쓱한 곳에 감추고, 시계가 보이지 않으면 누군가 그것을 훔쳐갔다고 의심한다. 앤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둘째 딸을 사고로 잃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등 날로 증상이 심해진다. 앤의 집을 자신의 집으로 착각하는가 하면, 예기치 않게 화를 내기도 한다. 앤과의 이혼으로 남이 된 사위로부터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이냐"는 상상 속의 비난에 두려움을 느끼며, 앤 부부가 아버지 문제로 다투거나 의견이 대립되는 환시와 환청을 거듭 경험한다.

고민을 거듭하던 앤은 새로 만난 남자를 찾아 파리로 떠날 것을 결심하지만, 안소니는 "나는 어쩌라고", "파리 사람들은 영어를 못해"라며 만류한다. 결국 요양시설에 들어가게 된 안소니는, 앤이 보낸 엽서를 간호사가 대신 읽어주면서 비로소 혼자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간호사의 어깨에 기대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하며 친정 부모님께로 달려갔다. 나에게도 자식들과 떨어져 지내는 아흔 중반의 부모님이 계신다. 역시 아버지는 당신이 찾는 물건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엄마에게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전해 듣고 있다. 대부분의 치매는 그런 의심으로부터 시작이 된다는데.

신문을 읽고, 규칙적인 걷기운동을 하시는 아버지는 청각장애로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다른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다만 꿈속에서 손길 발길질을 하면서 누군가와 다투거나 욕설을 하는 동작이 현실로 이어져, 침대에서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니 더욱 걱정이 클 수밖에.

몇 년 전부터는 부모님께서 연락이 오면 반가움보다 걱정스런 마음에 가슴이 뛰는 것이 사실이다. 연락을 드리기도 어렵다. 바로 옆에서 전화벨이 울려도 듣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며, 식사를 하거나 낮잠을 즐기다가 또는 무심히 TV를 보다가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에 놀라지는 않으실지. 연로하신 부모님을 옆에서 돌봐줄 자식이 있으면 좋으련만, 저마다 사정이 있으니 어쩔 것인가. 그나마 장기요양보험 혜택으로 요양보호사가 몇 시간씩 방문을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영화는,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이 사회에 큰 화두를 던져준 것 같다.

의술의 발달로 노인들이 신체적으로 건강하나, 정신적 건강까지 보장받을 수는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늙고 병들거나 정신이 흐려지면 결국 이들을 전문적으로 보살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 정해진 순서일까. 하지만 많은 요양시설이 기대만큼 이상적이지 못하다는데 갈등과 불안이 쌓이는 것이다. 더불어 누구라도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 정신은 더욱 빠른 속도로 피폐해진다는 사실이 우리를 우울하고 슬프게 한다.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이냐"는 비난에 고개 숙이는 아버지. "나는 어쩌라고", "파리 사람들은 영어를 못해"라며 딸이 떠나는 것을 만류하던 아버지의 말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대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제발, 함께 있어 달라고….

※ 주인공 안소니 역을 열연한 배우 ‘안소니 홉킨스’가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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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환 2021-05-06 17:46:58
좋은글 잘 읽았습니다. 지금 노년세대는 대부분 경로당에서 요양원을거요양벙원에서생을 마치게되지만 저가몇년전 2주간의 오양원 실습읉통해 몸소 보고 느낀점으로 제도적 보완등많은시사점이 부장님의 글을통해 새롭게느껴지네요 -

임경희 2021-05-05 05:48:18
누구나 거쳐가야 할 인생 후반을 영화를 통해 경험하셨군요. 어느 가정이나 같은 고충이 있기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