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꽃피다
오동나무 꽃피다
  • 김황태 기자
  • 승인 2021.04.30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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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오동나무꽃이 윤모촌의 수필 '오음실 주인'을 생각하게 한다
동네 주택 마당에 핀 오동나무꽃이 만개하였다. 김황태기자
동네 주택 마당에 오동나무꽃이 만개했다. 김황태기자

동네(대구 수성구 시지동)를 산책하다가 주택 안에 오동나무꽃이 만개한 것을 본다. 얼마나 번성했는지 좁은 마당을 꽉 채우고도 담장 밖까지 나무들이 무성하다.

오동나무꽃을 보노라니, 수필가 윤모촌의 '오음실 주인(梧陰室 主人)'이라는 제목의 글을 생각하게 된다.

내 집 마당 가에 수도전이 있다. 마당이라야 손바닥만 해서 현관에서 옆집 담까지의 거리가 3m 밖에 안된다. 그담 밑에 수도전(水道栓)이 있고, 시골 우물가의 정자나무처럼 오동나무 한그루가 그 옆에 서 있다.

 (중략)

바람을 타고 가던 씨가 좋은 집 뜰을 다 제쳐놓고, 하필이면 왜 내 집 좁은 뜰에 내려와 앉았단 말인가.

 (중략)

한여름 낮, 아내가 수돗가에서 일을 할 때면, 오동나무 그늘에 나앉아 넌지시 얘기를 건넨다. 빈주먹인 내게로 온 아내를 오동나무에 비유하는 것이다.

"오동나무 팔자가 당신 같소. 하필이면 왜 내 집  좁은 뜰에 와 뿌리를 내렸을까." "그러게 말이오, 오동나무도 기박한 팔자인가 보오. 허지만 오동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남을 즐겁게 해주지요. 우리는 뭐요." 

(이하 생략)

오동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내의 그늘을 의식하는 윤모촌의 담담한 글이 진솔하다. 꽃이 핀 오동나무를 주인이 옮겨 심었는지, 윤모촌의 '오음실 주인'처럼 바람에 허공을 떠돌던 씨가 내려 앉아 이 집 마당에 뿌리를 내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파트촌 인근의 주택에 핀 오동나무 보랏빛 꽃이 참 상서롭다.

활짝 핀 보랏빛 오동나무꽃이 상서롭다. 김황태기자
활짝 핀 보랏빛 오동나무꽃이 상서롭다. 김황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