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양치기 소년, 임진왜란 그리고 북미회담
(5) 양치기 소년, 임진왜란 그리고 북미회담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03.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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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년 전에도, 70여년 전에도, 오늘날 현 시점에도, 우리의 운명을 타자(他者)들이 쥐고 있는데, 나라 안에서는 거짓말과 가짜뉴스로 싸우기만 하니 안타깝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진정한 애국자는 누구인가?

(5)양치기 소년, 임진왜란 그리고 북미회담

 

양치기 소년과 일본 규수 가라쯔(唐津)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좌상. 나무로 만든 실제 모습과 가까운 모습이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 그림(왼쪽)과 일본 큐슈 가라쓰(唐津)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좌상. 나무로실제 모습과 가깝게 만들었다.

 

서양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이야기꾼 이솝(Aesop)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 폴리스 사모스의 노예 출신이었다. 그의 ‘양치기 소년과 늑대’는 거짓말에 대한 우화이다. 그 소년은 심심해서 한 번, 두 번 거짓말로 늑대가 왔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가 저 놈 말은 믿을 수 없다고 실망하며 돌아섰다. 결국 진짜로 늑대가 왔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해 “늑대가 왔다!”라고 소리쳤으나, 아무도 나와 주지 않아서 지키던 양들을 잃고 말았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 7년 전쟁 중에도 ‘조선을 배제’한 명과 일본이 거짓말로 진행한 강화교섭이 있었다. 명·일 장수들이 양국의 조정을 속이면서 진행된 회담의 중심에 명나라의 심유경(沈惟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593년 5하순 명의 경략부에서 도요토미(豊臣秀吉)의 항복문서를 받아오도록 비공식  사절을 나고야(名護屋)로 보냈다. 고니시(小西行長)와 합의한 이 가짜를 만난 도요토미는 항복문서가 아니라, ①명 황녀의 일본 후비(後妃) 간택, ②일본과 명의 무역을 재개, ③조선 팔도 중 4도를 일본에 할양, 등 7개 조항을 제시했다. 제독 이여송은 명 조정에서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고, 심유경의 제안을 받아들여 도요토미가 ‘일본 왕 책봉’을 원한다고 신종 황제에게 보고했다. 전쟁을 서둘러 끝내고 싶었던 명·일 양국 장수들의 욕심에서 거짓말 외교가 시작되었다.

1594년 2월 상순 심유경은 고니시와 관백의 항표를 위조할 것을 합의하고 일본에서 항복문서가 올 것이라 허위 보고했다. 그리고 고니시 심복 죠안(小西如安)을 일본 납관사로(納款使) 삼아 위조된 항표를 가지고 명에 갔다. 그러나 일왕 책봉 문제는 조선의 반대로 난관에 처하게 되었다.

약 1년이 지난 1594년 9월에 명 조정이 일왕 책봉을 결정했으나 진행 과정은 순탄하지 못 했다. 1595년 11월 하순 부산 왜영으로 가서 머물던 명의 책봉 사절 정사 이종성이 거짓말 외교가 탄로날 것을 두려워하여 탈주해 버렸다. 계속되는 도요토미의 독촉에 못 이겨서, 1596년 6월 16일 명의 재편성된 책봉 사절 정사 양방형과 부사 심유경이 본국의 지시를 어기고 서둘러 일본으로 가서 뒤에 따라오는 봉왜고명(封倭誥命)과 칙서가 도착하도록 거의 3개월을 기다렸다.

1596년 9월 초 도요토미의 일왕 책봉은 마쳤으나, 그 다음 날 요구 조건이 모두 무시된 것을 알고 4년간 끌어오던 회담이 결렬되었다. 그 결과는 조선 재침, 정유재란이었다. 심유경은 일본으로 도망가던 중 경남 의령 부근에서 체포되어 '나라와 황제를 기만한 죄'로 하옥, 처형되었다. 1597년 1월에 조선 조정은 요시라의 교묘한 거짓말, 반간계에 속아서 2월26일 한산도에서 통제사 이순신을 체포하여 가두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거짓말과 가짜뉴스가 성행하고 있다. 가짜뉴스는 “언론 보도의 형식을 띠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포되는 거짓 뉴스.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특정 세력이 정치·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의도로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언론 매체를 위장하여 사실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교묘한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다시 다른 거짓말로 계속되기 마련이다. 양치기 소년이 그러했고, 명·일 강화 협상도 그러했다. 가짜뉴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시대의 가짜뉴스는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 세계로 확산된다. 가짜뉴스 생산자는 단시간에 대량의 댓글을 만들어 강화하는 고성능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거짓말, 가짜뉴스는 실시간 확대 재생산되는 위력으로 군중을 광장으로 동원하고 국민정서를 와해시킨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그러했고, 현재 진행 중인 수자원 관리와 미세먼지 문제에도 같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거짓말은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한국을 제외시킨’ 북미간의 핵 협상도 양치기 소년의 우화와 비슷한 점이 있다. 1차 싱가포르 회담이 늑대 출현의 가능성 탐지, 즉 핵 포기가 진실인가에 대한 탐색 만남이었다면, 2차 하노이 회담은 늑대의 출현의 현실성 확인, 즉 실제로 포기 절차를 이행하는지 그 여부를 확인하려는 만남이었다. 거짓말을 확인한 트럼프가 돌아서며 회담은 결렬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오리무중에 있다.

400여년 전에도, 70여년 전에도, 오늘날 현 시점에도, 우리의 운명을 타자(他者)들이 밀고 당기고 있는데, 나라 안에서는 거짓말과 가짜뉴스로 싸우기만 하니 안타깝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진정한 애국자는 누구인가?

거짓말과 가짜뉴스를 줄이는 방법은 마음공부에 달려있다. 맹자는 “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지만,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구방심(求放心) 뿐이다.”라고 호소했다. 세상사람 모두가 마음공부에 힘쓴다면, 거짓말은 줄어들고 배려와 상생의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