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송정동 '석조여래입상'을 찾아서
대구 송정동 '석조여래입상'을 찾아서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4.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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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우연처럼 만난 할머니로부터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2호(대구 송정동 석조여래입상). 이원선 기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2호(대구 송정동 석조여래입상). 이원선 기자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란 말이 있다. 극히 찾기 어려울 때 흔히 쓰는 말이다. 팔공산 송정동 363번지 소재, 대구 송정동 석조여래입상(大邱 松亭洞 石造如來立像: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2호로 지정)을 찾아가는 길이 이와 같았다.

첫걸음을 잘못 내 딛은 탓도 있겠지만 정확한 주소를 모르는 것도 한 몫 거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마을 주민을 붙잡고 길을 물어보았지만 엉뚱한 곳을 안내하는가 하면 아예 모른다고 했다. ‘송정동 363번지’만 알았어도 웬만한 길이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2호’로 네비게이션에 물어보지만 먹통이다. 옛 기억이 도움이 될 때가 있지만 오히려 방해를 하려 들 때도 있다. 불상을 찾는 그날은 옛 기억마저 온전하지 못하다 보니 사사건건 방해만 하려 들었다. 오히려 더 헷갈렸던 같다. 어지간히 헤매다가 포기하려는 찰라 길에서 우연처럼 만난 할머니로부터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차로 산길을 올라 입구에 주차 후 약 10여 분간 걷는다. 그 걸음의 끝나는 지점의 한적한 곳에 검은 휘장을 둘러친 허름한 절간 뒤편으로 비탈진 밭둑에 우뚝 서있다. 입상의 첫 인상이 오랜 세월을 오롯이 담아서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땅을 이불 삼고, 하늘을 지붕 삼아 우뚝한 불상은 풍찬노숙의 세상살이에 본연의 형태를 흐릿하게 지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불상 앞으로는 ‘비로자나불’을 알리는 표지판이 양쪽 옆으로 서있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2호(대구 송정동 석조여래입상). 이원선 기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2호(대구 송정동 석조여래입상). 이원선 기자

흐릿하지만 팔과 손의 형태로 보아 비로자나불의 상징인 지권인{智拳印:불교 금강계(金剛界)대일여래(大日如來)가 만드는 인상(印相)으로 두 손의 엄지손가락을 손바닥에 넣고 다른 네 손가락으로 감싼 뒤,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펴서 오른손의 주먹 속에 넣고 오른손의 엄지손가락과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마주 댄다. 오른손은 불계(佛界)를, 왼손은 중생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을 나타낸다}으로 보이지만 확실하지가 않다.

넓은 판석 모양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돋을새김한 불상으로서, 훼손과 풍화가 심하기는 하지만 단아하고 엄숙하며 원만한 조각미를 지니고 있다. 큼지막한 상투 모양의 육계(肉髻:부처님의 정수리에 있는 상투모양으로 두드러진 혹 같은 모습)와 깎은 머리를 했으며 커다란 귀는 긴 편이다. 얼굴 부위는 마멸이 심해 형태를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었으나 윤곽은 대체로 부드러워 온화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다. 두 눈썹 사이에는 백호가 박혔던 흔적이 있으나 현재는 최근에 박은 것으로 보이는 구슬이 박혀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몸매를 더욱 풍만하게 표현하고 있다. 양 손은 가슴 앞에 모으고 있는 모습이나 훼손이 심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입상은 전체적으로 보아 여래상으로 추정된다.

사실적이고 균형 잡힌 조각기법으로 보아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불상을 관리하려고 인근 사찰에서 구조물을 설치했으나 무허가로 고발되어 철거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덧붙여 국보나 보물이라면 저렇게 방치 했겠느냐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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