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보면 좋을 영화 '5일의 마중'
함께 보면 좋을 영화 '5일의 마중'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1.04.26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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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함께 돌아오지 않는 그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이제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남편이 치는 피아노 소리, 남편의 편지, 젊은날의 사진을 보면서도
아내의 기억은 온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잠깐 들어왔다 꺼지는 전깃불처럼 기억의 퍼즐 한 조각일뿐.
남편은 아내의 기억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아내는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만이 이들의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크나 큰 고통 앞에서  기억이 끊겨버린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크나큰 고통 앞에서 기억을 잃어 버리게 되는 아내. 남편이 끌려가는 모습을 본다. 영화 캡쳐 

영화 ‘5일의 마중’은 중국의 영화감독 장예모의 작품으로 2014년 귀래(歸來, Coming Home)라는 제목으로 발표 되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세계적 배우 ‘공리’와 ‘진도명’이 주연으로,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이 배경이다. 그 엄혹한 시기를 통과하는 동안, 개인의 삶과 가정에 몰아친 비극을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첫 장면은 총을 들고 집체훈련처럼 발레연습을 하는 연습장이다, 다음 공연의 주인공 캐스팅이 곧 있을 예정이다. ‘단단’은 누가 봐도 빼어난 발레리나다. 그런 ‘단단’에게 탈주범에게서 연락이 오면 신고하고 행방을 알고도 은닉하면 처벌 받을줄 알라는 경고가 내린다. 탈주범이란 아주 어릴 때 어딘가로 잡혀간 아버지 ‘루옌스’. 단단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연습이다. 주연을 꿈꾼다. 엄마에게도 단단히 이른다. “엄마 절대 그 사람 만나면 안돼. 반동분자야.”

남편의 탈주로 고통의 파도가 덮쳐온다. 영화캡쳐
남편의 탈주로 고통의 파도가 덮쳐온다. 영화 캡쳐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몰래 찾아온 ‘루옌스’. 남편임을 직감한 ‘펑안위’는 창밖을 내다본다. 딸이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음을 알아챈다. 문밖의 남편은 손잡이를 돌려 보는데 그녀는 입을 틀어 막은채 눈물만 흘린다. 편지만 몰래 문 아래로 밀어넣고 ‘루옌스’는 돌아선다. 등 뒤에서 딸은 아빠임을 알아챈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네 아빠다.” “우린 보고 싶지 않아요.” “내일 8시 기차역 육교로 오라고 엄마한테 말해...” 그는 빗속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밤새 먹을걸 만들어 기차역으로 달려가는 아내. 빗속에 아내를 기다리는 ‘루옌스’. 역에 도착한 펑은 약속 장소를 기웃거리고, 그녀는 남편을 보고 도망치라고 외친다. 그녀 눈 앞에서 남편은 끌려간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은 아내의 기억이 돌아 오기를 기다린다. 영화 캡쳐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은 아내의 기억이 돌아 오기를 기다린다. 영화 캡쳐

 

3년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옌스는 돌아온다. 역에서 부녀는 서먹하게 재회한다. 엄마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하며 딸은 공장 기숙사로 아빠를 데려간다. 발레리나 대신 노동자가 되어있다. 그토록 그리던 집에는 뽀얗게 먼지 덮인 낡은 피아노가 덩그마니 눈에 든다. 언젠가 남편이 써준 약속장소와 시간이 적힌 종잇장과 ‘문 잠그지 말 것’ ‘전등끄기’ 등의 쪽지가 붙어있다. 장을 봐오던 아내는 남편을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뜨거운 차를 내려다 말고 다음에 뭘 해야할지 망설이는 눈치다. 쉴 자리를 고르는 남편을 향해 아내는 “창아저씨 당장 나가세요. 나가, 얼른 나가라구.” 노기에 차서 부르짖는다.

남편은 집이 올려다 보이는 허름한 방 한 칸을 얻어 기거한다. 시대가 바뀌어 무죄 증명서가 나왔다.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 흘리는 그녀. 그러나 펑은 눈앞의 남편을 몰라보고 내일은 남편을 마중하러 가겠다고 말한다. 그녀의 병명은 심인성 기억장애다. 다음날 총총히 외출하는 그녀의 뒤를 남편이 밟는다. 기차역에는 도착하는 인파가 넘쳐나는데, 아내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내려올때까지 목을 빼고 까치발을 하지만 아무도 더는 없다. 남편은 이번달 5일에 도착할 거라고 쓴 편지를 딸을 통해 전한다. 편지를 전하자 눈물을 글썽이던 그녀는 5일이 되자, 붓으로 큼지막하게 ‘루옌스’라고 쓴 팻말을 들고 역으로 나간다. 남편이 계단을 마지막으로 내려오는데도 그녀는 그를 몰라본다. 그를 지나 먼 허공만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기억속의 남편만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다.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편지 읽어주는 사람이 된다. 영화 캡쳐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편지 읽어주는 사람이 된다. 영화 캡쳐

의사가 말한다. 인간의 대뇌 속에는 함께했던 장소, 음악, 편지, 사진 등의 기억이 남아있다가 때로는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루옌스는 딸이 가져온 앨범 속 어디에도 자신의 모습을 찾을수 없다. 반동분자 아버지로 인해 발레의 주역에서 밀려난 딸이 아버지 모습을 다 잘라낸 것이다. 남편은 그들의 옛친구를 찾아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는지 묻는다. 딸은 그 사진을 얻어 엄마에게 보여준다. “네 아빠 사진이라고?” 그녀는 사진속 남편 루옌스를 알아본다. “돌아올거야. 5일에 온다고 했어.” 또다시 남편이 그녀 앞에 서지만 그녀는 남편이 낯설다. 그녀 기억속의 남편이 아닌 것이다. 그녀는 5일이면 여전히 팻말을 들고 역으로 나간다. 어느날은 남편이 치던 피아노를 닦고 조율사를 부른다. 전화를 엿들은 남편은 이번엔 조율사가 되어 그녀의 집을 찾는다. 아주 오래된 피아노 앞에서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눈다. “남편한테 편지가 왔는데 5일에 온다고 하는군요...”

그녀는 거울 앞에서 겉옷을 입고 상기된 미소를 짓는다. 아내는 오늘도 마중을 나간다. 빈 집의 낡은 피아노 앞에 앉은 남편은 옛날의 그 곡조를 쳐본다. 귀에 익은 멜로디를 들으며 계단을 올라오는 그녀. 설레임에 점점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녀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리며 점점 커진다. 그의 등뒤에 선 그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눈물이 방울져 흐르는 고요한 그녀.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을 참는 남편. 부부는 비로소 따뜻이 포옹한다. 모진 세상을 건너 오느라 막혔던 아내의 눈물이 어깨를 적신다. 그러나 다시 의식이 여기로 돌아온 아내는 그의 뺨을 때린다. 그 옛날 기억 속의 그가 아닌 것이다. 이제 남편은 다만 아내를 혼자 두는 것만이 걱정이다. 딸은 엄마 아빠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한다. 그때 아빠를 잡혀가게 이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아내에게 나무 궤짝 하나가 도착한다. 두 사람은 무거운 궤짝을 함께 들고 올라간다. 그 속에는 남편이 써 뒀으나 부치지 못했던 수 년간의 편지 다발이 가득하다. 발신인이 루옌스인 편지. 낡고 헐어진, 닥치는대로 구해진 종이쪽에 쓴 편지. ‘한 번은 고비사막에 갔다가 모래바람을 만났어...’ ‘겨울 농한기가 다 끝나가고 물 나르는 망아지가 새끼를 낳았어...’ 아스라한 눈빛으로 듣고있는 펑안위. 비로소 그녀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떠오르고 이제 남편은 편지를 읽어주러 매일 그녀의 집으로 간다. 편지 읽어주는 사람으로. 편지 꾸러미를 읽어 가며 둘은 새로운 관계를 쌓아간다.

딸은 반동분자가 되어 나타난 아버지를 밀고한다. 영화캡쳐.
딸은 반동분자가 되어 나타난 아버지를 밀고한다. 영화 캡쳐.

“아빠 왜 요즘은 편지 안 읽어줘요?” “내가 편지 읽을 때 네 엄만 내 얼굴만 쳐다봐. 이젠 네 엄마가 날 편지 읽어주는 사람으로 기억할거야.” 다시 찾아간 날 그녀가 그를 반갑게 맞는다. “지금 편지 읽을까요?”그가 읽기 시작한다. ‘나도 늙었는지 깜빡깜빡해요. 당신도 주소 적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단단과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어요. 실수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당신이라도 좋은 엄마가 되어 주시오’ “옌스가 그랬어요?” 아내가 되묻는다. 딸과 함께 집으로 간 부녀.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딸을 맞는다. 편지 묶음을 자랑스레 보여준다 “이게 다 네 아빠 편지야. 아빠가 편지에 하는 말이 너를 들어와서 살게하래. 아빠가 그렇게 말했어.” 딸은 눈물을 쏟고 두 모녀는 비로소 환히 웃는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 남편은 백발의 아내 펑을 인력거에 싣고 기차역에서 ‘루옌스’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함께 돌아오지 않는 그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이제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남편이 치는 피아노 소리, 남편의 편지, 젊은날의 사진을 보면서도 아내의 기억은 온전히 돌아 오지 않는다. 잠깐 들어왔다 꺼지는 전깃불처럼 기억의 퍼즐 한조각일 뿐. 남편은 아내의 기억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아내는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만이 이들의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장예모 감독의 뮤즈였던 공리가 오랜만에 돌아와 연기한 ‘펑안위’의 무심한 듯 서늘한 연기와 탄탄한 줄거리가 기둥이 되어 무겁지 않은 한 편의 수채화 같은 영화가 되었다.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고 가슴먹먹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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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데레사 2021-05-06 15:58:02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