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살에도 정정한 김기식 할머니, 손주 합치면 50여 명
101살에도 정정한 김기식 할머니, 손주 합치면 50여 명
  • 성정분 기자
  • 승인 2021.04.22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6세 때 가족회의 소집 "죽을 때 까지 우리 내외와 같이 살 사람 손들어라"했는데 뜻밖에도 막내사위가 손을 번쩍 들었다.
김기식 할머니
막내 사위가 김기식 할머니 머리 손질을 해주고 있다. 김기식 할머니 제공

 

40년 전 만해도 가끔 회갑잔치를 보곤 했다. 그땐 칠순이면 꼭 축하잔치를 했다. 그런데 40년이 흐른 지금은 100세 노인이 대구시 중구에만도 104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중 남산동에 살고 있는 김기식 할머니는 영천시 자양면에서 태어났다.

나이 20살에 청송으로 시집을 갔다. 한창 어렵던 시절이라 남편은 나무 많은 봉화에서 산판일을 했다. 남편 따라 봉화에서 사는 동안 틈틈이 삸바느질을 하면서 6남 2녀를 길렀다. 그땐 아들 많다고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막내딸 이갑연(58)씨는 그때부터 어머니의 바느질을 조금씩 도우면서 배웠다고 한다. 그때 배운 바느질이 이갑연씨에게는 평생 직업이 되었다.

8남매를 모두 결혼시킨 뒤에는 봉화에서 칠곡군 지천면으로 이사해 터잡고 살았다. 할머니 나이 86세 때에 모든 자녀들을 모아놓고 집안회의를 열었다. 회의 중에 할머니는 “우리 내외와 같이 살 사람 있으면 손들어라”했다. 아무도 선뜻 손을 들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한참 후에 한사람이 번쩍 손을 들었다. 8남매중 제일 막내딸과 결혼한 막내사위였다. 할머니 내외분은 고맙게 승낙했다. 그 자리에서 여섯 아들과 큰딸에게 말했다.

“내가 살던 집과 밭은 막내딸 내외에게 준다. 의의 있는 사람 없나”했다. 다들 고맙게 승복했다. 바로 다음날 법무사에 가서 위임장을 받고 이전절차를 밟았다. 이전이 끝나자 할머니 내외분은 대구 사는 막내딸과 합가를 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같이 산지 3년 후에 영감님이 먼저 떠나고 또 5년 뒤에는 큰딸도 사망했다. 큰딸 죽은 후 2년간은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김기식 할머니 생신날 모인 가족들. 김기식 할머니 제공

 

막내딸은 서문시장에서 사임당혼수(한복집)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집은 장사가 힘들어도 직접 바느질하는 막내딸의 가게는 꾸준히 되었다. 어려운 코로나시대인 작년에는 시장 옆에 작은 땅에 건물을 신축하여 입주를 했다. 그간 할머니는 건강하여 집에서 손주들을 돌봐줘서 막내딸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장사에 바쁜 딸 대신에 사위와 단짝이 되어서 산책도, 머리염색도 같이한다. 15년 전에 이전 할 때는 헐값이었던 칠곡 지천 땅도 지금은 값이 많이 올라 재산가치가 상당하다. 막내사위는 인품이 부드러워서 장모와 의논이 잘 맞다. 15년간 열심히 살림을 살아준 것이 막내딸이 살림을 일으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슬하에 자녀, 며느리, 손주들 합하면 50여 명이 되는 다복한 어른이다. 며칠 전 4월 11일은 생신날이었다. 평소에 모시지 못하는 죄송함에 이날은 모두 모여 큰 잔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