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근대골목] 달성공원엔 서침나무란 회화나무가 있다
[대구근대골목] 달성공원엔 서침나무란 회화나무가 있다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1.04.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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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 입구에서 본 잔디광장, 안영선 기자

 

대구달성은 사적 제62호로 달성공원이라고도 하는데, 신라 때 달구화현이라 불렀으며, 통일신라 경덕왕(742-765) 때에 대구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달성의 이름은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불성(達弗城)에서 유래 되었으며, 달성은 평지에 있는 구릉을 이용하여 성을 쌓은 것이 특징인데, 달성은 청동기시대 이래로 이 지방의 중심 세력 집단의 생활 근거지에 쌓은 성이다.

성벽의 아래층에서는 조개무지 유적이 있고 목책(木柵)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달성이 신라에 합병 된 뒤에는 군사 요충지로 중시 되었으며 고려 공민왕 2년(1930) 토성에 석축을 보수하였으며, 조선 선조 29년(1596)에 석축을 증축해 경상감영을 달성에 두기도 했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축조 되었고 성의 길이는 천300여 미터이며, 높이는 4미터 정도로 성벽의 상층부에는 큰 돌들이 드러나 있어 후대에 토성에 석축을 더 했음을 알 수 있다.

달성의 북쪽으로 산책로가 이어져있다. 안영선 기자

달성이 조선조 세종 때 관아의 부지로 결정되었을 때 달성서씨의 종손인 구계(龜溪) 서침(徐沈) 선생은 땅을 흔쾌히 내놓아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기려 큰 상을 내리려고 했으나, 선생은 상 대신 주민들에게 거둬들이는 환곡의 이자를 5되씩 경감해 주도록 조정에 청원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로 인해 남산의 옛 역터(옛 남산병원 일대)의 땅을 하사 받고 관료로 발탁되었다.

달성에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스스로 실천하여 백성의 존경을 받았던 구계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 회화나무를 서침나무라고 해 그의 정신을 기리고 달성을 찾는 사람들은 서침선생의 정신을 본받으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어린이 헌장비 옆에 있는 서침나무. 안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