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시니어] (99) 이게 마구 내 산인데
[원더풀 시니어] (99) 이게 마구 내 산인데
  • 김교환 기자
  • 승인 2021.04.13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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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지인을 따라 목장을 경영하고 있는 어느 어르신을 찾은 일이 있었다. 꼬불꼬불 산길로 한참을 오르니 산 능선을 따라 젖소 50마리를 키우는 축사 2동에 벽돌 양옥집 한 채가 외롭게 있다. 주위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경관이 아름답다. 아직 3월초라 방에 들어가니 냉기가 전신을 엄습해 온다. 사방 벽면은 그림과 사진 액자들로 꽉 차 있는데 역대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눈에 띈다. 한때 자치단체장에 봉사단체 등 여러 단체장을 두루 거친 화려한 경력의 어른이시지만 지금은 좁은 방 한 칸 조그만 전기방석 하나에 의지한 초라한 모습이다. 지난날 화려했던 시절의 발자취에 도취된 연설을 지루하게 듣고 나오는데 따라나오며 “이 사람들 보게! 저 멀리 보이는 소나무 숲에서부터 쭉- 돌아와서 여기까지가 내 산일세” 돌아오면서 나는 참 한심한 어르신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 후 두 달 쯤 지난 어느 날 시내 모 병원 영안실에서 나는 그 어른 영정을 쳐다보며 한 고을을 가지고 있으며 왜 그리궁색하게 살다 가셨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의 노년세대들은 어린 시절 춘궁기를 초근목피로 살아온 경험을 가진 보릿고개를 아는 마지막 세대다. 부모 유산을 물려받아서 가난을 모르고 지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이 자수성가를 한 세대로,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모울 줄만 알았던 아끼는 습관이 체질화 되어 있는 세대이다. 또한 조선시대 이후로 뿌리 깊은 유교사상의 문화에 젖어서 부모봉양에 맹목적 자식사랑이 몸에 배여 있다. 또한 재산으로서의 가치기준이 되는 것은 오직 땅이다. 그래서 지금 노년세대의 재산은 80%이상이 토지나 임야 등 부동산으로 묶여져 있고, 대체로 움켜쥐고 있다가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 간다. 물론 노후준비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어느 정도 기력이 쇠진하면 자식들에게 재산 물려주고 봉양을 받는 편안한 노후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는 너무 변해 버렸다. 우선 과거보다 잘 살게 되어 영양식과 건강관리에 의술의 발달은 수명연장으로 자식도 노인이 되어 결국 노노케어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40~50대의 가장들은 부모봉양에 자식건사까지 무거운 짐을 진 샌드위치 세대다. 그리고 손 자녀 세대는 둥지를 떠나 핵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노년세대의 홀로서기가 필연이요 운명이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노인이 가장 가난한 나라다. 점점 늘어만 가는 식비, 주거비, 의료비, 요양비 등 생활비가 기초노령연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니 어떤 형태로든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한 달에 20여만 원의 수입을 얻기 위해 매일 리어카를 끌고 폐지와 캔을 주워 모우는 할아버지, 아침부터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어르신, 종이박스에 비닐을 깔고 잠드는 노숙자들도 많다. 한 달 일하고 30만 원도 못 받는 노인일자리가 혈세낭비라는 비판도 있지만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노인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서 질적 양적 확대가 시급한 현실이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집 한 채는 가지고 있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노년세대의 보편적 생각이지만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을 받든지 작은집으로 옮겨 여생을 좀 더 안정되게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자식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냉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바로 다 함께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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