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이곳 오가향 농원에 심어져 있는 할미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소박한 모습이지만 눈이 가는 꽃이다. 봄바람이 살포시 몸을 간질이는지 얼굴이 볼그스름한 붉은색이다. 개나리, 벚꽃, 매화꽃처럼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장독대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봄이 늦게 오는 상사리에 꽃을 피워주었으니 할미꽃도 봄의 전령사임에 틀림없다. 옛날에는 양지바른 언덕이나 햇볕이 잘 드는 무덤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특별한 꽃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할미꽃을 피울 만한 자리에는 가시덤불이나 수풀이 우거지면서 자생하는 할미꽃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제는 귀한 꽃으로 대접을 받으니 세상만사가 얄궂다.
할미꽃은 노고초라고도 한다. 꽃과 줄기가 하얀 솜털로 덮여 있고 고개를 숙이고 피어 있는 모습이 할미를 닮아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는 꽃이 진 다음에 흰털로 덮인 열매의 덩어리가 하얀 머리카락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할미꽃의 꽃말은 슬픈 추억이다. 그래서인지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한 어미가 늙고 병들어 첫째 딸, 둘째 딸에게 버림을 받았다. 막내딸을 보기 위해 가다가 산 고개에서 쓰러져 죽었는데 그 할머니의 넋이 산골짜기에 핀 꽃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향기 나는 꽃을 좋아한다. 할미꽃은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도 많이 나지 않는다. 또한 키가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래도 한국적 정취가 가장 잘 풍기는 꽃이고, 다른 야생화와는 달리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없는 꽃이라서 모종을 구입하여 곳곳에 심어두었다. 처음에는 씨앗을 뿌렸는데 잘 나지 않았다. 모종을 심었더니 잘 자라 꽃을 피웠다. 그러니 더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옛날 고향 뒷동산에 많았던 꽃이라서 더욱 정감이 간다. 다른 꽃들은 하늘을 향해 피는데 할미꽃은 땅을 보고 구부정하게 피어 있으니 애절하기도 하고 인생무상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모두 꿈만 같고, 귀중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 것만 같다. 물론 그 중에는 행복한 시간도 있었다. 그래도 인생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고 남은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야겠다. 아직은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젊음이 남아 있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제 상사리에는 벚꽃, 개나리, 수선화가 꽃들의 향연을 시작했다. 그래도 고향의 추억이 있는 할미꽃도 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