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신동욱 '그래서 역사가 필요해'
[장서 산책] 신동욱 '그래서 역사가 필요해'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4.12 1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의 무기가 되는 역사 속 인물 이야기

지은이 신동욱은 서울대학교에서 국사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역사학도의 길을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취업으로 방향을 정했다. 삼성 입사 후 현재는 네이버 계열사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여전히 역사를 무척 사랑하는 직장인이다. 틈틈이 역사 공부하여 깨달음을 얻고 글로 옮기는 것을 인생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1. 역사는 참고서다

내 인생 경험이나 부모님의 경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한 경험의 기록들로 가득한 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에는 선택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참고서가 잔뜩 꽂혀 있다. 바로 역사다. 역사는 우리가 태어나기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 땅에 살아왔던 삶의 흔적 그 자체이다. 수십억, 수백억 명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생이 살면서 쌓이고 쌓인 그 흔적 중에서도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엄선하여 남겨둔 것,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에는 우리 시대를 앞서 살았던 선조들이 겪었던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나는 지금까지 반백 년도 안 되는 인생을 경험한 것뿐이지만 역사에는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하고, 때로 시행착오도 겪었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방대한 만큼 내가 살면서 겪게 되는 일과 비슷한 사례도 찾아보고 참고해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역사야말로 인생의 훌륭한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 속 위인들이 들려주는 인생담을 귀담아듣고, 거기에서도 내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만 잘 간추려 가져오면 된다. 그러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훨씬 넓어지고, 불필요한 시행착오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16~17쪽)

2. 우월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자신이 최고라는 김부식의 태도는 아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들인 김돈중은 어느 날 다른 신하들과 어울려 휴식을 취하다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갑자기 옆에 있던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불로 태운 것이다. 엘리트 문신으로서 평소 무신들을 깔보던 그가 아버지 김부식의 권세를 믿고 저지른 철없는 장난이었다.

김부식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다. 아들이 어이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마땅히 그의 잘못을 꾸짖고 사과하도록 하는 것이 상식적인 대처이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감싸는 것을 넘어 오히려 아들을 때린 정중부에게 복수하려고 했다.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며 살아온 김부식에게는 자신의 아들 또한 최고였을 것이다. 그런데 감히 무신 따위가 귀한 아들을 두들겨 팼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내가 최고이듯 내 자식도 최고라 여기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일관성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결말은 좋지 못했다. 무신의 난 때 아들은 화가 난 정중부의 손에 잡혀 죽었고, 김부식은 관에서 꺼내져 두 번 죽음을 당했다.

자녀 옆에서 항상 응원해주고 기를 살려주는 것은 부모의 마땅한 의무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것이라면, 남을 무시하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꼭 부모의 입장이 아니라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선생님과 학생, 친구 사이 등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자신에 대해 우월감을 갖는 사람은 동시에 누군가와 비교하며 자신을 열등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119~120쪽)

3.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다

작가 레슬리 가너는 자신의 책에서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고 말한다. 최고의 복수로 용서를 선택하라는 것은 무조건 잊으라는 뜻도, 죄 자체를 없는 일로 하라는 뜻도 아니다. 복수는 증오심을 키우지만 용서는 그 증오심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에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용서를 선택하는 용기를 가지라는 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뜨거운 열정과 감정으로 치열하게 살아야 할 때도 있고, 차가운 냉정과 이성으로 차분해야 할 때도 있다. 나제동맹으로 한강 유역을 회복했으나 진흥왕에게 다시 빼앗긴 성왕처럼 누군가에게 이용만 당하고 배신당했다는 기분이 들 때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이성과 냉정함이다. 앞뒤 판단하지 않고 격정적으로 대응할수록 상황이 오히려 나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왕의 뼈아픈 실수(자신의 아들이 전장에서 고생하는 것을 안쓰럽게 여겨 단 50명의 호위대만 거느리고 관산성으로 향하다 신라군에게 사로잡힌 것)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이로 인해 백제의 멸망으로까지 이어졌던 역사를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았고, 그 결과는 자기 파멸과 백성들의 고통이었을 뿐이다.

남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몹시 기분 나쁘다. 하지만 나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움을 주는 것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쿨한 마음도 때로는 필요하다. 서로 도움을 준다는 것의 본질은 결국 서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이용당하고, 때로는 내가 상대를 이용하면서 그렇게 서로 등을 기대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난 절대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내 마음을 경직되게 만들고 나에게서 자유를 박탈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라면 기꺼이 이용당해 주자. 다만 그것이 상대방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나의 호의임을 분명히 알려주자. 상대의 행위가 선을 넘는다면 단호히 거절하면 될 일이다. 호구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의 문을 꽉 닫아버릴 필요도 없고, 스스로를 호구로 느끼며 자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저 나는 나대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에만 집중하자. 그것이 최고의 복수이자,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다.(174~175쪽)

4. 성공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다

성공이란 꼭 많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것처럼 사람들의 일반적인 혹은 물질적인 희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꿈꾸고 원하던 삶을 마침내 이루어 낸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박문규라는 인물이 있었다. 젊은 시절 많은 재산을 모았다가 방탕한 생활로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40세에 비로소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지만 무려 83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과거에 급제한다. 당시로서도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나이를 고려해 곧바로 정3품의 병조참지와 종2품의 가선대부라는 고위직에 임명될 정도였다. 평생을 과거 공부에만 매달리다 83세가 되어서야 겨우 급제한 것을 과연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남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박문규 자신의 성공 기준이 과거 합격에 있었다면, 성공한 삶이었다고 본다.

조선시대 중기에는 윤경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30세에 처음 관직에 진출했지만 마침내 장관직인 공조판서에 임명된 것은 90세가 되어서였다. 자신과 같은 시기에 과거에 합격했던 동기 또는 비슷한 연배의 선후배들이 자신보다 일찍 고위 관리에 임명되고 빨리 승진하는 것을 60년 동안 무수히 경험했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보다 훨씬 어린 후배가 영의정에 임명되는 것을 지켜보다 90세가 되어서야 겨우 고위직에 오른 것을 과연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윤경 자신의 성공 기준이 판서가 되는 것, 혹은 관직의 높이와는 다른 지점에 있었다면, 성공한 삶이지 않을까?

인생에 있어 일정한 목표를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타인의 기준에 비추어 높은 수준이거나 대단해 보일 필요는 없다. 남들의 눈에는 별것 아니더라도 본인이 만족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면 그것 자체가 성공한 셈이다. 박문규와 윤경이 설령 과거급제에 실패하거나 고위직에 오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충분히 즐기며 인생을 살았다면 누구도 감히 실패한 인생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228~229쪽)

5.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김시습은 가난한 무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엄청난 천재였던 모양이다. 배우고 익힌다는 뜻의 '시습(時習)'이란 이름처럼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자를 알았고, 3살 때는 어려운 한문책을 줄줄이 읽으며 한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책을 한 번 읽으면 모두 완벽히 기억해서 다시는 같은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고 하니, 장래에 대한 주변의 기대도 엄청나게 컸을 것 같다.

하지만 그가 15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도 중병에 걸리면서 불행이 시작되었다. 결정적으로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버리는 대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이다.

계유정난 소식을 듣고 분노를 금하지 못했던 김시습은 사흘 동안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급기야 공부하던 책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나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승려를 자처하며 홀연히 방랑 생활을 시작한다. 한창 미래의 꿈을 꿀 나이인 21세 때의 일이다. 수양대군에 반대하며 벼슬을 버리고 평생 절개를 지켰던 6명의 신하들, 즉 생육신 중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김시습은 평생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도, 보잘 것 없는 관직도 하나 지내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오로지 입신양명만을 인생의 정답으로 여기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양반들은 감히 오르지 못했던 뛰어난 철학자, 그리고 문학가의 반열에 올라 이름을 남겼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답안은 아니었지만 오늘날 누가 감히 그의 인생을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시습은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마음껏 누리다 세상을 떠난, 행복한 사람이었다.

인생을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주위 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기대에 부응하며 산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기대와 인정에 매달리며 지나치게 나를 맞춰 살 필요도, 아예 기대를 저버리도록 만들 필요도 없다. 남들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저 지금 현실을 감당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우리 인생을 사느라, 미처 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신숙주 같은 선택도, 성삼문 같은 선택도, 그리고 김시습 같은 선택도 좋다. 다만 내가 원하는 선택인가,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갈 수 있는 길인가, 그것이 중요할 따름이다.(277~284쪽)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