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김소월의 '초혼'
[시를 느끼다] 김소월의 '초혼'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04.02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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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그 어느 상실감보다 크고 깊다. 같이 갈 수 없는 길이기에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애타게 불러 보는 것이리라.
픽사베이
픽사베이

 

초혼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 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 이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출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민예원

 

초혼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일이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면 망자의 체취가 스며든 옷가지를 들고 기와지붕에 올라가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서 제발 돌아와 주기를 갈망한다. 사랑하고 의지하며 온갖 희로애락을 함께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지만 어찌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을까. 아껴 둔 말도 있을 것이고 미처 못 다한 말도 있으리라. 함께 하고 싶은 일도 있었을 것이고 미래의 고운 청사진도 같이 그리기도 했으리라. 그런 사람이 예기치 못한 시간에 홀로 훌쩍 떠나간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애달프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닌가. 그 심중을 그 누가 다 헤아려주랴. 먼저 간 사람도 모를 것이고 주위에 있는 사람도 모르리라. 다만 혼자 몸부림치면서 애달프게 울부짖는 시인의 모습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오죽하면 부르다가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싶고 부르다가 죽고 싶은 마음이 들까.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그 어느 상실감 보다 크리라. 같이 갈 수 없는 길이기에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애타게 불러 보는 것이리라. 서산에 걸린 붉은 해도 슬퍼서 눈시울을 붉히고 사슴의 무리까지 슬픔에 젖어 울어주며 동참해 주는듯하다. 그러니 시인의 슬픔이 내게로 다가와 모든 아픔을 녹아내리게 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우리나라 서정시의 백미라 할 소월 시를 음미하노라면 한의 설움이 알알이 맺혀있음을 본다. 하여 가슴 아픈 이들이 같이 슬퍼하고 함께 울면서 애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설로 부르다가 죽고 싶은 이름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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