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론 - 죽어야 산다
[기고] 강론 - 죽어야 산다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1.03.3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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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진 그레고리오 원로 신부(베네딕도 왜관수도원 분원장)
죽어야 산다 (요한 12/20) 강론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본관 전경.  유무근 기자

전에 ‘필리밑드’ 에서 발견한 3000년 전의 씨앗을 땅에 심었더니 새싹이 트고 강력한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겨울 동안 잘 보관해 두었던 씨앗을 봄에 땀을 흘리며 뿌리면 가을에 기쁨 속에 곡식을 거두게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처럼 이 자연적 이치가 우리의 삶의 본질을 이루고 있습니다. 씨앗이 죽지 않으면 3000년이 되어도 골동품으로 남게 되어 생명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땅에 심어 씨앗이 죽으면 새로운 생명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내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골동품의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창조적이고 풍요로운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사이비 교주의 특성은 시작은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고 주장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주님을 자기 종으로 부리고 자가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책임 있는 자리도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하며 주님을 따르라 하지만 나중엔 "나를 따르라"합니다. 국민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선출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선출된 다음에는 대부분 국민의 지배자가 되어 자기의 본분을 잃어버립니다.

인생사 안에 어떤 자리에 있든지 그 속에서 자신이 죽어야 살게 됩니다. 사제나 주교나 교회 장상으로 선출되면 그 시간부터는 땅에 묻힌 씨앗과 같습니다. 본당신부가 어느 지역에 파견되면 그곳에 묻혀야 합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들어내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없어지고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사제는 지역 교회에 파견되면 그곳이 바로 자신이 죽어야 할 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곳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자신이 살기 위해서 신자들을 위하여 봉사하지 않거나 희생하지 않으면 하느님 대신 자신이 성당 기둥 위에 세워놓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제가 가야 할 길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위해 땅에 들어가 죽는 것입니다.

사제가 사는 법이 아니라 죽는 법을 익혀 매시간 마다 죽으면 지역 교회는 새 생명을 얻지만, 자신이 살고자 하면 그곳은 생명이 사라진 무덤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씨앗도 씨앗 나름입니다. 덕이나 품격으로 사람 됨됨이가 갖추어져 있으면 땅에 떨어져 심어지더라도 인삼과 같은 귀한 결실을 얻을 수 있지만 사람 됨됨이가 모자라면 땅에 떨어져 심어져도 잡풀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읍니다. 좋은 씨앗이 되도록 준비하여야 합니다.

문젯거리도 안 되는 사제가 무엇이나 된 것 같이 자기 주장만 세우고 겸손하고 온유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씨앗이 되어 잡초만 무성하게 됩니다.

자기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땅에 들어가 죽지 않는 씨앗입니다.

성경에서 '죽는다'라는 것은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의식과 의지에서 자신을 죽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없고 '너'만 있는 것, '내'것은 없고 모두가 '네'것이라는 의식, '나'를 내세우기보다 '너'를 앞세우는 겸손 등 어떤 일이든지 자신이 죽어 썩지 않으면 새 생명과 새싹이 나오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사랑은 나만 살고 너는 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 네가 사는 것입니다.

1928년 건축된 구(舊) 성당은 왜관 최초의 성당이다. 구성당의 건축 양식은 신 고딕 양식을 포함한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주보성인은 '루르드의 성모'이다. 이 성당은 건축 후 왜관 지역에서 그리스도적 삶의 중심이 되었다.  앞의 건물은 본당 사무실로 사용되다 후에 왜관 첫 유치원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성당 일부가 파손되었고, 부상병을 위한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유무근 기자 

7년 동안 요양원에서 치매 걸린 부인과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의 감동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치매 걸린 부인은 자기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자신이 부인을 알아보기에 자신은 부인을 알아보는 한 함께 하고 아침식사만이라도 함께할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상대방이 자신을 못 알아보아도 자신이 상대를 알아주는 한 둘사이는 사랑이 현존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주님을 본 적도 없고 주님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가 주님을 알고 믿고 있으니 우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지금은 비록 나이가 들어 수도원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누구보다도 수도원을 잘 알기에 수도원을 사랑하며 이제 늙어 세상에서 쓰레기 같은 존재이지만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들어 나를 여기 살게 하셨으니 주님을 사랑합니다. 의식이 있는 한 나는 주님을 사랑할 것이며 비록 죽은 형제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기억하기에 그들과 대화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사는 것입니다. 아멘!

<출처: 시민공정단톡방>

 

이석진 신부는 1963년 12월 20일 사제 서품을 받았고  2013년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 2023년 60주년을 맞는다.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원장(88세)을 지낸 원로신부이다. ‘한국가톨릭농민회’ 1966년 10월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고령인데도 선교 복음화 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가톨릭사랑방’ ‘시민공정단톡방’ 인터넷 등에서 매일 새로운 강론을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