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외길, 김흥수 이발사
64년 외길, 김흥수 이발사
  • 이철락 기자
  • 승인 2021.03.29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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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에도 이발소 경영, 베드민턴 실력도 전국대회 A급

27일 오전 11시, 빗과 가위를 잡은 그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대구 중구 삼덕동에 위치한 한 이용소의 문을 열자 나타나는 모습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발 기술을 배운 뒤로 지금까지 64년 동안 한 우물을 판 김흥수(81·청하이용소) 이발사를 만났다.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왕성한 기억력과 재빠른 자료 제공으로 취재에 협조했다.

27일 오전 대구 중구에서 김흥수(81·청하이용소) 이발사가 64년째 같은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철락 기자
27일 오전 대구 중구에서 김흥수(81·청하이용소) 이발사가 64년째 같은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철락 기자

 

- 언제부터 하셨고, 이발업을 평생 직업으로 삼은 계기가 있습니까?

▶17세부터 시작했다. 당시 시골에서는 직업을 생각해야 할 나이였다. 처음엔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갈등 끝에 이발 기술을 배우게 되었고 이게 평생 직업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용소를 찾아온 손님들과 다양한 얘기를 나누며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다.

- 처음부터 현재 장소에서 일하셨나요?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가 고향이다. 이곳에서 3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장터에 있던 문화이발소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고, 20세가 넘던 해에 대구 중구 동인동으로 와서, 1991년 목욕탕이 있던 곳으로 다시 옮겼다. 현 위치에서는 2006년도부터 일하고 있다. 대구에 온 지는 벌써 60년, 현 위치에서는 15년이 되었다.

이용소 벽면에는 1963년 2월 경상북도지사로부터 받은 면허증과 1984년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받은 모범업소지정서, 2019년 지역 국회의원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이 걸려있다. 대구시는 1981년 7월부터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경북에서 분리되었다.

- 64년간 이발업에 종사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도 많을 것 같습니다.

▶1958년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어린이의 머리카락 사이에 이(louse)와 서캐가 많아서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이면 머리를 빡빡 깎는 것이 흔했다. 하루는 입학식을 앞두고 딸을 데려온 어머니의 요청으로 머리를 빡빡 깎아주었더니, 나중에 아이의 언니가 와서 심하게 항의했고 어머니가 말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미 깎아버린 머리를 다시 붙일 방법이 없어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가장 오래 남아있다. (웃음)

- 오래 하다 보면 다른 직업으로 한번 옮기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텐데요?

▶그런 생각도 있었다. 특히 자동차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 운전이 몹시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어머님이 위험하다고 만류하셨다.

- 요즘은 하루 몇 시간 정도 일하시는지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한다. 한창 성업이던 젊은 시절에는 새벽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5명의 종업원을 두고 일하던 때도 있었다. 당시에는 업소가 많아 경쟁이 치열했고 식사 시간마저 부족했었다. 서로 새벽 일찍 문을 열려고 애를 많이 썼던 시절이었다.

- 힘들었을 때도 있었습니까?

▶평생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항상 천직으로 생각하고 손님과 얘기하며 즐겁게 지내는데 돈까지 생긴다. (웃음)

- 주로 찾아오는 손님의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20대 젊은 사람들도 자기네끼리 소문을 내서 찾아온다.

- 자신의 이발은 누가 해주는지, 그리고 가족 관계가 궁금합니다.

▶많이 받는 질문이다. (웃음) 이발사에서 건축업으로 이직한 친구가 와서 가끔 서로 해준다. 77세인 아내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모두 결혼하여 대구에서 잘살고 있다. 큰아들은 50세가 넘었다.

- 매일 오랜 시간 서서 일할 수 있는 건강 비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새벽 5시에 눈을 떠서 누운 자세로 약 20분간 요가로 몸을 풀며 새벽 배드민턴 운동을 준비한다. 이후 6시에 자동차로 수성국민체육관으로 이동한 다음, 오전 8시까지 샛별 클럽의 회원들과 매일 두 시간씩 배드민턴을 친다. 결코 무리해서 격하게 하지는 않는다. 가끔 저녁에는 아내와 대구 신천 주변을 걷기도 한다.

지난 20일 오전 7시 반, 대구 수성국민체육관에서 그(맨 앞)가 샛별 클럽 회원들과 배드민턴을 치며 백 드라이브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철락 기자
지난 20일 오전 7시 30분, 대구 수성국민체육관에서 그(맨 앞)가 샛별 클럽 회원들과 배드민턴을 치며 백 드라이브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철락 기자

 

- 배드민턴을 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다른 운동은 별로 재미가 없어서 50대 중반에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대구시대회와 전국대회에서 각각 70대 A급을 인정받았다.

- 전국대회에서 A급으로 언제 승급했나요?

▶코로나19로 대회가 정지되기 직전까지 대구시 및 전국대회에 출전했었다. 2011년도 전남 화순군에서 제30회 전국연합회장기 국민생활체육배드민턴대회가 열렸었다. 화순군은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인 이용대의 고향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여 70대 A급으로 승급하였다.

청하이용소 벽면에는 배드민턴대회와 관련한 수많은 메달이 걸려있다. 벽 거울에 그가 이발하는 모습이 비치고 있다. 이철락 기자
청하이용소 벽면에는 배드민턴대회와 관련한 수많은 메달이 걸려있다. 벽 거울에 그가 이발하는 모습이 비치고 있다. 이철락 기자
지난 2011년 전국 배드민턴대회에서 우승한 후 촬영한 기념 사진. 사진의 배경이 된 당시 포스터에는 대회 기간, 장소와 주최자가 적혀 있다. 김흥수 씨 제공
지난 2011년 전국 배드민턴대회에서 우승한 후 촬영한 기념 사진. 사진의 배경이 된 당시 포스터에는 대회 기간, 장소와 주최자가 적혀 있다. 김흥수 씨 제공

 

-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을 해 주십시오.
▶좌우명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늘 ‘부지런하고 정성껏 하자!’를 명심하고 있다. 정성 들여 이발하며, 찾아온 손님과 대화하다 보면 하루하루의 삶이 즐겁고 보람이 있다.

이날 단골손님으로 찾아온 허경만(64·대구 서구) 씨는 서구 중리동에서 10여 년째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는 “먼저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며, 이용소가 청결하고 주인이 친절하다. 이곳에서는 마치 동네의 마음씨 좋은 형님을 만나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가 항상 내 집 같다. 이것이 내가 멀리서 승용차 운전까지 해 오는 이유이다.”라며 이발 도중 무척 만족스러워한다.

인터뷰하는 동안 노익장의 여유와 삶의 만족도가 물씬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