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놀이, 대지예술을 하는 소강 정은기 작가를 만나다
하늘놀이, 대지예술을 하는 소강 정은기 작가를 만나다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1.03.2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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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놀이, 대지예술을 하는 소강 정은기 작가를 만나다

 하늘 꽃자리                                    

 

구름꽃 피어나는

하늘 꽃자리

별이 있어 더욱 고운

하늘 꽃자리

藝人이 가꾸는

가산 이 기슭

素岡의 꿈자리

루나네 집

아름답게 이어 남을

하늘 꽃자리

지난 3월 27일, 소강 정은기 선생을 만나러 가는 팔공산 길목엔 개나리와 벚꽃들이 앞을 다투며 꽃등을 밝히고 있었다. ‘하늘 꽃자리’는 25여 년 동안 가산산성이 보이는 산자락에서 하늘놀이와 대지예술에 빠진 소강선생의 문패로 소강 선생의 작품에 황계 심형준선생이 짓고 혜정 류영희선생의 글씨다.

문패인 '하늘 꽃자리'는 구상시인의 '꽃자리'라는 시에서 인용   우남희기자
문패인 '하늘 꽃자리'는 구상시인의 '꽃자리'라는 시에서 인용 우남희기자

문 앞에 나와 계신 소강선생의 모습은 팔공산의 정기를 받으며 살아서일까 여든 한 살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해 무엇보다 반가웠다.

▶출생과 성장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태어난 곳은 지금은 김천시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금릉군으로 봉산면 신동(일명. 봉개마을)에서 1남 5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던 때였는데 딸 다섯에 막내로 아들인 제가 태어났으니 금지옥엽의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귀할수록 엄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누나들 앞에서 적지 않은 꾸중을 듣고 자랐습니다.

김천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시절 박인채, 이귀향, 김수명 선생님께 사사를 받고 청운의 꿈을 안고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동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김천고등학교와 영덕 강구중학교, 경북예술고등학교를 거쳐 1967년부터 대구대학교(현 영남대) 여자초급대학 전임강사로 시작해 40여 년을 영남대학교 강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사실 ‘가르치다’라고 표현은 했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개념으로 임했습니다. 1982년 미국 노던콜로라도대학교 초빙교수로 갔을 때 교육은 가르치는 개념보다 서비스 개념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놀이인 솟대를 작업하시는 소강선생    이승호 기자
하늘놀이인 솟대를 작업하시는 소강선생 이승호 기자

▶돌조각가로 알고 있는데 작업장을 보니 돌조각뿐만 아니라 솟대, 도자기, 목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있는데 그 연유를 알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습니다. 돌 조각을 위해 도자기를 했을 뿐, 돌 조각과 많은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돌을 갈고 다듬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저로서는 마냥 즐거웠습니다. 필요한 대리석은 충청도 예산, 익산, 충주 등에서 주문해오고, 화강석은 우리나라 전역에 있으니 구입하는데 어려움은 크게 없었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 아시죠? 퇴임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니 체력에 한계가 와서 쉬운 재료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주어진 장르를 벗어날 수 없었지만 퇴임 후, 자유로워지면서 재료와 표현의 형식을 초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장르를 하게 되었고 하늘놀이라고 명명한 솟대모빌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늘놀이는 호작질입니다. 어렸을 때 ‘얘야, 호작질 그만해라’는 말을 한 두 번은 들었을 겁니다. 바로 그 호작질입니다. 쓸데없이 손을 놀려 하는 장난을 말하는 건데 마음이 가는대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는 상상에 바탕을 두며 상상은 자유로움에서 비롯되니 결국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하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하지요.

교수라는 사회적 위치에서 내려왔으니 생활뿐만 아니라 작업도 자유롭게 한다는데 그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즐겁게 ‘호작질’하자는 모토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늘놀이의 새는 솟대를, 모빌 형태는 미국의 조각가 콜더가 시작한 모빌 조형물을 차입했습니다. 솟대 재료인 나무는 집 정원에서 채집해 삶습니다. 삶으면 나무의 껍질은 자연스럽게 벗겨지고 별도로 말리는 과정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다듬어 이미지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나무를 채집할 때 재단을 염두에 두고 하기 때문에 별도로 이미지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작업으로 옻칠을 합니다.

솟대와 모빌을 차입한 하늘놀이 작품   우남희기자
솟대와 모빌을 차입한 하늘놀이 작품 우남희기자

▶정원에 작품이 많은데 특히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고 대지예술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특별히 아끼는 작품은 없습니다. 특별히 아낀다는 것에 개념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 손을 거쳐 태어난 생명 있는 작품들인데 어느 하나 귀하고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작품들이 다 나의 분신이라고 할까요.

제 작품은 달성공원 내 석재 서병오선생과 죽농 서동균선생의 예술비, 구미 금오산도립공원 내 구미시민헌장비, 대구상인동가스폭발 희생자위령비, 김천시 현충탑, 대구시문화예술회관, 대구문화방송국, 대구백화점, 국민연금관리공단 대구회관 등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대지예술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정원에서 농사짓는 텃밭을 말합니다. 농사라고 하면 노동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요. 그래서 이 또한 즐겁게 하자는 의미에서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대지예술이란 말씀을 듣고 텃밭을 보니 예사롭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일렬로 길게 비닐을 깔고 작물을 심는데 반해 선생의 텃밭은 태극 모양으로 밭을 일구고 비닐을 깔았다. 텃밭 농사도 풀을 뽑는 수고로움이 만만치 않을 터인데 고생이라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하자는 선생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대지 예술'이라고 하는 태극무늬의 텃밭   우남희기자
'대지 예술'이라고 하는 태극무늬의 텃밭 이승호기자

선생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수차례 입선했을 뿐만 아니라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상, 행정자치부장관상,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대구미술발전위원회 원로작가상, 제 34회 대구시문화상 등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를 이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고나 할까.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에 가면 아드님인 정세용 작가의 설치예술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