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양경미 '한국 영화의 공간'
[장서 산책] 양경미 '한국 영화의 공간'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3.15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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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운명, 과거와 현재, 청춘과 희망…
영화 감상의 포인트를 '공간'으로 옮기다!

저자 양경미는 영화평론가 겸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 소장이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영화학 박사를 취득했고, 현재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동안 다수의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지냈다.

목차를 보면 '제1막 운명적 사랑의 광장 #01. 번지점프를 하다 #02. 편지 #03. 접속, 제2막 언약의 장소 #01. 봄날은 간다 #02.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03. 약속, 제3막 과거를 간직한 도시 #0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02.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제4막 청춘과 희망의 공간 #01. 상록수 #02. 고래사냥 #03. 라디오스타'로 되어 있어서 모두 11편의 영화 촬영 장소를 소개하고 있다.

1. 번지점프를 하다

김대승 감독, 이병헌, 이은주 주연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주요 공간은 덕수궁 돌담길, 신아기념관, 학림다방이다. 신아기념관은 신아일보사가 사용하던 건물이다. 1980년 5공화국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신아일보사가 경향신문사에 통폐합되고 지금은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다.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은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곳으로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 세력이 주로 모임을 한 다방이다.

2. 편지

이정국 감독, 최진실, 박신양 주연의 영화 <편지>의 주요 공간은 경강역과 아침고요수목원이다. 경강역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대에 있는 역이라고 해서 두 지역의 앞글자를 빌려와 만든 명칭이고, 1996년 개원한 아침고요수목원은 축령산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국 전통의 미를 원예학적으로 잘 조화시킨 곳이다. 아침고요수목원 입구에 들어서면 영화 <편지>의 엔딩 장면에 등장한 환유나무가 보인다.

3. 접속

장윤현 감독,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의 주요 공간은 피카디리 극장이다. 피카디리 극장은 1958년 설치허가를 얻고, 1960년 서울키네마라는 이름으로 영화의 상징인 종로 한복판에 개관했다. 그러다 1962년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예술거리인 피카디리 가(街)의 이름을 따서 피카디리 극장으로 명칭을 바꿨다. 피카디리 극장은 2004년 8개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거듭났다. 극장 이름은 프리머스 피카디리, 롯데시네마 피카디리를 거쳐 현재는 CGV 피카디리 1958로 바뀌었다.

4. 봄날은 간다

허진호 감독, 유지태, 이영애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요 배경은 강원 삼척 신흥사의 대나무숲과 맹방해수욕장이다. 삼척 신흥사는 신라 민애왕 원년(838년)에 창건돼 지흥사, 광운사, 운흥사 등으로 불려오다 1821년(순조 21년) 신흥사로 이름을 고쳤다. 맹방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넓고 수심이 얕아 삼척 제1의 해수욕장으로 불린다.

5.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장길수 감독, 손창민, 강수연 주연의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배경은 서울시립대, LA의 코리아타운과 스타더스트 호텔, 산타모니카 해변과 베니스 해변이다. 서울시립대는 서울시가 설립해 운영하는 유일한 대학으로, 학교 규모는 크지 않지만 요즘 대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빨간 벽돌 건물이 여러 동 있고, 학교를 관통하는 중앙로의 조경도 예쁜 것으로 소문났다. 1958년에 오픈한 스타더스트호텔은 빨간색과 파란색을 조화시킨 건물 외관으로 유명하다. 이 호텔은 2007년 3월 13일 새벽 불꽃놀이와 함께 폭발 해체되었다. 산타모니카 해변과 베니스 해변은 젊음과 자유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6. 약속

김유진 감독, 박신양, 전도연 주연의 영화 <약속>의 명소는 전주 전동성당이다. 전동성당은 서울 명동성당, 대구 계산동성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성당으로 꼽힌다. 1891년에 프랑스 보두네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명동성당을 설계했던 프와넬 신부가 설계를 맡아 1914년에 완공됐다. 호남지역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로 사적 제288호로 지정돼 있다. 규모가 크고 외관이 아름다워 영화 및 드라마의 촬영지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7.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신상옥 감독, 최은희, 김진규 주연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주요 촬영지는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에 위치한 전통한옥으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한데 우물(집 울타리 밖에 있는 우물)도 보존돼 있다. 북수문(화홍문)과 방화수류정, 북암문도 영화 속에 나온다. 화홍문은 수원천의 범람을 막아주는 동시에 방어적 기능을 갖춘 수문으로 화강암으로 쌓은 다리 위에 지은 문이다.

8.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명세 감독,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오프닝 신은 부산 중구의 40계단에서 촬영되었다. 40계단은 1909~1912년 해안가와 동광동 언덕 주택지를 잇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40계단 주변에 피란민들이 몰려 판자촌을 이루게 되면서 피란민들의 생계를 위한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였으며 전쟁 중에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였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 20주년을 기념해 40계단 거리에서 특별행사를 진행하였다.

9. 상록수

신상옥 감독, 최은희, 신영균 주연의 영화 <상록수>의 주요 촬영지는 경기도 안산이다. 안산 상록구에는 채영신이 야학을 운영했던 천곡교회(현 샘골감리교회)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샘골에는 상록수의 실제모델인 최용신 묘와 최용신 나무가 있으며, 안산 본오3동 상록수 공원에는 최용신 기념관이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은 문학작품을 역명으로 사용한 최초의 사례다.

10. 고래 사냥

배창호 감독, 안성기, 김수철, 이미숙 주연의 영화 <고래 사냥>의 전반부는 서울, 후반부는 강원도가 주된 배경이다. 영화의 최종 종착지인 남애항은 삼척의 초곡항과 강릉의 심곡항과 더불어 강원도 3대 미항(美港)으로 꼽힌다. 남애항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작은 돌섬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는 방파제도 있다. 남애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해돋이다. 남애항은 일출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11. 라디오 스타

이준익 감독,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요 배경은 KBS 영월방송국, 별마로천문대이다. 2004년 폐지된 KBS 영월방송국은 영월군에서 매입해 2015년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재탄생시켰다. 별마로천문대는 라디오스타 박물관 뒤 해발 800m의 봉래산에 있다. <라디오 스타>의 거의 모든 장면이 영월에서 촬영됐고 청록다방, 중국집, 철물점, 세탁소, 미용실, 기찻길, 모텔까지 영월 읍내의 모든 공간을 활용했다. 영화의 주요 공간은 지금도 영업 중인 실제 장소다.

영화의 촬영공간은 작품의 내용을 돋보이게 하고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특정 영화를 떠올릴 때면 내러티브와 함께 촬영장소가 생각나는 경우가 많다. 관객들은 영화 속 추억의 공간을 통해 스토리를 기억해낸다.

이 책은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멜로영화 중에서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장소와 공간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해당 공간을 선택한 감독의 의도를 인터뷰를 통해 파악하려고 노력했으며 저자가 직접 영화 속 배경이 된 촬영장소를 찾아가 그 공간을 담았다.

책을 읽고 '한국영상자료원'(https://www.koreafilm.or.kr)에서 <상록수>(1961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년), <고래 사냥>(1984년)을 봤다. 영화의 공간 외에도 배우의 연기력과 감독의 연출 스타일, 한국 영화의 발전상 등 영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었다. 앞으로 영화를 볼 때는 스토리 외에 배경이 되는 장소와 공간에도 주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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