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극장 이야기] 그 시절 미도극장의 추억
[영화 이야기, 극장 이야기] 그 시절 미도극장의 추억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1.03.11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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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미도극장 자리에 각종 상가가 들어서 있다.  박미정 기자

 

1980년대 말 대구에는 무려 50개가 넘는 극장이 있었다. 그야말로 극장의 전성시대였다. 1982년 공연법이 개정되면서 영화관 설립과 설치기준이 완화되었다. 300석 이하의 소극장도 많이 생겨나고, 영화법도 개정되어 영화제작사도 늘어났다. 하지만 1990년대 홈비디오 시장의 급성장과 외환위기로 인한 쇠퇴에 접어들면서 동네 극장들은 복합상영관에 밀려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다.

1980년대 대구 미도극장(대구시 중구 명덕로 59)이 있었던 자리를 어렵게 찾았다. 그 시절 호황을 누리던 극장은 간 데 없고 각종 병원 및 복지센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맞은 편 대명시장 상가에서 수십 년간 영업을 해 온 이 모(67)씨와 인터뷰를 했다.

-미도극장에 관한 추억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당시 동네 극장들은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로 호황을 누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제게도 전성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저는 당시 미도극장 근처 주택에 살면서 영화는 물론이고, 이쁜 여자들도 원없이 봤습니다. 친구들과 극장가를 서성이다가 눈에 들어 오는 아가씨라도 있으면 슬금슬금 뒤따라 들어가 상인들이 극장 안을 오가며 파는 오징어나 깨엿으로 인심을 쓰며 데이트 신청을 하곤 했습니다.

-당시 극장 안 모습이 궁금합니다.

▶극장에 처음 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대한뉴우스’도 보았지요. 간혹 뒷좌석에서 들려 오던 웃지 못 할 그 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애국가가 나올 때 일어나지 않으면 경찰이 와서 진짜로 잡아 가나!'

-그 시절 본 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애마부인'이 생각납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눈물샘을 자극했지요. 애마부인은 한국 성인영화의 한 획을 그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어요. 글래머 여배우에게 반한 극성팬들은 영화가 끝났는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을 까 먹으며 보고 또 보았어요. 어떤 사람은 티켓이 매진되어 웃돈을 두 배씩이나 주고 암표를 사기도 했지요. 극장 입구에 '암표 단속'이란 문구가 걸렸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인터뷰를 마친 이 씨는 “그 시절 어스럼 밤길에 극장가를 기웃거리며, 벽면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를 몰래 뜯어 자신의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매일 보았다”며 어쩌면 본인이 살아 온 삶도 영화로 만들면 한 편의 인생극장이 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학창시절, 미도극장에서 사복을 입고 성인영화를 몰래 보다가 학생주임에게 걸려 머리를 깎였다던 옛 친구가 오늘 따라 무척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