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화시지에(華西街)의 비구니
타이완 화시지에(華西街)의 비구니
  • 임승백 기자
  • 승인 2021.03.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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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1738년) 도교 사원 용산사(Longshan Temple) 화시지에 야시장(Huaxi Jie Market)
용산사(龍山寺) 전경. ⓒwikipedia.or.com(by Bernard Gagnon)
타이완 용산사(龍山寺) 전경 ⓒwikipedia.org(by Bernard Gagnon)

시먼역(Ximen Station)에서 딩푸(Dingpu) 방향으로 한 정거장만 가면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용산사(Longshan Temple)가 있다. 1738년 청나라 시절 세워졌다는 이 사원은 화려한 황금빛 지붕만 보아도 도교 사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용산사는 불교, 도교, 유교 등 백여 신과  함께 남쪽을 향하고 있는 회자형(回字形) 모양의 건축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중국 고대의 삼진사합원(三進四合院) 및 궁궐식 건축 양식이 혼재된 것이다. 전전(前殿), 정전(正殿), 후전(後殿)과 좌우호룡(左右護龍) 그리고 상서로운 동물들로 형상화된 지붕의 등과 차양은 예술의 정수를 볼 수 있기도 하다. 정전에 있는 관음보살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파된 정전과는 달리 연화좌에 태연히 앉아 있었다고 하니 신비함까지 더해 준다. 후전에는 문창제군(文昌帝君) 등 여러 신이 있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관우와 화타가 관성제군(關聖帝君)과 화타선사(华陀仙师)로 모셔져 있어 눈길을 끈다. 용산사는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산속에 있는 우리네 사찰과는 달리 도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좋다.

용산사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면 타이베이 최고의 재래시장인 화시지에 야시장(Huaxi Jie Market)이 있다. 스린 야시장(Shilin Market)과 함께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야시장이다.

화시지에 야시장(華西街夜市) 입구. 임승백 기자
타이완 화시지에 야시장(華西街夜市) 입구. 임승백 기자

우리나라 광장시장과 같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재래시장답게 길거리 음식부터 없는 물건이 없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마사지 가게가 유난히 많다. 시간당 한화로 만 원 남짓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 관광객이 방문하는지 가게마다 한글 안내문이 붙어 있다. 호기심에 한글 안내문을 보고 있노라면 종업원이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과 함께 호객한다. 마사지 실력이야 허접스럽기 그지없지만, 잠시나마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색다른 곳이다.

식당 거리로 들어서면 맛깔스러운 음식과 함께 시끌벅적한 시장 분위기가 흥미롭다. 대만 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취두부(臭豆腐) 냄새가 아닐까 한다. 처음 냄새를 맡는 사람은 음식 썩는 듯한 냄새에 기겁한다. 아마도 청국장 냄새를 처음 접한 외국인의 느낌이랑 비슷할 것이다. 다행히 요즘은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대만인들의 취향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취두부 냄새가 그렇게 심하지 않다.

화시지에 야시장 길거리 음식. 임승백 기자
타이완 화시지에 야시장 길거리 음식. 임승백 기자

어느새 어스름이 내려 앉는다. 하루를 마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골목 식당으로 모여든다. 낯설지 않은 선술집 분위기다. 후미진 곳이라 그런지 외국인이 들어서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본다. 생소한 음식 메뉴에 곤혹스러워하는 우리를 보고 있던 종업원이 다가와 음식 설명과 함께 추천까지 해 준다. 한국에 대해서 나쁜 감정이 많은 줄로 알았던 곳에서 한국을 좋아하는 이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하다.

술잔을 부딪치며 즐기고 있을 때쯤 조그만 체구의 비구니가 수줍은 듯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체격이며 얼굴 생김새가 한국 여배우를 닮아 시선을 끌기 충분하지만, 현지인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허탕뿐인 탁발을 하며 좁은 식당을 비집고 다니는 그녀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마침내 우리 차례다. 겸연쩍어하면서도 다가와 합장을 한다. 창백한 얼굴색에 눈을 내리 깐 모습이 바로 수도자의 모습이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는 조지훈 시인의 <승무>라는 시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일어서서 같이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이자 비구니도 적잖이 놀라는 표정이다. 취객의 장난으로 여겼는지 그냥 돌아서려는 그녀에게 지폐 몇 장을 끄집어내어 건넸더니 그녀는 또다시 놀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진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다.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무엇을 잘못했나 싶어 주변을 돌아보지만, 현지인들도 흐뭇해하는 표정이다.

사진이나 찍고 덕담 한마디라도 해주고 가시지 ‘시주 돈 돌려달라’고 할까 봐 황급히 나가버리는 소심한 비구니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오늘은 따뜻한 밥이라도 먹고 부처님 곁에서 편안히 쉬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한참 동안 거리를 바라본다.

사라진 비구니의 연꽃 향기를 따라서 살그머니 어둠이 내려앉는다.

화시지에 야시장 골목 안 식당. 임승백 기자
타이완 화시지에 야시장 골목 안 식당. 임승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