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의 멋과 더불어 사랑에 푹 빠진 삶, 팔공산난원 이재용 씨
난초의 멋과 더불어 사랑에 푹 빠진 삶, 팔공산난원 이재용 씨
  • 김차식 기자
  • 승인 2021.03.02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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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난과의 본격적인 사랑에 빠져
팔공산난원을 운영하는 이재용 씨가 개화된 ‘복색화’를 들고 있다. 김차식 기자
팔공산난원을 운영하는 이재용 씨가 개화된 ‘복색화’를 들고 있다. 김차식 기자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갓바위 뒷길에서 와촌 방향으로 넘어가는 중턱 자락의 아늑하고 조용한 곳에 위치한 ‘팔공산난원’을 찾았다. 이재용 씨(68·대구광역시 동구 능성동 357-2)가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여 애란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다.

이 씨는 대구시에서 32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사무관으로 명예퇴직한 후, 2011년부터 애란생활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공직 생활 때부터 한국춘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난초를 채집하는 재미에 빠져 휴일마다 산행으로 보내기 일쑤였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와 올해도 춘란전시회가 중단되었다. 일상생활에 지친 시민들에게 난초의 그윽한 아름다움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너무 아쉽다고 한다. 삶의 여유와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사라져 한국춘란이 주는 봄의 기운을 만끽하지 못함은 더욱 미련이 남는다.

구석구석에는 이 씨가 정성들여 가꿔온 애틋한 애정들이 녹아 있었다. 난실 안에는 품종 하나하나가 다소곳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며, 고이고이 꽃을 피워낸 난의 은은한 향기가 난실을 가득메웠다. 따스한 봄과 함께 우아한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는 아름다움 그대로였다. 고고한 곡선의 자태를 즐길 수 있어 혼자서 보기에는 아쉬웠으며 춘란의 우수성을 공유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수명 연장으로 노인들의 생계와 복지가 삶을 유지시키는 차원을 넘어서 이제는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까하는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난과 함께하는 노년의 애란생활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며, 긍정적인 방법의 시작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금화’. 김차식 기자
주금화. 김차식 기자

-난실 운영 전의 직장 경력과 근무 시 수상실적에 대해 소개해 주시면?

▶공직생활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시민을 위해 봉사하다가 지방기술서기관으로 명퇴했다. 구청장상, 시장상, 장관상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급성전염병관리와 식중독 예방 공적으로 대통령상도 받았다.

-어린 시절의 꿈과 난초에 관심을 둔 이유, 동기나 계기가 있다면?

▶농촌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산천초어와 더불어 생활하면서 초·중학교를 다녔다. 넓은 들판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찍 깨닫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꿈은 푸른 영공을 날아다니는 전투기조종사가 되어 탑건이 되는 것이었다. 당시 빨간 마후라, 성난 독수리와 같은 노래를 18번곡으로 부르면서 꿈을 키워왔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 후, 자취생활과 환경변화로 꿈이 무산되어 제 삶에 가장 후회가 되면서도 그 경험들이 내 마음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애란생활의 시작은 다소 독특했다. 1990년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중,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환경대학원 석사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영남대학교 장무웅 교수와의 만남이 난과의 첫 대면이었다. 애란생활과 바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동서로부터 우연히 선물 받은 한 분의 동양란을 통해 난에 매료되면서 그간 학술적으로만 만나왔던 난과의 만남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 것이다. 그때는 이상하리만치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으며, 아마도 난을 하게 될 운명을 타고난 듯싶다.

'홍화'. 김차식 기자
'홍화'. 김차식 기자

-산채는 몇 년 전부터 시작하였으며, 산채 장소와 들러주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1990년부터 경상남도 합천의 산지를 휴일마다 찾아다니며 탐란에 심취하였다.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전국을 순회하면서 희귀종을 찾아 헤매었으며, 일생일란을 꿈꾸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산채를 위해서 1박2일에서 10박11일 등으로 국토의 최남단 보길도, 완도, 사랑도 등등의 섬과 태백산까지 이름난 산은 다 섭렵 했다.

고향에 있는 산에 산채를 갔을 때의 이야기다. 20여 년 전에 비포장 산길이었는데, 꼬불꼬불한 산길로 가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고향 친구 3명이 목표지점에 도착, 산신제물을 차려놓고 산신께 절을 올리고 산채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산에 올랐던 친구가 사색이 되어 내려가자고 했다. 평소에 용감한 친구라 농담이라 생각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해서 산채를 멈추고 내려와서 이유를 물었더니, 바위 위에 사람 시체가 있다고 했다. 산채는 그만 두고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귀가했다. 그 후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신고를 한 친구는 중국집 등등 무슨 일이든 하면 많은 돈을 벌었다. 미스터리 같지만 그 망자가 중학교 친구의 삼촌이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여러 사람에게 복을 주지 못하고 한 명에게만 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도 산에 오르기 전에 꼭 예를 올린다.

제11회 경남춘난대전에서 대상 수상, 김차식 기자
제11회 경남춘난대전에서 대상 수상, 김차식 기자

-난초 애호가로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내용, 난 전시에 출품하여 수상 실적이 있으시면?

▶산채한 난들이 좋은 꽃과 품종으로 내 것으로 얻어질 때가 아닐까 싶다. 영천 보현산 자락에서 산채해온 예명 “보현” 중투화 소심이 가장 자랑스럽다. 또, 2016년 경남난문화협 춘란대전에서 보름달이란 황화 소심으로 대상 수상, 대구난연합전에서 특별상 수상 등 여러 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있다. 단위 난우회에서 3회 전시회를 단독으로 개최하였다. 내가 직접 명명한 “자맥”, “천장”, “황학” 등등이 특히 자랑스럽다.

-난실을 운영한 경력과 어려움, 현재 난실에 소장하고 있는 난분수와 종류는?

▶2011년 말 공직생활을 마치고부터 난실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겨울에 난방문제와 여름 혹서기에 대처방법 등이 어렵다. 지난해에는 잦은 태풍과 올해는 심한 강추위로 냉해 피해를 입을까 노심초사했다.

현재 난 분수는 1,000여 분이고, 종류는 주로 명명 품과 산채 품으로 소장하고 있다. 업그레이드를 계속해서 최고 품종인 태극 품과 직접 채집한 희귀종들이 있지만 아직도 최고 상품을 향한 열정은 끝이 없다.

-난 애호가로서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계획인지, 지향하는 포부가 있다면?

▶애란생활을 즐길 수 있는 날까지 할 것이다. 산채활동은 체력단련, 폐활량 증진, 삼림욕과 힐링 등 1석 2조의 이익을 준다. 난을 취미생활로 삼아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고, 즐거운 산행으로 건강을 챙기면서 일생일란을 성취하는 것이 포부다.

‘황화소심’. 김차식 기자
황화소심. 김차식 기자

-난초 관리를 위한 비법이나 난 상인들에게 들러주고 싶은 말?

▶사군자에 속하는 귀한 식물이기에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주기, 시비, 해충방제, 각종 곰팡이와 세균 등으로부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물주기는 3년의 세월이 걸려야 자기 환경에 맞는 물주기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물주기가 어렵다는 말이 된다. 모든 정성을 쏟아 부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여기서도 통하는 것 같다. '기다림의 미학'이란 말도 그냥 생긴 것이 아닐 듯싶다.

코로나19 사태라 난초계만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 2년 전만해도 난초가 금값보다 비쌌다. 난 사업가들은 선량하게 사업을 한다고 생각되겠지만, 그중 소수 약덕상인은 그야말로 '돈의 노예'가 되었다. 배양장(인큐베이터)에서 가온처리하여 1년에 2모작을 하여 판매한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공주대학교 유전자공학과에서 3일 안에 DNA 검사로 진위여부를 가려주는 세상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대구에 난원수는 대략 몇 개 정도 운영?

▶난원수는 대략 15~20개소 정도이다.

-난초 연구가로 애란 입문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난초에 입문하러 오시는 애란인에게 꼭 이 질문을 한다. 취미로 할 것인가 아니면 재테크로 할 것인가? 취미로 할 것이면 산채로 난의 지식을 습득하면서 건강을 챙기는 것으로 하고, 제테크로 할 것이면 주식과 비슷하니까 소자본이라도 투자를 해서 1~3년 길게는 5~10년까지 미래를 보고 계획을 세워서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취미로 하든 제테크로 하든 일류가 되려면 스포츠 선수처럼 즐겨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난초란 무한한 즐거움과 행복감을 주는데 첫째 신아가 발아 될 때 황홀함에 사로잡히고, 둘째 각양각색의 꽃이 개화 될 때, 셋째 배양이 잘되어 촉수가 늘어나서 수익이 창출될 때이다.

팔공산난원에서 난을 관리하는 이재용 씨. 김차식 기자
팔공산난원에서 난을 관리하는 이재용 씨. 김차식 기자

- 난초 연구가로 산채 시 나만의 노하우와 팁을 소개한다면?

▶산채 시 품종을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다. 30년 넘게 애란생활을 해도 아직도 꽃물은 어렵게 느껴진다. 10년이 지나고 30여 년의 경력이 산채 시 나만의 노하우로 자신도 모르게 쌓이게 된 것이 사실인 듯하다. 초보자는 산채 시 일반 춘란 중에서 무늬가 있는 종이 산에 가면 무조건 있으리라 생각하고 간다. 희귀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조급한 마음은 금물이다. 느긋하게 산행을 즐기다 보면 우연히 만나게 된다. 20~30년 전만 해도 산반개체는 산채도 안했는데, 요즈음은 산반개체가 대세이다. 유행이 바뀌는가보다 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산채 시 지나치기 쉬운 개체가 감 중투와 감서와 같은 감 개체, 즉 눈에 잘 안 띄는 감(어둡다) 개체를 선호한다. 이유는 꽃 색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애란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무엇보다 정직과 신의를 지켜주었으면 한다. 제테크를 위해 난초를 구입할 시는 투자금액을 조금 더 추가해도 잎과 뿌리가 건강한 난초를 구입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춘란의 품종 보존, 우수 품종 배양과 난 애호문화의 확산도 기대해 본다. 아름다운 춘란의 주요 품종을 홍보하고 애호인이 쉽게 접근하여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춘란을 취미생활로 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계절별 관리요령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기대해 본다.

절제된 무늬, 화려한 색상 그리고 고고한 아름다운 곡선의 자태를 즐길 수 있는 춘란의 우수성을 감상할 그날이 빨리 오길... 난초의 취미생활이 100세 시대 노인 문제 해결의 열쇠로서 무한한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는 확신도 가져본다. 좋은 취미는 평생친구와도 같다. 이 씨가 일상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난실을 보며 흐믓한 미소를 짓는 잔상이 가슴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