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박상익의 '포토 인문학: 사진으로 세상읽기'
[장서 산책] 박상익의 '포토 인문학: 사진으로 세상읽기'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3.02 1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미지를 사유하는 사진과 인문학의 크로스오버

지은이 박상익은 우석대학교 명예교수. 청주에서 태어났다. 우석대학교에서 서양사를 강의하면서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을 지냈다. 역사·문학·종교의 학제 연구에 관심을 갖고 저술 및 번역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찍은 수만 장의 사진 가운데 선별한 52장의 사진, 그리고 각 사진을 화두 삼아, 역사, 정치, 사회, 종교, 과학, 기술, 독서, 교육, 문학, 철학, 인문학, 영화, 노동, 우정, 고전, 동물, 식물, 어린이 등 우리네 삶 전반을 돌아보는 52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줄무늬의 이중성

1789년 프랑스혁명은 삼색기를 비롯해 다양한 줄무늬를 채택했다. 줄무늬 옷을 입는 것은 혁명 이념을 적극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삼색기가 자유와 독립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삼색기를 모방한 국기가 유럽 각국에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줄무늬에는 상반된 가치가 공존한다. 18세기 말에 사람들이 줄무늬 옷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죄수였다. 프랑스는 특히 죄수들에게 줄무늬 옷을 많이 입혔다. 죄수복의 줄무늬는 감옥의 창살과 밀접한 상징적 관계를 갖는다.

줄무늬는 '보호'의 의미도 있다. 잠잘 때 입는 파자마가 줄무늬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잠잘 때 무방비가 된다. 잠든 동안 악령과 악몽에서 우리를 지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줄무늬 파자마를 입는 것이 아닐까?

횡단보도의 줄무늬는 통행의 어려움을 뜻하지만, 동시에 안전한 통행 가능성을 뜻한다. 통행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보행자를 보호하기도 한다. 줄무늬를 가로세로 엮으면 그물이 된다. 소외 계층에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의 '망(網)'이 '그물망'인 것이 우연이 아니다. 선진사회일수록 정교한 줄무늬가 필요한 이유다.(42~43쪽)

2. 사브리나의 아버지

1995년 시드니 폴락 감독은 빌리 와일더 감독이 1954년에 만든 로맨틱 드라마 '사브리나'를 리메이크했다. 리메이크 작품에는 원작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 추가되었다.

사브리나의 아버지 페어차일드는 부잣집 운전기사다. 그는 딸 사브리나에게 옛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자신이 왜 자가용 운전기사로 취직했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젊은 날 직업 선택에서 고려한 조건은 오직 하나, '독서할 시간적 여유'를 많이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영화에서도 그는 대부분 독서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용주가 살림집으로 내준 별채도 온통 책으로 가득하다. 부잣집 운전기사 일을 하면서 틈만 나면 책을 손에 드는 그의 모습은 무척 낯설고 신기하다. 한국 사회의 통념과 상식으로 보면 지극히 이질적이고 운전기사답지 않은 모습이다. 리메이크 '사브리나'의 특별한 대목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한국 영화에서도 '독서할 시간적 여유'만을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페어차일드 같은 캐릭터를 설정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감, 즉 리얼리티가 뚝 떨어질 것이다. 책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우리네 풍토에서는 대단히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설정일 것이기 때문이다.(72~75쪽)

3. 소드 라인

영국의 하원 의사당은 구조가 특이하다. 여야가 마주 보고 앉게 돼 있다. 의장 앞에 여야가 대립해 앉아 있는 형국이다. 여야 양당 사이에는 두 줄의 빨간색 '소드 라인(Sword Line)'이 그어져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검선(劍線)'이다. 여야 의원은 서로 이 선을 넘지 못한다. 양쪽에 서서 칼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거리인 2.5m 너비라고 한다. 긴 칼을 휘둘러도 상대방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할 수 없도록 간격을 뒀다고 해서 '검선'이다.

영국이 의회정치가 태동한 나라이긴 하나 초기에는 의원들 사이에 폭력 사태가 매우 잦았다. 의원들 가운데 기사 출신이 많아서 의견이 충돌하면 의사당에서 칼부림까지 나곤 했다. 서로 가까이 앉아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 보니 말로 안 되면 주먹과 칼이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싸움이 나더라도 절대 넘어가면 안되는 선, 빨간 줄을 두 개 그어 놓고 그것을 넘지 않기로 한 것이다.(93~94쪽)

4. 이름에 깃든 사연

유럽인이 성(姓) 을 널리 쓰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유대인은 마음대로 성을 쓸 수 없었다. 독일에서는 영주가 유대인에게 돈을 받고 성을 팔았다. 1787년 오스트리아에서는 유대인에게 히브리어 이름을 금하고 독일어 이름을 강제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하지만 꽃이나 보석에서 따온 '좋은 성'에는 그에 상응하는 뇌물이 필요했다.

따라서 유대인 성인 로젠탈(Rosenthal, 장미계곡), 릴리엔탈(Lilienthal, 백합계곡) 등은 우아해 보이지만 유대인 차별이 빚어낸 비극적인 성이다. 그나마 부유한 유대인은 그럴싸한 성이라도 얻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은 키가 크면 랑(Lang), 키가 작으면 클라인(Klein), 머리가 검으면 슈바르츠(Schwarz), 그리고 태어난 요일 등에 따라 존타크(Sonntag, 일요일), 좀머(Sommer, 여름) 같은 성을 얻었다. 독일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가 떠오른다.(216쪽)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