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송경아 '백귀야행'
[장서 산책] 송경아 '백귀야행'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2.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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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밀착할 수도, 현실을 떠날 수도 없는 백귀야행의 세계에서 우리는...

지은이 송경아는 소설가이자 번역가다. 대학에서는 전산학을, 대학원에서는 국문학을 공부했고,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4년 '청소년 가출협회'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백귀야행에는 작가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쓰고 발표했던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1. 나의 우렁총각 이야기

결혼할 마음이 없는 소현은 사촌언니 지영의 권유로 홈쇼핑에서 10개월 할부로 우렁총각을 구입한다. 우렁이는 주인이 나가고 없는 동안에 사람이 되어 활동한다. 사촌언니가 이혼한 날 술에 취한 소현은 우렁총각을 보게 되고, 우렁총각은 소현에게 결혼해달라고 한다. 소현이 결혼할 수 없다고 하자 실망한 우렁총각은 우렁이로 변해 일도 하지 않고 야위어 간다. 소현은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려 우렁이를 팔아버린다.(7~40쪽)

작가는 '우렁각시' 이야기를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돌봄노동의 보살핌이 필요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오히려 여자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돌봄노동만 받고 돌보는 사람은 보지 않는 관계는 비인간적인 관계이고, 현대인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2. 백귀야행

대학원생 미연은 인상된 전세금을 구하지 못해 선배 언니와 한 방을 쓰기로 한다. 이삿짐은 어머니가 와서 챙겨주고 이사는 대학원 남자 후배가 도와준다. 이사를 마친 날 선배와 함께 대학원 등록금과 논문 쓸 걱정을 하며 술을 마신다.(41~69쪽)

백귀야행은 작가가 2000년대 초 대학원에 다닐 때 쓴 글이라고 한다. 소설의 제목은 현실에 밀착할 수도 없고 현실을 떠날 수도 없는 귀신들의 행진을 뜻한다. 대학원은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면서, 생활력은 없고 공부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피소다. 그 위태위태한 구조를 판소리 사설조로 그려내고 있다. 내가 가장 흥미 있게 읽은 소설이다.

3. 히로시마의 아이들

초등학교 3학년 때 사촌오빠에게 강간당한 대학생 희주는 할아버지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왜소한 체구의 성훈과 사귄다. 연애의 마지막 단계인 육체관계에서 실패한 성훈은 울면서 병신이라고 자학한다.(71~104쪽)

원폭의 후유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폭력과 고통의 피해는 단선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피해자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두 번 세 번 되풀이해서 아픔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4. 열다섯, 서른다섯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서른다섯 살 은수는 방광염으로 들린 산부인과에서 조카인 열다섯 살 민정이가 임신 중절 수술을 받고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은수는 민정이를 집으로 데려가 미역국을 끓여주고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다음 날 은수는 언니의 전화를 받고 집나간 민정이를 찾아 나선다.(105~134쪽)

작가는 가족이 용납하지 않는 문제를 안은 청소년에게 자신을 비판하지 않고 받아줄 수 있는 어른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5. 하나를 위한 하루

회사원 경수는 제약회사 연구실에 다니는 형의 도움으로 수미와 결혼한다. 수미가 주차장 사고로 사망한 후 경수의 형은 수미의 유전자 패턴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하나를 경수에게 데려온다. 우주로 떠났던 형이 7년 후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알츠하이머를 완치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뇌조직이 필요하다고 한다. 형에게 꼼짝 못하는 경수는 하나를 위해서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135~169쪽)

많은 사람에게 평생 숙제로 남는 가족 관계를 그린 소설이다. 딸은 다시 만들면 되지만 아버지는 한 사람 뿐이라는 형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경수가 참 답답하게 보였다. 내가 경수라면 하나를 형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6. 고통의 역사

혜선의 딸 희연은 남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정체불명의 질병을 앓는다. 혜선은 희연을 집 안에서만 키운다. 그러다가 남편의 친구인 의사 동우의 도움으로 희연의 송과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뇌수술을 결심한다. 수술 후 희연은 깨어나지 못한다.(171~217쪽)

이 소설을 읽고 모든 부모는 삶의 고통을 겪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능력과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평생 소원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미연의 대학원 선배가 한 말을 옮겨 적는다.

-나는 너처럼 착하고 큰 뜻이 없어 백억이 있으면 그저 이 한 몸 보존하여 커다란 집을 짓고 책이나 들여놓아 도서관을 세우고 그곳 사서 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로다.(5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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