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람꽃에 스미다
봄! 바람꽃에 스미다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2.22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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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은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봄을 찾는 나그네 가슴에 하얀 봄이 포근히 안기는 순간
생명, 그 자체가 그저 경이로울 따름
바람꽃 4형제. 이원선 기자
바람꽃 4형제. 이원선 기자

우수를 갓 지난 대지는 봄기운으로 완연하다. 중국의 어느 선인이 봄을 찾아 구름을 넘어 멀리멀리 갔다가 못 찾은 봄을 집안 우물가 매화나무가지에서 찾았다는 시기가 지금인 것 같다.

바람꽃은 매화 그리고 복수초와 함께 봄 마중의 대표적인 꽃이다. ‘당신만이 볼 수 있어요! 덧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지닌 바람꽃은 지역에 따라 기후에 따라 그 종류도 다양하다. 꿩의 바람꽃, 국화 바람꽃, 들 바람꽃, 홀아비 바람꽃, 외대 바람꽃, 회오리 바람꽃, 숲 바람꽃, 세 바람꽃, 만주 바람꽃, 나도 바람꽃, 너도 바람꽃, 변산 바람꽃 등등 이름도 생소한 바람꽃은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2월 20일(토) 바람꽃의 자생지로 유명한 경주 안강 금곡사 계곡을 찾았다. 성급하단 생각이 없잖아 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이른 봄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산기슭, 시간차를 두고 띄엄띄엄 밀려드는 사람들이 끊임없다.

계곡의 산기슭 곳곳에는 벌써 하얀 봄이 대지를 뚫어 한창이다. 하지만 우수(雨水: 2월 18일)를 전후한 추위가 상당했나보다. “추위에 얼어 누운 것이 많아요! 그 중 힘찬 것이 더러 있습니다. 잘 찾아보세요!” 먼저 왔다가 가는 사람들이 남기는 공통된 안내다. 아닌 게 아니라 초입부터 힘없이 주저앉은 바람꽃이 부지기수다. 겨울의 시샘이 이른 봄을 질투, 추위가 잠시 주춤하는 작은 틈바구니를 빌어서 봄이 찾아들었다가 호되게 당한 현장이다.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서리 맞은 고구마 줄기처럼 널브러진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축축 늘어진 바람꽃과는 달리 ‘독야청청’ 홀로 씩씩한 바람꽃도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봄을 찾는 나그네 가슴에 하얀 봄이 포근히 안기는 순간이다.

다정하게 마주보고 있는 바람꽃. 이원선 기자
다정하게 마주보고 있는 바람꽃. 이원선 기자

그 와중에 특별한 새싹 하나가 눈길을 이끈다. 가만히 살펴보니 ‘인내’란 꽃말을 지닌 홍노루귀의 어린 새싹이다. 보일 듯 말 듯 작기만 한 새싹이지만 꽃봉오리를 머리에 인 모습이 숭고한 중에 대단타. 그 모습이 흡사 까시래기(가시랭이의 방언으로 초목의 가시 부스러기처럼 작다는 뜻) 같아 찾아낸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노루귀는 꽃잎 모양이 노루귀를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징은 꽃대를 뒤덮을 듯 뽀송뽀송하게 박힌 흰털이다. 사진에서 보듯 비록 어린 새싹이지만 연분홍빛 꽃대를 비롯하여 하얀 솜털까지 갖출 것은 두루두루 다 갖추었다. 봄의 한자리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내일이나 늦어도 모래쯤이면 꽃봉오리를 활짝 터트려 뭇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 아래로 새우등을 연상케 하는 듯 빨갛게 꼬부라진 새싹 하나가 더 있다. 가을 들판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갓 때어난 생쥐의 새끼를 보는 듯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저렇게 작은 생명조차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삶에 애착을 지녀 최선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보잘 것 없는 삶은 없는가 보다. 산기슭이란 모진 환경을 탓하지도 비관도 않고 머리를 내민 생명 그 자체가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분홍노루귀의 어린 새싹과 이름 모를 새싹의 봄 나들이. 이원선 기자
분홍노루귀의 어린 새싹과 이름 모를 새싹의 봄 나들이. 이원선 기자

이제 봄의 계절로 완연하게 접어 드는가 보다. 하늘은 맑고 바람결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 풀 기세를 죽였다. 중천으로 치닫는 태양이 계곡 가득히 봄 볕을 팽팽하게 밀어 넣고 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줄(啐)과 탁(啄)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랄까? 때를 맞추어 땅속에서 작은 반란이 일어난 것 같다. 기지개를 펴고 뿌리를 내리는 등 새싹들의 태동이 케터필더가 돌아가는 듯 계곡 안에 자글자글하다.

일요일, 대구의 낮 최고 기온이 섭씨 22도(2월 중 역대 4번째로 높은 기온이란다)까지 오른다는 기상청 예보다. 겨울인 듯 봄인 듯 계절이 수상하다. 3월 5일이 개구리가 잠을 깬다는 경칩(驚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