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 배리어 프리] (4) 문화향유권
[함께 사는 세상, 배리어 프리] (4) 문화향유권
  • 김종광 기자
  • 승인 2021.02.1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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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편의 제공의 범위가 불분명한 현실
가장 기본적인 문턱 제거에 집중해야

'문화향유권'의 사전적 의미는 ‘누리어 가지다’라는 뜻이다. 이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에 포함되는 것으로 누구나 차별이나 구분 없이 자유로이 문화예술을 즐기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24조 2항과 제4조 1항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24조(문화·예술활동의 차별금지) ②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및 문화·예술사업자는 장애인이 문화·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 제4조(차별행위) ①장애인을 장애를 사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면 안 된다.

시중 영화관에는 여러 개의 상영관이 있지만 1개관의 좌석수가 평균 100여개 정도로 휠체어 장애인 좌석은 2~3개 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한 사전에 연락을 하면 직원이 엘리베이터까지 나와서 좌석까지 안내한다고 하지만 돌아갈 때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장애인에게는 또 다른 장벽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장애 상태에 따라 영화 감상을 포기하는 경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더구나 위치가 맨 앞자리로 지정되어 스크린과 거리가 가까워 목이 아프게 감상해야 하는 어려움도 감수해야 하는 실체를 보면 차별금지라는 것이 허울 좋은 겉치레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장애인에게 문화 여가활동은 정서함양, 신체적 발달, 사회적 성격 등 중요한 부분으로 개인 사생활을 감안한다면 비중이 크다고 봐야한다.

위 법률에서 보듯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함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현실은 다양한 장벽으로 막고 있어 이동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게 사실이고 법이 무색할 정도로 원망스럽다.

스크린에서 첫 번째줄 2곳만 휠체어 좌석으로 지정되어 있어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영화감상은 목과 시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상당항 우려가 된다.    김종광 기자
스크린에서 첫 번째줄 2곳만 휠체어 좌석으로 지정되어 있어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영화감상은 목과 시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상당한 우려가 된다. 김종광 기자
스크린 앞 첫 번째 좌석 2곳 표시된 좌석 배치도      김종광   기자
스크린 앞 첫 번째 좌석 2곳 표시된 좌석 배치도 김종광 기자

인터넷 예매가 어려운 오페라와 뮤지컬,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공연장 놀이시설 등이 문제지만 말로만 4차 산업혁명을 주장하지 말고 문화예술계가 어떻게 기술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과 반성을 겸해 빠른 실천만이 혁신으로 가는 길이고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예술계에서의 장애인 인식은 변함없이 고지식한 게 전통인지 모르겠으나 온라인예매의 경우 대다수의 문화공연은 장애인 관람석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좌석표시가 있다 해도 선택 예매가 안 되니 이게 차별금지의 위반 아닌가? 예매를 하는데 단 한번 신청으로 처리 되어야 평등이다. 마지못해 하는 모양새는 오히려 분노를 유발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 2019년 5월 시각장애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소속 혜광브라인드 오캐스트라 공연을 위해 인천시 산하 기관인 인천문화예술회관에 공연장소 대관신청에서 2번이나 이유 없이 탈락했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 되자 예술회관측이 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 공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비장애인에 대한 역차별" 이라고 발언했다. 이 사건은 장애인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는데 매년 하던 공연이었는데 무슨 이유로 탈락한건지?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충분히 의심된다. 

또한 에버랜드는 장애인을 전용 출입구를 통해 입장하도록 ‘우선탑승제’를 운영해오다 지난해 5월 18일자로 ‘장애인 탑승예약제’로 변경했다는 언론 보도에 장애인단체가 강력한 항의를 했다는 내용도 결국은 차별로 인한 문제로 연결된다.

위 두 건의 사안에 공통점을 추측해 본다면 단순히 ‘번거롭고 귀찮으니까 오지 말라‘는 속내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비장애인들의 굳어져 있는 생각이 고질적인 문제가 되는 표본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시각장애인이 갖는 그림관람은 오래전부터 불가능하다고 굳어진 고정관념으로 미술관에 가야만 명화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편견을 깨고 만져보는 그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2016년에 기획이 되었다. 세계적인 명화를 보는 것이 어려웠지만 현실은 ‘촉각명화‘ 라는 변화속에 만족한 명화감상을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그림을 손으로 만져서 감상할 수 있도록 촉감 재료를 사용하여 입체로 제작한 미술작품이다.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 김미경. 이하 실로암장복)은 ‘2020년부터는 촉각명화 온라인 전시해설 콘텐츠 ’명화톡톡‘을 영상물로 제작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배리어 프리 전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장애인들의 많은 관심이 모아지길 기대한다.

이중섭 화가의 '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 촉각재료를 사용해 조형물로 만들어 시각장애인의 손끝에서 명화를 감상하는 장벽이 제거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제공
이중섭 화가의 '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 촉각재료를 사용해 조형물로 만들어 시각장애인의 손끝에서 명화를 감상하는 장벽이 제거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제공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모나리자상을 위와 같은 촉각재료로 만들어 시각장애인들께 감동과 기쁨을 준 쾌거로 나타났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제공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모나리자상을 위와 같은 촉각재료로 만들어 시각장애인들께 감동과 기쁨을 준 쾌거로 나타났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제공

"미술 작품을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이 새롭고 설레는 것 같다", "직접 작품을 만질 수 있어 행복했다", "한국화를 많이 접해 보지 못했는데 주제가 신선했다" 등 시각장애인들의 반응은 기쁨과 희열로 넘쳐났다. 

실로암장복에서는 지난해 10월13일~11월12일까지 자체 갤러리에서 촉각명화전 개최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선두주자 복지관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촉각사업을 하고 있어 희망을 주고 있다. 비장애인들의 반응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작품의 질이 좋고 여기에만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의견들이다. 그렇지만 여전한 대중교통 제약, 앱과 홈페이지 접근성, 키오스크 접근성 등 장벽들이 버티고 있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이하은 사회복지사의 "장벽없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식개선이 중요하고 특별한 배려라는 시선이 아닌 누구나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인식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는 소중한 한 마디가 가장 시급한 현실임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지난 1월말 지체장애 1급 장애인(63)과 익명을 조건으로 장애인 정책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전하겠다고 하더니 이외로 간단한 대답을 했다. "정책에 관한 것은 어떠한 것도 논할 가치가 없고 또 건의를 한다 해도 오래전부터 주장했던 것이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론 역시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결론은 불평등한 현실에서 생을 마칠 수밖에 없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훔쳐본 기분에 위로의 말을 하고 싶지만 오히려 모욕감이 될 것 같아 인사도 하지 못했다. 살아있는 생물 같은 진솔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의 1인으로 무척이나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누가 응어리를 풀어 줄 것인가? 문화를 향유할 권리는 장애와 비장애로 구분되어서는 안 된다. 관련시설의 접근성은 물론 해당시설에서 제공하는 정보 선택에도 장애로 인해 제한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모든 국민은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중증 장애인들의 공통적인 시급한 문제는 교통이다. 이동권과 접근성이 어디를 가도 장벽으로 막혀있으니 근본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인프라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중증장애인에 대한 문화향유권 및 기본권 기회는 회복할 수 없는 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 참여가 저조한 이유도 교통약자 이동편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는 특수성을 배려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헌법에 보장된 모든 기본권을 누릴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문턱을 없애지 않고서는 어떠한 전진도 할 수가 없음에도 새로운 제도가 해결책 인양 임시방편으로 달래는 얼굴 두꺼운 세상이다. 어설픈 겉치레 보다 생각을 바꾸자는 구호로 호소하는 것이 미적거리는 정책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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