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서 하는 일, 당신도 좋다면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당신도 좋다면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1.11.15 10:00
  • 댓글 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봉무공원 지킴이 차승운 씨
아름다운 선행의 그 흔적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은 공자의 말씀이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는 단산지丹山池를 품은 봉무공원이 있다. 맑은 물과 잡목이 어우러진 푸른 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음은 이 동네 최고의 선물이자 특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사시사철 산책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일상에 찌든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기 충분한 치유의 공간이다. 자연이 제공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동안 체력 단련은 덤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2017년도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봉무공원에 발 도장 찍는 일이 주요 일과가 되었다. 건강도 챙기면서 퇴직한 남편의 무료함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효과다. 운동이 필수인 현대인들에게 걷기가 대세임을 증명하듯이 산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불청객인 코로나19로 생활에 제약이 따르는 요즘 산이 돌파구 역할을 한다. 마스크를 눌러쓰고 걷는 게 답답하지만 집을 벗어날 수 있는 것만도 어딘가. 스쳐가는 얼굴들에서 만족스런 표정이 읽힌다. 연령대가 다양하나 초로기에 접어든 분들이 대부분이다. 휴일이라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구절송까지 올라갈 심산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고 하던가. 마침내 봉무공원의 숨은 의인과 마주쳤다. 호미로 바닥의 흙을 긁어서 등산로를 다듬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사실 쓰레기를 줍는 장면은 여러 차례 봐온 터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 급급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에 말이 없는 남편이 갑자기 “수고하십니다.” 하고 말꼬를 텄다. “네” 외마디 말이 돌아왔다. 나는 기회다 싶어서 그분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시게 되었으며, 어느 기관 소속이냐는 등 실례를 무릅쓰고 말을 걸었다. 보수를 받는 공원관리인으로 짐작했기 때문이다. 꽂고 있던 이어폰을 뽑더니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답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 채 호미질에만 열중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지난해부터다. 등에는 배낭을 메고 한 손엔 비닐봉투를, 다른 한 손엔 집게를 든 남자를 산길에서 봤다. 이 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데 눈동자가 부지런히 뭔가를 찾는 듯 했다. 숲이나 등산로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서 봉투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실 간간이 흘러있는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긴 했다. 휴지조각은 물론이고 마시고 버린 생수병이나 심지어 맥주 캔도 더러 발견되었다. 코로나 시대를 증명하듯 마스크도 종종 보인다. 공공장소에 ‘누가 저런 걸 버리고 갔을까’ 군소리만 중얼거렸을 뿐 주울 생각은 못 했다. 솔직히 나만 안 버리면 되는 일이라 치부한 것이다. 그런데 젊은 남자가 궂은일을 하는 장면은 나를 부끄럽게 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온 다음 날이면 빗물이 휩쓸고 간 구덩이를 돌멩이로 메우고 쓰러진 나뭇가지를 제거해 놓는다. 분명 쓰레기를 줍는 사람과 동일인일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복 받을 사람이네', 하면서 감사의 마음만 가질 뿐이었다. 얼마 전부터 체육공원에 없던 아령이 수북해졌다. 필요로 하는 이들이 사용하도록 그분이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말은 새삼 더 놀랄 일도 아니다. 그토록 궁금히 여기던 분을 만나 짧은 대화로 궁금증을 해소하게 되었다. 봉무공원의 지킴이, 숨은 의인 차승운(봉무동 54세)씨는 동구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출근하기 전에 봉무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봉사와 수고를 실천하고 있다. 좋아서 하는 일에 대가는 보람으로 충분하다고, 무언으로 보여주는 그의 눈빛이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축구에서 골을 넣는 사람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도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독불장군은 없다지 않던가. 골로 성공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없이는 어려운 일일게다. 하지만 세상 인심은 또 그렇지 않다. 도움을 준 사람은 이면에 가려져 있기 마련이다. 숨은 조력자는 쉽게 잊히고 골을 넣은 선수만 부각되거나 영웅시되기 일쑤다. 골인의 결정적인 찬스는 도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말없이 선행을 솔선수범하는 한 명의 의로운 사람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쾌적하고 안전한 산행을 즐긴다. 쉬운 일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오늘 발걸음이 가벼웠다면 그분 덕분이리라. 내가 만난 차승운 씨야말로 이 시대가 바라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

 

사진 일체, 차승운 씨로부터 제공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