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다례원 김정숙원장, 다도 & 캘리그라프로 행복한 삶을 일구다
예정다례원 김정숙원장, 다도 & 캘리그라프로 행복한 삶을 일구다
  • 정영숙 기자
  • 승인 2021.02.18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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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차 다례 법을 공부
굴곡에 따라 붓이 가는 길 없는 길
특별지도를 요청하면 보람으로 알고 흔쾌히 나선다
김정숙 원장이 캘리를 선보이고 있다. 정영숙 기자
김정숙 원장이 캘리그라프를 선보이고 있다. 정영숙 기자

우리나라 전통 차는 은근하면서도 평안함이 있다. 외국 차에 비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음전한 가운데 고요함이 내포되어 있다. 심신을 다스리며 건강에도 그만이며 찻자리에서의 절제된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화합하는 차원을 연출하며 높은 교류의 장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런 차향에 취해 사는 사람이 있다.

차인이면서 천아트와 캘리를 가미한 개인전을 3차례나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경산예정다례원 김정숙원장(56. 이하 김원장)을 만났다.

아직까지도 산지를 벗어나지 못한 경산시 용성 땅, 옛날 경산군 용성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대구시와 인접해 있지만 ‘첩첩산중’이란 단어가 걸 맞는 고장이다. 그런 두메산골에서 3남 1녀 중 고명딸로 태어난 김원장은 아들 선호사상이 강했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학창시절 그림그리기, 시화 만화 등 예능분야와 손재주가 남달랐던 김원장은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다시피 하였다. 그러다보니 그녀는 장래희망으로 미대진학을 꿈꾼다. 하지만 그 소박한 꿈은 산골 소녀의 작은 희망에 불과 했다. 집안 사정 등등으로 인해 꿈을 접은 그녀는 현실과의 타협으로 여상으로 진학한다. 이후 졸업과 동시에 취업전선으로 나간 그녀는 멀리 대구에서 직장을 잡는다. 그러자 문제는 출퇴근이다. 출퇴근에 힘들어하는 딸을 안쓰럽게 여긴 부모님의 권유로 김원장은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회사를 옮기고 출퇴근은 아버지의 오토바이가 발이 되어 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화장품 업계에 뛰어들었다. 여기서 김원장의 숨은 실력이 10분 발휘된다. 그 결과는 곧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타고난 친화력으로 하루 일천만원이란 매출을 올려 전국 1위라는 신화를 창조한 김원장은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그로부터 1년여 만에 파격적으로 국장으로 진급, 억대연봉을 자랑하며 5개 지부를 거느리며 승승장구 한다. 하지만 호사다마랄까? 뜻하지 않은 도난사고로 인해 그 일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런 김원장에게 뜻밖의 인연이 찾아든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일까? 당시 체신공무원이었던 남편회사의 송년 부부모임에서 김원장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있던 상사의 스카우트 제의로 우체국 마케팅실에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도 김원장은 탁월한 영업 전략으로 한 달에 200~300건의 보험을 계약,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한사람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사돈팔촌까지 내 고객이 되었으며 나아가 아파트 한 라인 전부를 고객으로 학보 했다는 김원장의 영업 담은 현재 신화처럼 남은 기록이 되었다. 화려한 경력만큼 보험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명성이 높아지자 여러 업체에서 최고 대우의 스카우트 제의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김원장은 경산수정라이온스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마음먹은 바는 기필코 해내고야마는 삶은 활발한 사회활동이 이어진다.

김정숙 원장 작 '정답게 가는 길'. 정영숙 기자
김정숙 원장 작 '정답게 가는 길'. 정영숙 기자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물욕으로 가득 찬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후 자연스럽게 모든 영업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누리고 있는 화려한 삶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러자 지금껏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짐 가운데 일부까지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고 과거를 돌아다볼 수 있는 여유가 주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한가한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마 김원장에게는 그 마저도 호사였던 모양이다.

이때 그녀에게 숙명처럼 다가온 것이 있었으니 한국의 전통차다. 차 문화에 녹아든 김원장이 차와 더불어 명상으로 심신을 다스리자 점차 마음이 차분해지고 지금껏 보이지 않던 다른 세계가 다가오더란다. 상하좌우가 보이고 가정이 눈에 들어오면서 검소함이 함께 따라오더란다. 게다가 돈을 잘 써야 돈을 모은다는 지혜도 함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차의 기원을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지만 가라국 김수로왕이 차를 마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2천년을 족히 되어 보인다. 이후에도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 유배지에서 초의선사와 함께 차를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차는 예와 도다. 그래서 차를 마신다고 하지 않고 다도(茶道)라 부른다.

김원장이 처음 전통차를 접한 계기는 지인들과 청도 각북에 있는 전통 찻집에서 차를 마시게 되면서부터라고 했다. 동적인 자신과는 달리 다소곳하고 정적인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녹아들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전봇대에 붙여진 다례원을 아름아름 물은 끝에 무작정 찾아가 다도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럼 김원장의 정성이 통했을까? 허락을 득한 김원장의 배움의 길은 경산에서 청도로 오가는 길이 4여 년간이나 이어진다. 그것도 부족한 듯하여 2003년에는 김득중 선생으로부터 전통예절교육을 공부했고, 그해 우리차 문화연합과정 전반을 수료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은 목이 마르고 무언가 허전한 듯 채우지 못한 갈증이 남아 결국 본격적인 차 공부를 위해 2005년에 원광대에 입학하기에 이른다. 이후 2009년 한국차인연합회에 들어가 지장스님을 만나 차 명상 지도자과정을 7년여 동안 공부하고 부산의 숙우회라는 선차도 만나게 된다. 다시 다도대학 최고 과정인 정서과정을 수료하고, 2010년에는 케이스인문학 문사철예다악이라는 6개 분야를 2년에 걸쳐 공부한다.

하지만 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김원장의 차와 예절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는 계속적으로 이어졌고 2015년 티소믈리에과정 1급 자격증을 취득하며 절정에 달한다. 이후 한국티아카데미를 창립, 운영진으로 참여하면서 경산을 비롯한 청도 포항 상주 구미 등 도내 5곳에 티소물리에 과정을 운영하며 금년에는 협회장이라는 중책도 맡는다.

그러던 중 다도를 행하면서 순백의 다건(茶巾:차 수건)을 예쁘게 꾸며 보고자 하는 의욕이 불현 듯 생겨 천을 이용한 천아트와 전통 문인화를 공부하게 된다. 김원장은 다건에 그림을 그려 넣는 동안 마음의 평화와 고요가 기쁨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그 배움의 연속에서 캘리그라피와 새로운 장르를 추구하고자하는 고민이 김원장을 자연스럽게 서예원으로 이끈다. 배움의 바다에 빠지고 보면 시간을 잊고 나를 잊는 것은 예사다. 어느 순간 밤을 새워 붓을 잡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깜짝 놀랄 때도 적지 않았다며 과거를 회상하는 김원장, 그럴 때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며 수줍은 듯 미소를 띤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찻잔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김정숙원장. 정영숙 기자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찻잔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김정숙 원장. 정영숙 기자

남쪽으로 향한 작업장, 따사로운 햇살이 머물고 있는 창가, 차향과 함께 묵향에 젖어 찻잔을 옆에 두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김원장은 참 아름다운 차인이다. 차 선생을 하려고 공부한 것이 아니라 차가 좋아 공부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차 선생이 되었으며, 차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며 삶 자체가 힐링이 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이다. 이어 김원장은 “캘리그라피는 격식이 없으면서도 격식이 있는 듯 마음이 움직이는 굴곡에 따라 붓이 가는 길 없는 듯 또 길이었습니다. 문인화에 심취하면서 찻자리와 자연의 아름다운 정취를 그려 내고자 했습니다.”고 말한 뒤 환하게 미소 짓는다.

작품이 함께하는 찻자리에서 정겨움까지 더하니 주위사람들의 호응이 자연 뒤따르고 그럴 때면 김원장은 말에 박차를 가하는 듯 창작활동에 빠져드는 자신을 본다고 한다. 나아가 이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느냐며 은근슬쩍 권해온다. 자신이 없다는 말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김원장은 그간 여러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입상하는 영광을 얻는다. 그 결과 현재 캘리그라피 초대작가가 되고 지도자 자격은 특별 상여금인 듯 덤으로 따라오더란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지금처럼 붓을 들고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라며 꿈은 의외로 소박하단다. 다도를 접하면서 삶과 생활이 달라졌다는 김원장이다. 찻자리에서의 격식이 있는 분위기, 문인화와 캘리그라피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흐름이 작품으로 완성되어가고 있음에 또 다른 인생의 참된 가치를 느낀다는 김원장은 지금도 회원들에게 천아트와 그림공부를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배운 만큼 사회에 베풀 때라며 아동센터 복지관등 지역의 봉사단체에서 특별지도를 요청하면 보람으로 알고 흔쾌히 나선단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봄소식 때문인가? 비스듬하게 스미는 농익은 유자 빛 겨울 볕이 눈이 아리도록 따사롭다. 한쪽 벽을 치장한 천아트에 새겨진 캘리 작품이 햇살을 머금어 날아갈 듯 가볍다. 가만히 보니 작품 하나하나가 보일 듯 말 듯 차분하면서도 절제된 가운데 은은한 것이 미소를 띤 김원장을 닮았다. 금세 달인 찻잔에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