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소통의 기술
[건강 칼럼] 소통의 기술
  • 시니어每日
  • 승인 2021.02.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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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는 말을 참 많이 듣습니다, 저는 이 말에다가 ‘지갑 열 때 귀도 같이 열어라’고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말은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얻어지지만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배우고자 하는 자세이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 하는 것이며, 어찌 보면 말하는 것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소통의 기술이기도 합니다.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이나 약한 사람들과 소통을 할 때 자칫하면 내가 거만해집니다. 나를 높이려고 하고 내가 많이 알고 내가 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집니다. 그런 생각들로 인해 입이 근질거리고 머릿속 생각 회로를 한 번 더 돌려보지 않고 마음에서 바로 입으로 연결되어 버립니다. 이런 일은 매우 자주 하는 실수죠. 그래서 “라떼는 말이지....”로 시작하는 흘러간 옛노래가 되고 '비 내리는 흑백영화'가 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야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얻는 것과 같지요. 어릴 적 개울가에서 버들피리 잡던 기억을 해 봅니다. 버들피리가 물가 풀 속으로 몸을 숨겼는데 그 놈을 잡겠다고 성급하게 발로 물장구를 치고 요란을 떨어 오히려 흙탕물이 일고 바윗돌이 흔들려 버들피리는 사라지고 아쉬움만 남았던 기억이 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겠다고 화려한 입담과 매끄러운 발음으로 많은 미사여구를 앞세우고 조각난 인문학적 소견까지 동원하여 내가 먼저 말을 해대면, 그 말이 흙탕물이 되어 그 사람 마음은 더 숨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얻기는커녕 영영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 저는 연탄불을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 왔던 적이 많았습니다. 당시 연탄불은 많은 삶과의 소통이었으니까요. 어머니가 긴 시간 외출이라도 하실 일이 있으면 몇 번이나 당부하던 말씀이 “연탄불 꺼뜨리지 말아라”였습니다. 아궁이의 불문을 조절하는 기술은 매우 절묘한 테크닉이어서 어린 제가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탄불은 여지없이 하얗게 다 타버리거나 혹은 시커멓게 죽어버리기 일쑤였지요. 어머니가 외출 후 돌아오시면 늘 먼저 하시던 일이 연탄 아궁이 살필 정도로 소중한 것이 연탄 불씨였지요. 어쩌다 하얗게 다 타버린 연탄 앞에서 하얗게 다 타버린 마음으로 서 계신 어머니를 보고 얼마나 제 마음이 아팠던지... 연탄불이 꺼지면 세상과 소통도 깜깜해 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꺼진 연탄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활할 잘 타고 있는 다른 연탄불이 필요하단다”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삶과의 소통을 잘 가르치시려고 했던 말씀을 그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연탄은 작은 불에 쉽게 붙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어머니는 ‘어설픈 흉내로는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뜨거운 마음이어야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려 했던 것은 아닐까, 혹은 이웃에게 불이 잘 붙은 연탄 한 장을 얻는다는 것은 그들과 ‘아주 뜨겁게 소통한 것’임을 가르치시려고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연탄불 구멍을 서로 잘 맞추어 소통하려고 매운 눈물을 자주 흘려 봐야 겨우 인생을 조금 배웠다고 할 수 있었겠지요. 그렇게 소통을 배웠지요.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귀를 열어야 합니다. ‘경청’을 해야 합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것은 참 어려운 소통의 기술입니다. 그냥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귀담아 들어주려면 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려줘야 합니다. 상대방은 내가 그 사람 말을 그냥 건성으로 듣고 있는지 경청을 하고 있는지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까지 알고 싶어하는 자세로 경청을 한다면 그 반응은 많은 것으로부터 나타납니다. 표정이 변화되고 동작이 달라지며 느낌이 같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니까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소통하려고 하면 이때는 꼭 ‘공감’이 필요합니다. 이 공감은 ‘같이 느끼는’ 소통의 기법입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힘들어 하며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감정의 교류가 된다면 ‘공감’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뜨거운 연탄불이 옮겨 가듯이 소통하는 것이 공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감은 어설픈 ‘동조’나 ‘동정’ 같은 것과는 다릅니다. 딱한 처지라고 동정을 하거나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겠다’라고 동조를 한다면 그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그냥 잡담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공감을 가지고 귀담아 들어 주는 경청은 얼핏 쉬운 일 같지만 매우 어려운 기술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과 통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노력입니다.

소통을 위해 귀담아 들을 때 ‘수용’도 매우 필요한 기술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아예 틀린 생각이라 속단하고 그 사람의 생각을 자꾸 바꾸려고 든다면 수용이 아닙니다. 수용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수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아들이면 그도 받아들일 겁니다. 받아들일 때 서로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반영’도 중요한 소통의 기술입니다. 반영은 그의 생각에 내가 반응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생각을 이해 하고자 한다면 그의 생각대로 내 마음을 움직여 보는 것이 바로 반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반응 하지 않고 나에게 반응 하라고 강요 한다면 소통의 마음은 닫히고 서로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에 내가 물드는 것이 바로 반영이 아닐까요.

소통을 하려면 경청을 하면서 마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해석’이라는 기술도 필요 합니다. 나타내는 말과 속마음이 너무 다를 때, 그걸 그 사람이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 그것을 일깨워 주고 스스로 알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술을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석은 매우 적극적인 소통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해석이라는 기법은 아무렇게나 사용 해 버리면 그 능력은 빛을 잃습니다. 우선 그 사람이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되었을 때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너무 성급하게 너무 자주 너무 쉽게 해석을 해 버린다면 그것은 간섭이 되고 잘난 척이 되고 상대방의 마음에 가 닿지 못합니다. 안하느니만 못하지요.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준비가 되었을 때 사용 되는 적절한 해석은 그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고 궁금증이 풀리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나이테를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성장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소통을 위한 기술들로 경청, 공감, 반영, 해석 등을 말씀드렸지만 이 외에도 많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들은 우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과 인정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배려와 존중과 인정이 바탕이 되어 있다면 소통은 대단한 기술을 사용 하지 않아도 잘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 때 제일 중요한 기술은 아마 ‘사랑’일 것입니다.

곽호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곽호순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