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공백 거뜬히, 국악 가수 금자란
40년 공백 거뜬히, 국악 가수 금자란
  • 권오섭 기자
  • 승인 2021.02.08 08: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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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가요계 입문, 40년 공백 거쳐 2019년 본격 활동
어우동아, 고향 의성아, 삼천리금수강산으로 인기몰이
노래, 고전 무용, 장구 등 전통 트롯 전달에 앞장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를 선사하고 있다. 금자란 씨 제공
금자란 씨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를 선사하고 있다. 금자란 씨 제공

반 옥타브(Octave) 높은 소리, 민요를 특별히 배운 경력이 없는 국악 스타일의 노래를 꾀꼬리같이 고운 목소리로 부르는 전업주부 출신 가수가 등장했다.

“하늘이여 하늘이시여 무심한 하늘이시여 일편단심 님을 향한 이 사랑을 굽어 살펴주소서~”

“금성산 산허리를 휘감는 비단 운무야 청학산 왜가리들의 사랑춤이 정겨웁구나~ 나 태어나고 자란 곳, 의와 예의 고향 의성아“

‘어우동아’ ‘고향 의성아’ ‘삼천리금수강산’(작사·작곡 배원호)으로 40년 공백을 딛고 지난 2019년 가요계에 발을 내딛으며 음악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자랑스러운 대구 국악가수 금자란(錦紫蘭) 씨.

“노래, 고전 무용, 장구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꾸밈없는 모습으로 보여드리며, 팬들에게 전통 트롯을 전달하여 힐링이 되는 음악을 한 평생 이어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기 전까지 TV, 라디오 등 방송출연과 행사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요즘에는 행사와 출연이 줄어 정기적으로 녹음하여 유튜브에 노래 업로드로 팬(fan)들과 만나고 있다.

◆이점란으로 살아온 60년

“노래가 제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1979년 20대 초반, 지인의 추천으로 오아시스 레코드사 전속신인가수 선발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합격 후 진남성 작곡가의 ‘70리 나루터' 노래를 받아 연습하던 중 친정아버지의 반대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았습니다.“

경북 의성군 안평면 삼춘리(중솔티)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소녀시절부터 노래 실력이 남달랐다. 5~6세 때에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바람 몰아친 거친 세월을 말없이 살아온 귀국의 왕자~’로 시작되는 영친왕과 장희빈, 능수버들, 앞 강물, 직녀성 등을 불러 동네 어르신들의 남다른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버지가 밭에서 일할 때 들으시던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따라 불렀다고 한다.

“어릴 때는 노래를 잘 불러 보려는 마음에 박자와 음정을 맞추려고 나름의 노력은 했지만, 무엇이 틀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며 “부모님께서 노래를 좋아하는 예쁜 딸을 위해 비싼 미니 전축을 사주어 마음껏 즐겨 들었다”고 고마움을 담아 당시를 회상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독창대회에 출전하고 학교 행사에서는 동요를 불렀다. 어릴 때부터 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학창시절 많은 행사에 참가한 그의 인생은 노래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직장생활을 하던 20대 초반 오아시스레코드사가 방송사와 손잡고 지역을 순회하며 전속가수를 선발했다. 그의 평소 노래실력을 알고 지내던 주변의 권유로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입상하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훈아의 ‘두 줄기 눈물’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진남성의 ‘70리 나루터’로 신곡을 준비하던 중 그는 아버지의 반대와 가정형편으로 1여 년의 짧은 가수생활을 접었다.

가정을 이루면서 살림과 자녀 교육 등 전업주부로 생활하며 틈틈이 동네 경로당이나 요양원 등에 노래봉사로 이루지 못한 가수의 꿈을 달랬다.

고향 의성아(사진 왼쪽)와 어우동아 방송 출연 의상. 금자란 씨 제공
고향 의성아(왼쪽)와 어우동아 방송 출연 의상. 금자란 씨 제공

◆60대 금자란(錦紫蘭)으로 꽃피다

“요양원 노래봉사를 통해 점점 큰 무대공연에 서고, 출연이 잦아지면서 주변의 조언과 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생활이 안정된 후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버팀목 삼아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귀하고 애절한 사연을 담은 꽃 ‘금자란(錦紫蘭)’이란 예명으로 지난 2019년 배원호 작사 작곡의 ‘어우동아’ ‘고향 의성아’ ‘삼천리금수강산’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금 씨가 국악 트롯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니 주변의 관심과 성원이 쏟아졌다. 데뷔 이후 TV와 라디오 등 방송출연과 각종 행사, 경로잔치, 양로원 봉사 등의 일정으로 스케줄이 꽉 찼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모든 행사가 중단되고 집합금지조치로 팬들과 직접 만날 수 없어 갑갑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다. 지금은 유튜브에 고전 트롯과 전통 트롯을 정기적으로 녹음하여 업로드를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금 씨는 항상 주어진 일에 감사한 마음과 적극적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자세, 겸손함과 긍정적인 마인드와 미소로 모든 분들과 진실하게 만나겠다고 한다.

그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요양원 봉사활동과 세이브더칠드런 후원, 향우회 활동 등을 이어가고 있다.

금 씨는 “20세 때는 무작정 노래가 좋고 어린 마음에 세상모르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노래가 인생이고 노래를 듣고 힐링이 된다는 팬들의 댓글을 보면서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며 “건강을 유지하며 전통 트롯을 부르고 국악, 무용, 장구 등과 함께 인생을 즐기며, 작은 것에 감사함과 항상 배우고 봉사하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겠다‘며 국악가수로써 면모를 뽐냈다.

금 씨는 지난 2014년 대구·경북 미즈모델 선발대회 ‘미’ 입상, 2017년 대구 달서가요제 ‘인기상’, 데뷔 후에는 스타 예술상 ‘신인 가수상’을 수상했다.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관객들에게 100% 오감만족을 주는 금 씨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영원한 청춘 시니어! 금자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