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에세이 9] 보티첼리의 ‘베툴리아로 돌아오는 유디트’
[성화에세이 9] 보티첼리의 ‘베툴리아로 돌아오는 유디트’
  • 이동백 기자
  • 승인 2021.02.06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472. 유화.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1472. 유화.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그리고 침상으로 다가가 그의 머리털을 잡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오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하고 말한 다음, 힘을 다하여 그의 목덜미를 두 번 내리쳐서 머리를 잘라내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몸뚱이를 침상에서 굴려 버리고, 닫집을 기둥에서 뽑아 내렸다. 잠시 뒤에 유딧은 밖으로 나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기 시녀에게 넘겼다. 여종은 그것을 자기의 음식 자루에 집어넣었다. 유딧이 배툴리아로 돌아가다. 그 두 사람은 기도하러 다닐 때처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진영을 가로지른 다음에 그곳의 골짜기를 돌아서 배툴리아산으로 올라가 마침내 그곳 성문에 다다랐다.”(유딧기 13장 7~10절)

구약 외경의 유딧서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앗수르(앗시리아)의 홀로페르네스가 베툴리아를 침공하여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을 즈음에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목을 베어 베툴리아를 구한다.

지금 유디트는 베어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수습하여 현장을 급히 떠나고 있다. 치마폭을 여미고 성큼 내딛는 여종의 발길, 미처 신발을 챙겨 신지 못한 맨발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 손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쥔 유디트의 자세는 개선장군처럼 거침이 없다. 특히 칼을 든 손을 보라. 싸늘한 의지와 섬뜩한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나 늘씬한 몸매에 갸름한 얼굴을 옆으로 살짝 돌린 포즈에서 사람들은 요염을 보았음직도 하다. 요부를 가장하고 적장을 유혹한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장치쯤으로 보면 될 것이다.

화가가 이 그림에서 또 하나의 악센트를 준 부분은 홀로페르네스의 수급이다. 베어낸 적장의 머리를 하녀가 머리에다 이고 귀환하는 이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적군의 수급을 수습한 것은 전공을 확인시키는 하나의 수단이지만, 아낙네가 남정네의 주검을 머리에다 인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에서 해학을 느꼈다. 해학의 밑바닥에는 야유가 깔려 있기 마련이다. 적국 앗수르를 향한 유디트의 야유를 보티첼리는 이렇게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죽은 얼굴이라고 보기엔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은 너무 평온하다. 이 또한 야유이다. 클로즈업된 두 사람의 뒤편, 멀지만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다 앗수르 군사들의 아비규환을 어렴풋하게 그린 것도 야유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