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절친, 野草 이야기
매력적인 절친, 野草 이야기
  • 배소일 기자
  • 승인 2021.05.03 18: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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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추(老醜)는 얇은 회접시나 갈비살접시를 날렵한 젓가락질로 초토화시키는 노인이다

야초(野草)는 어릴 적 부랄친구의 아호(雅號)인데 내가 지었다. ‘들풀’이란 시(詩)가 좋았고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다.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친구는 보통의 팔순노인과는 결이 다르다. ‘자세히 보면 그저 그렇다/ 오래 보면 매력적이다/ 니가 그렇다’

한국역사는 물론, 중국사 로마사 등 역사서에 관심이 많고 해박하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 등 주로 좌파 사상서를 읽어라고 내게 주기도 한다. 공지영의 '무소 뿔처럼 혼자서 가라'도 읽다 말았다. 많이 좌경화 되었지만 청년같은 강골에다 부리부리한 눈매, 텁스룩한 턱수염은 잰틀한 헐리웃 스타 '숀 코네리'와 꼭 닮았다.

둘이는 일주일에 10만 보를 걷는다. 어제는 TV만 틀면 나오는 미스트롯, 미스트트롯을 지겨워 했고 윤석열이 좌(左)인지? 우(右)인지? 실랭이하다가 좀더 두고보며 파악키로 했다. 두어시간 걷다가 고수부지 벤치에 앉았다. 얼핏 야초 팔목에 파릇파릇새긴 거미 문신을 보고 소스라쳤다.

“팔목에 그기 뭐꼬?”
“문신이다 와”

“그냥 스티커 붙인거지?”
“아니 새겼다”는거다

“야! 정말이가?”
“돈 주고 팠다. 니도 해봐라. 우쭐해질 꺼다”

피식웃고 말았지만, 노인을 얕잡아 보는 주변시선을 의식해서라고 했다. 어느날 신호등 교차로에서 새치기로 끼어든 장년에게 “이 자식아 나이가 무슨 자랑이가!” 팔뚝꺾이는 행패도 겪었고, 주차시비로 새파란 청년에게 멱살잡히는 폭행도 당했다. 

다시는 험악한 일을 당하지 않겠다고 문신을 감행한 것이다. 180키, 85키로의 탄탄한 몸매는 살아있고 여기다 문신까지 새겼어니 천군만마인 셈. 이 후 술집이나 당구장에 출입하는 힘께나 쓰는 건달들도 피하더란다. 팔뚝에다 문신을 새긴 더 큰 의미는 우선, 노인을 노추(늙고 추한 노인)로 얕잡아 보는 주변 시선이 싫어서다.

"노추는 우선 자식자랑, 재산자랑, 전직자랑으로 거품무는 흰소리가 기본이다. 남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며 입만 떼면 장광설이고 일 년 가야 책 한 권 읽지 않는 무식꾼"이라고 한탄했다.

거의가 가짜뉴스에 귀가 얇고 '이멜' ‘SNS’ ‘카페'는 "어데있는 술집이고?"라고 되물을 정도며 인문 지식은 TV에서 주워들은 하찮은 상식과 편향된 정치가십이 고작이어서 자기관리가 빵점인 소수의 노인때매, 젊은 세대는 전체 노인을 온통 도매금 노추로 치부한다고.

보통 키에 63키로 체중의 연골인 내게도 문신을 권했지만 "니나 마이 하고 살아라"고 일축했더니 "에이 병신아 이 나이에 남 눈치는 왜 보노!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나무랐다. 실은 “저 영감 왜 저래? 참 멋쟁이였는데.. 죽을 때가 다 됐는지 노망이 들었는지.. 참 꼴 싸납게 변했네"라는 체면치례가 쟁쟁 들려와서다.

친구는 유네스코 어린이돕기 기금재단, 기타 자선단체에 20년째 매월 기부를 해왔고 부부함께 세계적인 명소인 스페인 까미노데콤포스텔라(산티아고 성당가는 길)를 40여일 걸었다. 코로나 끝나면 티벳 오지와 아프리카 사파리도 갈 계획이다.

오늘도 '버킷리스트'의 완성을 실천하며 '호방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튼튼한 그가 곁에 있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