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일기] (30) 헛일한 이장님
[이장님 일기] (30) 헛일한 이장님
  • 예윤희 기자
  • 승인 2021.01.3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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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도 없이 철새 사진을 찍느라 생고생
페인트 통도 재활용품으로 착각, 헛수고

살다보면 잠깐의 생각 잘못으로 헛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일들을 가끔한다.

<1>

마을 앞을 흐르는 청도천에는 겨울이 되면 철새들이 많이 날아온다.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많이 날아왔다. 예년에 비해 더 많이 날아온 것 같다. 호수같이 너른 강에 유유히 떠다니는 모습은 참 보기가 좋다. 아니 그보다도 차를 타고 지나다가 소리에 놀라지만 날아오르는 모습은 장관이다.

 

2시간을 기다려 날아가는 모습을 찍은게 이것이다.  예윤희 기자
2시간을 기다려 날아가는 모습을 찍은 게 이것이다. 예윤희 기자

이 좋은 모습을 페이스북에라도 올려 자랑하면 많은 사람들이 구경올 것 같아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지나다니면서 보다가 추워서 못 가고 바빠서 못 가고 며칠을 넘기다 오늘은 작정하고 나섰다.

그런데 웬걸!

멀리서 살금살금 다가가는데 어찌 알았는지 무리들이 슬슬 움직여 가까이 가면 호수의 끝쪽으로 가버린다. 휴대폰 줌 기능으로 해도 잘 잡히지도 않는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처럼 군락을 이루어 날아오르면 그 모습이라도 찍어 볼려고 기다리는데 날아오르기는커녕 유유히 헤엄치면서 나를 골린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싶어 한참을 기다려도 아직도 나를 놀리고 있다. 화가나서 주먹만한 돌을 날려보지만 힘이 딸려 근처도 가지 않는다.

빙 돌아서 반대편으로 접근하면 언제 헤엄쳤는지 아까 내가 있던 자리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장비도 없이 너희들을 만나러 온 내가 어리석었지. 나만 보고 남들에게는 자랑하지 말라는 것인가?

둘이라도 되면 한 사람은 차를 몰고 나는 숨어서 찍어 볼려고 하다가 애들아 잘 놀아라하고 돌아왔다. 우거진 풀들 사이로 다니느라 도깨비바늘만 잔뜩 묻은 바지를 선물로 가지고 왔다.

<2>

마을 동쪽산에 어느 회사에서 와서 예술촌을 짓고 있다.

이장이 되기 전부터 한 공사라 이장이 되어 한번 가보니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설명을 해주고 일꾼들 점심을 시키며 내밥까지 시켜 준다.

마을에 많은 집이 들어오는 게 반갑기도 해서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하니 내차를 좀 빌려달라고 한다.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스티로폼이 든 자루를 면사무소에 보내야한다고 한다. 보험도 나 혼자만 운전한다고 들었고 내 차를 남에게 빌려주기가 싫었다. 그래서 내가 실어 준다고 했다. 화물차를 사고 짐을 많이 실어 보지는 않았지만 도와주고 싶었다. 마을 스님께 연락을 하니 도와주신다고 한다. 스님도 공사 현장에 있는 나무를 가져가 화목 보일러에 사용하고 싶다고 이미 약속을 하신  모양이다. 스님과 스티로폼 자루를 실어 나르는데 한 번에 20자루 밖에 실리지 않는다. 실어서 한 번 다녀오는 데 근 한 시간이나 걸린다. 네 번을 하고나니 스티로폼 자루는 다 치웠지만 한 나절이 가버렸다.

페인트 묻은 통은 재활용품이 아니라고 한다.  예윤희 기자
페인트 묻은 통은 재활용품이 아니라고 한다. 예윤희 기자

고맙다고 식당에서 저녁을 사 준다. 저녁 먹은 값을 한다고 현장에 있던 페인트통을 모두 싣고 마을에 있는 00자원에 가지고 갔다.  지난 연초에 이웃돕기 성금을 많이 협조해주어 이거라도 갖다주고 싶었다.

"이장님이 웬일이에요?" 마감 직전에 나온 사장님이 페인트통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찬다. "페인트 묻은 통은 재활용품이 아닙니다."

아이고 이런!! 전화 한 통화만 했으면 되는데 높이 싣는다고 고생을 얼마나 했는데... 세 사람 모두 왜 몰랐을까?  

다시 싣고와 화풀이 하듯 공터에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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