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황혼 육아'를 넉넉하게 보상해 드려라
부모님 '황혼 육아'를 넉넉하게 보상해 드려라
  • 배소일 기자
  • 승인 2021.02.0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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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와 경북권역은 '손주 도우미'에 대한 정책 도입을 시도한 적도 없어

맞벌이 부부(510만 가구. 2016년 통계청 자료)가 증가하면서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황혼 육아’가 더욱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부 2명 중 1명은 부모에게 육아 도움을 받고, 이 중 절반가량이 아이를 조부모에게 맡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길 경우, 기관에 맡기는데 비해 경제적 부담이 줄어드는 것 외에도 아이들의 정서적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아 맞벌이 부부가 선호하는 편이다.

보건복지부가 육아정책연구소에 의뢰해 2천533가구, 3천7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개인 양육지원 제공자의 83.6%는 조부모였다. 친인척(3.8%)까지 합치면 혈연관계는 88.4%에 달했다. 민간육아도우미나 공공아이돌보미 이용률은 각각 9%, 3.9%로 비교적 낮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육아를 전담하는 조부모 가운데 자녀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비율이 61.4%에 달했다. 조부모 10명 중 6명이 `공짜 육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월평균 62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베이비시터들이 받는 월 150만~200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손주니까 당연히 돌봐 줘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부모들도 자녀에게 `육아 보상`을 선뜻 요구하지 못하면서, 황혼육아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조부모의 상당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육아에 가담하는 모양세다.

​2016년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황혼육아 중인 조부모 500명 중 '손주 양육 동기가 본인의 자발적 의지가 아닌 자녀 부탁에 의한 비자발적 동기'라고 답한 비율은 76%에 달했다. 조부모가 손자녀 양육에 소요하는 평균 시간은 주당 5.25일, 42.53시간으로 조사돼 일반 근로자의 근로시간과 크게 다를 것 없었으며 평균 양육 기간은 21개월로 나타났다.

이들은 또 '그만 돌봐도 된다면 그만두겠느냐'는 질문에 73.8%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10명 중 6명은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답했다. 많은 조부모가 자녀의 요청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손주 육아를 담당하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어 가능하다면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육아로 인해 쉴 틈 없는 조부모 허리 건강에 비상

아무리 손주가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관절, 허리 등이 점점 약해지고 관련 질환들이 가속화되는 건 막을 수 없다. 황혼육아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관절질환 중 발병빈도가 가장 높은 것이 바로 척추질환이다. 이 중에서도 노화로 인해 약해진 척추에 무리하게 힘을 주거나 반복적인 노동, 피로 누적으로 인해 ‘척추관협착증’에 노출되기 쉽다.

손주를 3년째 돌보고 있는 A(64세)씨의 매일은 오전 6시부터 분주하다. 맞벌이 딸 사위의 직장생활에 맞춰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아이를 돌보고 있으니 처음에는 손주를 매일 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지만 그만큼 건강하던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허리 통증이 심해 허리보호대를 차고 파스로 하루하루를 견디다 병원을 찾았다. 각종 검사와 문진을 통해 ‘척추관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B 정신과 교수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여성 우울증 환자 4명 중 1명은 황혼 육아가 직·간접적 원인”이라고 밝혔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서 떼를 쓰는 아이에게 온종일 시달리면 식욕 저하, 스트레스, 불면증 등 우울 증상이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다수 육아 조부모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 차원에서 조부모의 양육수당에 대해 대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2019년 11월 국회에는 '아이 돌봄 지원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됐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조부모가 교육 이수 등으로 자격을 갖춰 아이 돌봄 서비스 제공기관에 '손자녀돌보미'로 등록하면 아이 부모 소득수준 따라 양육수당 지급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2021년 현재는 서울 서초구와 광주직할시 두 곳에서 ‘손주 돌보미’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육아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로부터 현대식 보육 방법을 교육받고 한 달에 40시간씩 직접 손주를 돌보면 최대 24만원(쌍둥이 48만원)의 수당을 지급하지만, 미미한 수준의 재정적 지원에 그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부모님에게 계좌이체로 육아비를 드려라

전문가들은 "정부가 어린이집 보육료는 지원하면서 조부모의 육아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출산율 제고를 위해 조부모의 육아에 대한 법적·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부모님으로부터 황혼 육아 도움을 받을 때는 약속된 날짜에 계좌이체로 돈을 드리는 것이 좋다. 우리 문화가 손자, 손녀를 돌봐주면서 돈을 받는다는 것에 어른들은 아직도 심리적으로 어색해한다. 액수를 떠나 월급 형태로 이체를 해드리는 것도 일종의 배려다. 돈에 대한 약속은 고마운 마음의 다른 표현 방식이란 것을 딸과 며느리들은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대구시(출산보육과 권현정 주무관)는 '손주 돌보미' 서비스 도입 여부에 대해 "2021년1월 현재까지도 전혀 고려한 바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