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월성계곡에 빠져
거창 월성계곡에 빠져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01.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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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계곡의 강선대, 분설담, 사선대
월성계곡애서 신선이 바둑을 두고 놀았다는 사선대앞 계곡물이 얼음으로 말한다. 장희자 기자

빈 나뭇가지에 맺힌 얼음꽃들이
이른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잠을 털고 막 뛰어내리는 햇발 사이로
새들이 퍼덕이며 샛길을 트고 있다. 
내 마음도 덩달아 날갯짓하다가
차고 투명하게
얼음꽃에 매달려 맺히고 있다. 
간밤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는데
천장에 올라붙은 잠이 되려
새날이 밝도록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마을을 벗어난 눈길은
탱글탱글한 용수철 같다. 낮은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는 새의 흰 깃털 같다.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동안에도
새들은 허공에 둥근 길을 트고 있었다.
얼음꽃들이 눈부시게 햇살을 받아 되쏘고
내 마음도 거기 매달려 글썽이고 있었다.   (얼음꽃, 이태수)

월성계곡은 남덕유산(1507m) 동쪽 자락의  성천(월성천)을 따라 형성된 길이 5.5㎞의 계곡이다. 성천(星川)은 월성천(月星川)이라고도 하는데 남덕유산 북동 방향으로 발달한 능선의 동쪽에서 발원한 하천이 동쪽으로 흐르면서 남쪽의 월봉산(月峰山)에서 발원한 하천과 월성마을에서 만난다.

좁은 산지 사이를  동쪽으로 굽이 흐르면서 북상면 농산리에서 북쪽에서 남류하는 소정천과 합류한다.  하천의 최상류부 구간으로 기반암 산지를 곡류하고 있기 때문에 하천을 따라서 기반암이 매끈하게 마식(磨蝕)된 반석((盤石)이나 폭포, 소(沼)등의 다양한 하천지형이 형성되면서 사선대, 분설담, 강선대 등 수려한 명소가 생성됐다.

월성계곡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강선대에 나무와 바위가 어우려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장희자 기자

성천 혹은 월성천의 지명은 하천이 발원하는 월봉산의 옛 이름인 월성산(月星山)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월성은 달이 마을 앞 성삼봉(城三峰)에 비친다 하여 월성이었던 것이다.  부근에는 달과 관련된 지명으로 월성마을을 비롯하여 마을의 형태가 계수나무를 닮아 붙여진 내계마을 등이 있다.

월성계곡은 수량이 풍부하고 산세가 거대해 경관이 수려하여 200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거창읍에서 거열산성군립공원, 수근대 등을 지나 북상면사무소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남덕유산으로 들어가면, 병곡리와 상수리로 들어가는 갈림길삼거리에서부터 월성 계곡이 시작된다.

강선대 맞은편에 자리한 모암정이 얼음계곡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같이 다가온다. 장희자 기자

남덕유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농산리에 ‘허브팜민들레울’이 나타나고 부근 강선대교를 건너면 바로 월성계곡의 첫번째 명소인 강선대가 나타난다.  월성계곡의 관문으로 옛날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조선조 인조때 척화신 동계 정온(鄭蘊)선생이 남한산성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살았던 덕유산 모리재 초입에 있다. 맞은편 하천변 고숲에는  모암 임지예를 기려 세운 모암정(帽岩亭)이 수석과 맑은물을 품고 있다.

월성천이  분계천과 만나는 농신교와 풍차마을 패션을 지나  창선리 523번지에  월성계곡 제2명소인 분설담(濆雪潭)이 있다. 월성계곡의 심장에 자리하여 소금강을 이루는 주변 산세와 어울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 흐름이 마치 눈이 흩날리는 듯 하여 분설담이라 한다. 분설담을 에워싸고 있는 산은 흡사 책을 포개어 쌓아 올린 듯한 채석장을 방불케 하고, 넓은 암반은 물결에 패여 물고기 비늘 형상을 이룬다. 분설담이란 글씨는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 산줄기에는 장군바위가 내려다 보고 있다.

하트모양 우측에 분설담(濆雪潭) 글씨가 얼음으로 덮혀 있고, 능선에는 장군바위가 내려다 보고 있다. 장희자 기자

 월성천이 산수천과 만나는 산수교와 월성마을을 지나면 월성계곡의 상류에 있는 사선대가 나타난다.  월성계곡의 백미(白眉)로 동춘당 송준길(宋浚吉)이 이곳에 은거하여 송대(松臺)라고 불렸다.

1909년 고종의 5남(의친왕 이강)이 전 승지 정태균(鄭泰均)을 찾아와 머물면서 북상, 위천 지방의 우국청년들과 만나 이곳일대를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하였던 곳이라 하여 왕실의 선원(瑄源)을 뜻한 이름으로 사선대(四瑄臺)라 명명하였다. 바위 포갬이 4층이고 동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에 의해 사선대(四仙臺)라고 부른다. 맨 꼭대기에 얹혀진 바위는  봉황의 모양새로 남덕유산을 바라보고 있으며 대(臺) 아래는 사선담(四仙潭)이 빛난다.

월성천 상류에 있는 사선대옆 계류가 결빙으로 고드름을 이루면서 한폭의겨울풍경화를 연출하고 있다. 장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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